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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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1
창가림을 활짝 열어제껴 눈부신 해빛과 함께 정원수들의 싱그러운 나무잎향기며 시원한 강바람까지 흘러드는듯 방안은 여느때없이 밝고 신선하였다. 잠모르는 밤의 사색세계에 깊이 묻혀있던 가구들도 피로를 가시고 생기에 넘치는듯 윤을 내며 번들거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뒤짐을 지고 지구의앞에 서서 라틴아메리카와 유럽쪽을 여겨보며 그곳 나라들의 지정학적위치와 정치정세에 대하여 생각하시였다. 니까라과… 쏘련지도부의 배신으로 무기원조가 중지되여 엄혹한 시련을 겪고있는 싼띠노주의자들, 미제의 경제봉쇄를 꿋꿋이 이겨내며 온갖 비방중상과 도발책동을 무찌르고있는 꾸바공산주의자들…
문득 전화종이 부드럽게 울렸다. 한번 또 한번… 그이께서는 전화기에로 천천히 다가가시였다.
교환수가 도당책임비서 박윤식이 나왔다고 보고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안녕하십니까? 도당책임비서 박윤식이 전화를 받습니다.》
《다름아니라 리근우동무가 새 안해를 맞은 다음 생활이 어떻습니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사람이 생신해지고 열정에 넘쳐 생산지휘를 하고있습니다.》
《그렇소? 됐소!》
그이께서는 못내 기뻐 안색이 환히 밝아지시였다.
《조직적으로 제기하니 마지 못해 응한것 같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좋아합니다.》
《됐-습니다. 안해쪽에서는 어떻습니까?》
《원래 온순하고 말이 없는 녀성이여서 속마음은 어떤지 구체적으로 알수는 없지만 의견이 있거나 불만스러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음… 그렇다…》
《그 녀성이 속이 여간 깊지 않습니다. 결혼식이 있은 다음날 전실의 묘소를 찾아 절을 하고왔습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이께서는 안도감이 들고 녀성의 그 마음씨가 대견하여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속이 트인 녀성이구만. 마음씨도 곱고 례법과 풍습도 알고… 책임비서동무가 사람을 잘 골랐습니다. 그런 녀성이면 마음이 놓입니다.》
박윤식은 우연히 그렇게 되였다고 대답하였다.
《우연이 아닙니다. 필연입니다. 참사람만이 사람을 똑바로 알아봅니다. 어려운 부탁을 맡아가지고 수고했습니다.》
《…》
박윤식은 대답을 못하였다.
그는 동안을 두었다가 나직이 말씀드렸다.
《그날 지원물자를 싣고 제철소에 왔던 송탄군당책임비서동무가 손님으로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그 동무는 리근우지배인에 대한 당의 믿음과 사랑에 큰 충격을 받고 가정환경과 생활경위가 복잡한 자기네 세멘트공장 책임자한테 더 큰 믿음을 주어 정식 지배인으로 임명할수 있도록 정치실무적으로 준비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건 좋은 련쇄반응입니다. 송탄군당책임비서, 그 동무가 일을 잘하고있습니까?》
《예… 이전에 말씀드린대로 농사도 잘 짓고 군을 번듯하게 꾸려가고있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자기네 고장에 모시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열정에 넘쳐 일하고있습니다.》
그이의 눈앞에 송탄군의 산야가 언뜻 떠올랐다.
《그때 내가 한번 다시 오겠다고 말해놓고는 그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동무한테 잘 량해시키고 앞으로 한번 꼭 간다고 말해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수령님께서 철봉광산을 현지지도하시며 로동자들의 살림집문제때문에 몹시 심려하셨는데 동무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갑니까?》
《우리 도당위원회는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해 도적인 힘을 기울여 제철지구에서 살림집건설을 다그치고있습니다. 그 전투지휘부 책임자로 도행정경제위원회 송규태부위원장을 내보냈습니다.》
《좋습니다.》
이윽고 젊은 서기가 전화로 아바나에 갔던 당대표단성원들이 대기실에 들어와있다고 보고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곧 대기실로 향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꾸바주재 우리 대사관이 매일 날려보내는 전보를 통하여 사회주의나라 당조직비서들의 회의에서 《개편》정책에 추종하는 나라 당대표들과 혁명적원칙을 지키는 나라 당대표들사이에 벌어진 론쟁이며 우리 당 대표단의 활동에 대하여 잘 알고계시였다. 회의연단에서 《개편》의 추종자들이 떠들어댄 어지러운 소리들이 귀전을 스치는듯하였다. 정치적다원주의를 실현해야 사회를 민주화할수 있다. 국가기관, 사회단체들에 대한 당의 령도를 페지해야 한다. 중앙집권적인 당이 아니라 민주화된 당을… 당기관들의 사업을 대중앞에 공개하라…
김정일동지께서 대기실에 들어서시자 한석비서를 비롯한 대표단성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이께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아직도 아바나에서 벌어진 론쟁의 열기가 가셔지지 않고있는듯하였다.
그이께서는 대표단이 원칙적으로 활동했다고 치하하시며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모두 자리에 앉았을 때 까리브해의 뙤약볕과 해풍에 탄듯 얼굴이 검실검실하고 몸매 다부진 대표단 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말씀드렸다.
《저희들을 만난 자리에서 까스뜨로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자신의 경의와 인사를 전해달라고 뜨겁게 말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환한 안색으로 물으시였다.
《까스뜨로동지는 건강합니까?》
《예… 그는 우리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인삼차를 늘 마시기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건강하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우리 나라에 왔을 때 수령님께서 인삼차를 주신데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었습니다. 그가 건강하다니 기쁩니다. 수령이 만수무강해야 혁명에서 승리할수 있습니다.》
대표단 단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 저희들이 예상도 못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꾸바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그란마>사장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올리는 편지와 서면질문을 가지고 우리 대사관에 찾아와 조선당대표단이 돌아가는 편에 보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그 편지와 서면질문을 가지고 왔습니다.》
대표단 단장은 《그란마》사장 엔리께 로만의 편지와 서면질문이 든 봉투를 들고 그이앞으로 다가와 정중히 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봉투를 열고 편지와 서면질문을 읽어나가시였다.
사장은 편지에 친애하는 그이에 대한 《그란마》사의 전체 일군들과 자신의 흠모의 정을 표시하고 존경하는 당신과의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그에 대한 질문을 서면으로 올린다고 썼다.
그이께서는 신중한 안색으로 계속 읽어내려가시였다.
…우리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당신의 풍부한 내용을 담은 대답이 사랑하는 귀국에 대한 우리 인민의 인식정도를 높이는데 특별히 기여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은 보편적인 문제를 담고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께서 우리가 제기한 질문을 참고하시면서 의도하시는 문제들을 얼마든지 포함시켜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요청에 관심을 돌려주신데 대하여 당신께 감사를 드리면서 우리는 가장 따뜻하고 친선적인 인사를 다시 올리는바입니다.
당신께 형제적인사를 드립니다.
꾸바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그란마》사장 엔리께 로만
1989년 6월 8일
《혁명31년의 해》 아바나
서면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조선로동당이 창건이후 언제나 사상사업을 첫자리에 놓고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현시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혁명전통교양을 어떤 형식과 방법으로 하고있습니까?
우리는 당생활에서 높고낮은 사람이 따로 없으며 누구든지 결함을 범하면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당의 정책에 대하여 알고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조선로동당이 국가 및 경제기관들에서 발로된 관료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린 결과는 어떤것입니까?
교양사업을 하는데서 당이 보수와 침체, 안일과 해이 등 낡은 사상경향들을 반대하는 사상투쟁을 어떻게 벌리고있습니까?
혁명은 대를 이어 계속됩니다.
당이 청년교양사업을 위하여 어떤 대책을 취하고있습니까?
당신께서는 로작들에서 당사업에서 낡은 틀을 마스고 모든것을 새롭게 혁명적인 방법으로 시작하여야 한다고 하시였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실천하시였으며 그에 대한 실례를 들어줄수 있겠습니까?
간부양성사업을 위하여 당이 어떻게 노력하였습니까?
그밖에 우리 나라의 건설경험과 조국통일문제, 조선과 꾸바 두나라 당사이의 관계발전전망에 대하여 문의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서면질문내용을 다 읽으시고 담배를 피우시였다.
한석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란마>사장 엔리께 로만동지가 우리 당에 편지를 쓰고 서면질문을 제기한것은 6월 8일입니다. 이번 회의가 끝난 이튿날입니다. 피델 까스뜨로동지가 우리 당 대표단의 활동을 높이 평가한것이나 혁명궁전에서 있은 연회에서 꾸바공산당 선전비서가 우리 단장에게 당신이 회의에서 한 연설은 대단히 훌륭했다고 흥분하여 말한것으로 보아 이 서면질문에는 우리 당의 원칙적립장에 대한 꾸바당지도부의 절대적인 공감과 지지가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석비서의 말을 주의깊이 듣고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저 <개편>바람을 타고 제국주의자들의 반꾸바책동이 우심해지고 있는 조건에서 꾸바동지들이 겪는 난관과 시련이 한두가지 아닐것입니다. 오늘 제국주의자들은 미국에 망명한 꾸바반혁명분자들과 어용선전수단들을 총동원하여 꾸바당지도부를 모독하며 당의 령도를 포기하라, 다당제를 도입하라고 매일과 같이 불어대고있습니다. 경제봉쇄를 강화하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국제주의적인 지지성원을 보내줘야 합니다.》
《<그란마>사장은 아바나의 우리 대사관으로 찾아와 자기 나라정세를 설명하며 자기 편지와 서면질문을 꼭 올려달라고 절절히 청원했습니다.》 하고 단장이 정중한 자세로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알릴듯말듯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이 서면질문들은 다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전진시키는데서 나서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일이 바쁘고 시간이 없어도 꾸바공산주의자들의 요청에 성실하게 응해줘야 하겠습니다.》
방안공기가 설레이였다.
그날밤 김정일동지께서는 대동강가를 거니시며 《그란마》사장이 제기한 질문에 줄 대답의 체계와 내용을 생각하시였다. 개개의 질문들은 그 내용으로 보아 고립된 문제가 아니라 내적으로 깊이 련관된 문제들이였다. 때문에 하나하나의 질문을 따라가며 답변을 주는 형식이 아니라 몇개의 체계를 가진 통일적인 론문으로 집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훤한 달밤이였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왔다.
소리없이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의 물결은 달빛을 받아 은회색으로 번들거리고 어딘가 저 멀리에서는 밤렬차의 은은한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여름밤의 고요속을 누비는 그 서정적인 음향때문인가 문득 쏜살같이 날아지나간 20세기후반기가 떠오르고 갖가지 추억들이 그이의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체 게바라, 라울 까스뜨로, 피델 까스뜨로를 비롯한 꾸바혁명지도자들의 우리 나라 방문, 장시간에 걸치는 수령님과의 진지하고 심각한 단독회담들, 쁠라야 히론전투, 까리브위기… 현대수정주의자들의 대미굴종정책으로 하여 꾸바에 배비되였던 미싸일들의 철수, 배반당한 까스뜨로의 분노, 볼리바아전선에서 30대 꽃나이에 전사한 체 게바라… 오늘은 또 《새로운 사고방법》, 친미로선으로 하여 꾸바의 벗들이 어떤 시련을 겪고있는가, 《그란마》사장 엔리께 로만동지의 편지와 질문들밑에는 꾸바동지들의 우리에 대한 기대, 사회주의기치를 끝까지 지키려는 피타는 결의가 뜨겁게 깔려있는것이 아닌가! 그들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야 한다!
그이께서 북받치는 격정을 지그시 누르며 걸음을 옮겨가시는데 몇발자욱앞 강기슭에서 물오리떼들이 푸드득 날아올랐다.
흐르는 달빛속에 물보라가 뽀얗게 날리고 그 물새떼들은 대동강우를 한바퀴 돌다가 먼 대양에라도 날아가려는듯 환한 달쪽을 향하여 아스라하니 날아올랐다.
걸음을 멈추고 그 날음을 쳐다보시는 김정일동지의 안광에 한없이 그윽한 빛이 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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