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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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결혼잔치라기보다 명절날의 소박한 주연에 가까운것이였다. 두리반 두개를 붙여놓고 그우에 술 몇병과 안주접시들을 놓고 다과를 펼쳐놓은것이 전부였다. 웃쪽에 앉힌 리근우와 강미옥의 가슴에는 흰 꽃송이도 없었다. 그들옆에 도당책임비서가 앉고 그아래로 련합당책임비서며 부지배인들이 둘러앉았는데 차영진은 래빈으로서 아래쪽 상의 업무부지배인 다음자리에 앉았다.
도당책임비서가 두사람의 결합을 축하하는 짤막한 발언을 한 다음 모두 축하의 잔들을 들었다. 한번 또 한번… 어느덧 좌석에 취흥이 돌았지만 여느 결혼식에서처럼 손풍금소리나 노래소리도 없었으며 깨가 쏟아지게 살라거나 아들딸을 구들에 한가득 낳으라는 떠들썩한 롱말도 없었다. 누구나 정색한 얼굴, 진정이 넘치는 목소리로 강미옥에게 지배인동지를 잘 보살펴달라고 거듭거듭 당부할뿐이였다.
차영진은 아무 말도 없이 생각깊은 얼굴로 술잔만 비우고있었다. 그는 얼마전만 하여도 용광로 대보수문제며 제철소지배인의 철직에 대한 여론을 들었었다. 그자신도 강재를 받지 못하여 제철소에 대한 의견과 불만이 없지 않았으며 지배인에게 처벌이 가해지는것은 응당하다고까지 생각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동지들의 축복속에 재혼을 하고 자기는 그 잔치자리에 앉게까지 되지 않았는가. 그는 이 예상할수 없었던 운명변화에 크나큰 충격을 받아 생각이 깊어져 묵묵히 술만 마시게 되였다. 술이 달았다. 전혀 쓰지 않고 감미롭기만 하였다. 리근우도 행복감과 만족감에 도취된데다가 술기운에 거나해졌는지 박윤식의 팔목을 덥석 잡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웬일인지 박윤식은 전혀 응대를 안하고있다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열기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모두 무슨일이 있는듯한 예감에 그를 쳐다보았다.
《내 좀 이야기를 하겠소… 동무들, 이때까지 말하지 않고있었는데 사실은… 리근우동무한테 강미옥동무가 오게 된것은 전적으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은덕입니다. 근우동무가 자기운명문제를 놓고 고민하고있을 때 그이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 동무의 개인적불행과 생활상애로에 대하여 죄다 말씀드렸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몹시 가슴아파하셨습니다. 동무한테 개체생활을 보살펴줄 방조자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재혼하도록 돕자고 발기하신분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이십니다. 이 문제를 놓고 얼마나 다심하게 관심하셨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시고는 두사람의 감정과 의향을 깊이 고려하고 선택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하여 자신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신것까지 이야기하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술렁거렸고 리근우는 얼혼이 빠진듯한 얼굴로 도당책임비서를 빤히 쳐다보았다. 강미옥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아!…) 차영진은 가슴속에서 화끈하고 상쾌한 그 무슨 기운이 터져오르고 머리가 핑 도는듯하였다. 리근우가 물기어린 눈을 슴벅거리며 일어나 철생산으로 보답하겠다고 결의를 다지는 말들이 확성기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처럼 크게 공명되여 뇌리에 메아리쳤다.… 여태 몰랐다. 어떤 믿음이, 어떤 사랑이 뒤에서 떠밀어주고있는지… 가슴, 머리, 팔다리에 뻗쳐오르는 청춘의 열정으로 결사의 각오로 철을 꽝꽝 생산하겠다, 사회주의건설이 요구하는 각종 강재들을 어김없이 생산보장하겠다, 이 맹세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모두 감격과 흥분에 겨워 잔들을 찧으며 축복과 결의의 말들을 떠들썩하게 하고났을 때 박윤식이 도당에 들어가서 할 일이 있다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진이도 따라 일어섰다.
리근우지배인은 현관에까지 따라나오며 도당책임비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하고 영진의 손도 뜨겁게 잡아쥐였다.
《책임비서동무, 번번히 지원해줘서 감사하오. 송탄군에 우선적으로 강재를 보장해주도록 하겠습니다.》
두사람이 그를 안으로 떠밀어들여보내고 차가 서있는데로 나오는데 뜨락으로 십여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들었다.
용해공들이였다. 네댓사람은 유리병소리가 나는 상자며 보꾸레미들을 들었다. 몸매다부진 로장이며 공훈용해공아바이를 비롯한 용해공들은 도당책임비서동지에게 인사를 하고는 어디서 냄새를 맡고 달려왔는지 벌써 잔치술에 거나해지기라도 한듯 지배인아바이가 팔자를 고치는데 용광로가 가만히 있을수 있는가, 우리없이 성례가 제대로 될것 같지 않아 뛰여왔다는 등 롱말을 섞어가며 떠들어댔다.
도당책임비서는 호인답게 벙글거리며 미처 알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하고는 정색한 얼굴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은정으로 이런 행복이 마련되였으니 어서 들어가 뜨겁게 축하해주라고 일렀다.
두 당일군은 그들이 집안에 들어간 다음에도 차에 오르지 못하고 떠들썩한 축하의 말들과 활기에 넘친 웃음소리, 그릇이며 유리고뿌의 쟁그랑소리들이 흘러나오는 불빛밝은 창문을 보았다.
누구인가 눈물에 젖은 석쉼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여보게- 로장- 내 뭐라고 했어! 엉?- 저- 지배인아바이가 고민할 때- 여- 윤갑이- 님자는 지배인이 떨어진다고 했지?- 지도자동지는- 우리 로동계급의 이 가슴을 제일 잘 알아주는 수령이네!》
《야 이거야- 만세라도 터쳐야지. 이 좋은 날에 이러구있겠나?》
《이 사람- 밤이 깊어가는데 만세는 속으로, 속으로 부르자구-》
그 순간 구내기관차의 기적소리가 장쾌하게 울려나오고 야금기지의 드넓은 상공에 대화재의 불길인양 시뻘건 밤노을이 황황 타올랐다.…
승용차는 전조등불빛으로 어둠을 가르며 살같이 내달리고 차영진은 좌석에 편안히 앉아있었다. 앞에서는 도당책임비서의 차가 달리고있는데 그 차의 빨간 신호등이 간단없이 깜빡거리였다.
영진은 가슴에 넘치는 기쁨과 흥분을 눅잦히려고 담배를 피우며 차창밖에 흐르는 벌의 야경에 눈길을 주었다.
졸음에 취한듯한 벼바다의 끝없는 흐름, 달빛을 희붐하게 반사하는 시내물, 버들방천, 저 멀리 어렴풋이 바라보이는 야산둘레에 모여앉은 농촌문화주택의 불빛들, 하염없이 반짝거리는 그 불빛들은 제나름의 기쁨과 행복한 사연들을 속삭이는듯… 밤길에는 인적이 그치지 않았다. 어디로 갔다오는지 가지런히 앉아 뜨락또르를 몰고 오는 청춘남녀, 셋씩, 넷씩 짝을 지어 희희닥거리며 걸어오다가 귀염성스럽게 손을 눈앞에 올려 날아드는 전조등불빛을 막는 처녀들, 정분이 나서 집에서 도망친듯한 염소를 억지다짐으로 끌고가는 로인… 이 땅에는 과연 얼마나 다채롭고 흥겹고 떠들썩한 생활이 넘쳐있는것인가. 아, 얼마나 좋은 밤인가! 눈물을 머금고 결의를 다지던 리근우지배인의 얼굴이 차창에 환영처럼 어른거리고 제철지구의 그 인상적인 밤노을이 아침노을처럼 떠올랐다. 언제봐야 울기에 차서 거칠게 돌아치던 그 지배인이 오늘은 어떤 사람으로 갱신되였는가. 그이의 믿음과 사랑에 각성되여 게접스러운것들을 털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되여 거인처럼 일떠선 일군들이 얼마나 많은가. 믿음과 사랑의 힘, 믿음과 사랑의 정치!… 눈앞에 자그마한 장방형유리통이 번들거리고 웬 사람의 병색이 짙은 얼굴이 떠올랐다. 유리통안에 들어있는 원추형의 석회석… 그 사람은 주상민이다. 이 밤길에 그가 왜 떠오르는가… 지꿎은 오해로 번민하다가 석회석을 찾아내고 세멘트공장을 꾸리고 질이 좋은 세멘트를 생산하는데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온 전사, 무엇이, 도대체 무엇이 모자라 그를 지배인으로 임명하지 못했던가? 세멘트생산을 떠맡기고도 지배인으로 임명하지 않고 《책임자》로 그냥 두어두고있는데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왔을가. 그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에 대하여, 우리 당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것인가. 고맙게 여길것인가, 원망할것인가? 그가 이 세상에 남겨놓은 안해는, 아이들은?… 그는 자기가 애써 찾아낸 석회석을 석회석으로 믿어준데 대하여- 그 응당한 일을 잊지 못해 하였다. 세멘트공장을 통채로 떠맡겨준데 대하여 분에 넘치는 믿음으로 여겨 뼈와 살을 아끼지 않고 일해왔다. 그는 이런 사람이였다.
세멘트생산을 맡기고도 지배인으로 내세우지 못한것은 믿으면서도 믿지 못하는 구석이 있어서였던가, 그렇다면 얼마나 린색한 믿음인가. 그는 당을 믿고 모든것을 다 바쳐 세멘트생산에 헌신분투해왔지만 우리는 그를 근거없이, 순전히 지난날의 인상때문에… 얼마나 부당하고 옹졸한 처사인가… 늘 말로는 지도자동지를 따라배운다고 했지만 심장이 뜨겁지 못해서인가, 도량이 크지 못해서인가?…
앞에서 달리던 승용차가 멎어섰다. 도당책임비서가 차에서 내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도소재지로 가는 길과 송탄으로 가는 길의 갈림목에 이른것이다.
차영진은 차에서 내려 그에게로 다가갔다.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달빛이 어찌나 밝은지 하얀 길바닥에 가로수들의 그림자를 주런이 그려놓았다. 도당책임비서는 취흥이 가시지 않았는지 흐뭇한 얼굴로 말을 건네였다.
《우리 집에 들어가서 자고 래일아침에 떠나가지 않겠소?》
《가겠습니다. 달빛도 좋은데…》
박윤식은 눈길을 들어 보름달이 환하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무리들이 널린 하늘을 쳐다보았다.
《정말 좋은 밤이요. 오늘 잔치가 잘된것 같소?》
《예… 안해가 마음씨 고운…》
《그럼, 교양도 있고… 이제 리근우가 기운을 낼거요. 결의하는걸 봤지… 참 생각이 깊어진단 말이요. 사람문제를 풀어 경제를 추켜세우는 방법, 이게 바로 주체의 령도예술이 아닌가. 당사업, 사람과의 사업으로, 아래를 진심으로 도와주면서 제기된 문제를 푸는것이 아니라 우리는 쩍하면 행정대행으로 나간단 말이요. 도당위원회의 사업부터 이런 각도에서 전면적으로 검토해봐야겠소.》
《책임비서동지. 우리 세멘트공장 책임자가 생각납니까?》
박윤식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지켜보았다.
《누군가…》
《주상민이라고 석회석을 찾아낸 동무 있지 않습니까?》
《아, 언젠가 만나본것 같소.》
《그 동무가 세멘트공장을 책임지고 헌신적으로 일해왔는데 우리는 그를 정식 지배인으로 임명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생각나오, 그 동무한테 문제가 좀 있었지.…》
《그를 지배인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지배인으로?… 믿을만하오?》
《예?…》
《이전에 동무네가 그를 세멘트공장 책임자로 내세웠을 때 누구한테서인가 우려하는 소리를 들은것 같은데…》
《충실한 동무입니다.》
《응… 그렇다면 좀더 도와주며 일을 시켜보다가 임명하지 않겠소?》
차영진은 눈을 내리뜨고 누가 우려했을가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겨우 대답하였다.
《예…》
두 사람은 말없이 인사를 나누고는 자기 차들로 걸어갔다. 환한 달빛을 밟으며…
모두 그를 방안으로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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