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야전렬차 21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설 야전렬차 21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643회 작성일 22-12-07 01:13

본문

20221116163611_114e7c8fed0903e75148e9a3accd7c2e_wbkq.jpg

제 21 회


21

 

5월 20일.

물살이 급한 두만강에서 피여오른 새벽안개는 강기슭에 뿌리박은 천연의 산들과 군데군데 철쭉꽃이 어울린 잡관목숲이 무성한 골짜기들에 서리였다. 봄기운이 완연한 북방의 아침대기는 서늘하고 청신하였다.

렬차로 중국의 국경도시 도문에 도착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관례를 벗어나는 특별영접을 받으시였다.

원래 중국에서는 외국수반이 오면 국무원의 한 부장이나 부부장이 영접과 전송, 참관시에 동행하는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수도 베이징에서 머나먼 국경역인 도문에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마중나온 사람은 중국의 대외사업전반을 통솔하는 국무위원 대병국이였다.

《지난해보다 더 건강해지신 김정일총비서동지를 다시 만나뵙게 되여 정말 기쁩니다. 환영합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계절에 김정일총비서동지께서 친선의 뜨거운 정을 안고 중국을 방문하신것은 중조친선협조관계를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는 력사적사변으로 될것입니다.》

렬차안의 담화석상에서 국무위원은 정에 겨워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호금도총서기와 당중앙위원회의 위임을 받고 도문에서 총비서동지를 특별히 영접해드리는 커다란 행운을 지니게 되였습니다. 당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는 총비서동지의 이번 중국방문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 방문과 관련한 영접계획을 진지하게 토의하였습니다. 총비서동지께서 저희들에게 요구하실것이 있으면 어느때든지 제기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들의 사업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중국의 외교관례에 없는 특례의 영접을 해준 중앙과 성, 시의 지도간부들과 인민들에게 사의를 표시하시고 방문일정을 료해하시였다. 1만 5천리가 넘는 먼 로정의 중화대지방문일정은 지난날 중국을 방문한 외국수반들은 물론 세계외교력사에 없는 기나긴 방문로정이고 방대한 참관일정이였다.

《이번 방문을 통하여 현대화의 새 력사를 창조하는 동북지역과 화동지역의 발전모습을 다시금 보게 되여 기쁩니다. 그리고 중국동지들이 나의 건강을 념려하여 휴식을 배합한 부담없는 방문일정을 짜준데 대해 감사히 생각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대병국국무위원에게 친절히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나는 조국에 돌아가 할일이 많습니다. 열흘씩이나 중국에 체류할수 없습니다. 5~6일간으로 일정을 당겨주시오. 중국방문을 빨찌산식으로 하겠습니다. 숙소를 아늑한 초대소가 아니라 렬차로 정하겠습니다. 참관은 낮에 하고 밤에는 야전렬차행군을 하겠습니다. 시간을 절약합시다.》

《총비서동지, 달리는 렬차에서는 제대로 쉬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피곤하구 힘들어서 참관지에 못 다니십니다. 중국에 계시는 동안 총비서동지의 건강은 저희들이 책임집니다.》

국무위원은 몹시 우려스런 표정이였다.

《일없습니다. 나는 조국에서 야전식으로 렬차강행군을 하는데 습관되여있습니다.》

《총비서동지는 70고개가 아니십니까. 참관을 하시고는 초대소에서 푹 쉬셔야 합니다.》

대병국은 물러설 기미가 아니였디.

《국무위원동지는 나의 건강 말고도 방문사업보장도 책임졌겠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음을 지으시였다.

《아까 요구할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으니 내 말대로 해주시오. 걱정마십시오. 나한테는 렬차칸이 집이나 같아서 휴식은 문제없습니다.》


×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유람선은 경박호의 푸른 물속에 하얀 선체를 잠그고 떠갔다.

아득한 지질시대 화산분출로 생긴 용암이 목단강상류를 가로막아 형성된 경박호는 호수물면이 거울같이 반듯하다는 뜻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였다. 작은 섬들이 드문드문 널린 호수둘레에는 해발고가 그닥 높지 않은 산봉우리들이 병풍을 이루었다. 목단강이 흘러드는 상류쪽에 위치한 조수루폭포는 중국에 하나밖에 없는 용암붕괴형폭포이다. 장마철이면 너비가 300m나 되는 폭포수소리가 우뢰치듯 했고 자욱하게 서리는 물보라는 마치 은하수가 거꾸로 걸린듯 하였다. 엄동설한에는 폭포가 점차 얼어붙어 벼랑에 수정같은 고드름줄기폭포를 드리운다. 호수에는 물고기도 많다. 옛날에 경박호일대의 토배기들은 산중의 바다와 같은 이 호수에서 바가지로 물고기를 퍼냈고 빨래방치로 물가에 내려온 노루를 때려잡았다고 한다.

《호수풍치가 아름답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잔잔한 물우로 날아예는 물새들과 저 멀리 연보라빛 아지랑이운무가 감도는 수려한 산발을 바라보시였다.

《총비서동지, 경박호는 중국의 10대명승지에 속합니다.》

흑룡강성 성장이 자랑삼아 말씀올렸다.

《청나라의 강희와 건륭황제들이 이곳에 유람왔댔고 모택동동지와 류소기, 주은래, 등소평, 강택민동지들도 우정 시간을 내여 경박호의 풍치를 부감하러 왔댔습니다.》

대병국국무위원이 약간 마뜩지 않은 눈길을 흑룡강성 성장에게 던졌다.

《성장은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기 썩 전에 조선의 김일성주석동지께서 경박호일대에서 일제침략자들을 때려눕혔다는걸 잊은게구만.》

《자기 민족의 수난의 력사를 잊을 사람이 어데 있겠습니까. 젊은 성장이 입밖에 내지 않아 그렇겠지요.》

김정일동지께서 비호해주시는 말씀에 흑룡강성 성장은 면구스런 낯빛을 가시고 자신있게 말했다.

《국무위원동지, 지난 세기의 곡절많은 항일전쟁사를 모른다면 동북땅에 살 자격이 없습니다. 김일성주석동지께서는 두차례에 걸쳐 일제가 강점한 여기 북만땅에 원정을 오셨습니다. 경박호반전투는 김일성주석동지께서 1차 북만원정을 하시던… 천구백삼십… 몇년이던가… 호반얼음판을 리용한 싸움이였으니 겨울인데…》

《1934년 11월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성장을 튕겨주시였다.

근 80년전의 일이다. 수령님께서는 왕청유격대와 훈춘유격대를 주력으로 하는 원정대를 이끌고 눈보라치는 로야령을 넘어 북만땅에 진출하시였다. 북만의 중국공산주의자들을 고무하고 항일련군과의 공동전선을 펴 일제침략군을 쳐부심으로써 광활한 지역에 혁명의 씨앗을 뿌리는것이 원정의 목적이였다.

《정예》를 뽐내는 일제침략군 수백명이 조선인민혁명군의 북만원정길을 가로막으려고 몰려왔다. 적들은 동만의 김일성빨찌산이 북만의 항일련군에 줄 혁명적영향을 두려워했고 조중공산주의자들이 합세하여 강력한 힘으로 자라는것을 무서워했다. 수령님께서는 북만의 항일련군지휘관이 내놓은 작전방안을 들어보시였다. 상대가 《정예》일본군인만큼 맞붙는 싸움을 피하고 빠져나가자는것이 첫째안이고 두번째안은 적들이 경박호를 건너오기 전에 맞받아나가 치자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일본놈들과의 싸움을 피하는것은 우리의 공동투쟁목적과 전략전술적원칙에 맞지 않는다, 둘째방안대로 공격해오는 적을 멀리까지 맞받아나가 치느라면 우리의 행동이 먼저 로출될수 있고 행군할 시간상 여유도 없다고 하시면서 적들의 공격기도와 심리, 경박호일대의 지형조건을 리용하여 적들을 호수의 얼음판에서 소멸하는 작전안을 내놓으시였다. 그리고 호수기슭의 야산에 매복하는 진지굴설을 힘들게 언땅을 까내지 말고 눈을 다져 흉벽을 쌓고 물을 뿌려 총탄을 막을수 있는 얼음포대를 만들도록 하시였다.

얼마 안 있어 경박호 건너편기슭에 나타난 일본군은 종대로 나뉘여 뚱기적거리며 얼음판우를 건너오기 시작했다. 적들의 대오가 얼음판에 다 들어섰을 때였다.

수령님께서는 싸창을 쏘아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얼음포대뒤에서 조선인민혁명군과 북만항일련군의 수백정의 보총과 기관총이 일제《토벌대》놈들을 향해 불을 토했다. 불의의 타격에 몸을 숨길 곳조차 없는 미끄러운 얼음판에 몰킨 적들은 한놈도 살아 도망치지 못하고 몽땅 소멸되였다. 중국의 항일전우들은 아군이 부상자조차 내지 않고 순식간에 전투를 결속한것이 놀라왔다. 그들은 호수얼음판에 무리로 쓰러진 《토벌대》놈들의 시체에서 신식보총을 걷어들이며 수령님의 신묘하고 령활한 전술과 전법을 찬탄해마지않았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조중인민이 항일공동투쟁전선을 폈기때문에 경박호반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중국전우들이 잘 싸웠다고 치하하시였다. …

《경박호는 항일혁명전적지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날에 울리신 수령님의 싸창소리를 귀전에 들으시는듯 추억에 잠겨 조용히 말씀히시였다.

《총비서동지, 김일성주석동지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제2차 북만원정은 1935년 여름에 시작되였습니다.》

성장의 머리에는 중학시절에 배운 동북항일전쟁사의 토막들이 생생히 되살아나는 모양이였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였다.

《일제강점시기의 우리 흑룡강성, 북만땅에서는 동만에서 원정온 조선인민혁명군을 〈고려홍군〉이라고 존대하여 불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제2차 북만원정대를 이끄시고 사도하자를 거쳐 로야령에 이르시였다. 북만으로 가자면 동만과 북만의 경계를 이루는 로야령을 넘어야 했다. 분비나무와 이깔나무, 가문비나무, 봇나무들이 꽉 들어찬 가파로운 천고의 수림속을 헤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제1차 북만원정은 살을 에이는 눈보라강추위속을 산악행군했지만 제2차 북만원정은 나무들과 가시덤불이 빼곡한 골짜기를 톺아오르고 뙤약볕에 비지땀을 흘려 사람과 말이 다 녹초가 되였으며 밤에는 왕모기떼의 성화를 받아야 했다. 제일 어려운것은 로흑산전투에서 로획한 박격포와 중기관총을 실은 군마를 끌고가는것이였다. 도끼로 전진을 가로막는 나무들을 찍어버렸고 뒤에서는 군마를 떠밀어주었다. 말들이 지쳐 헐떡이고 길을 내느라 지체되여 행군속도가 느렸다.

그러나 원정대는 끝내 천고밀림의 로야령을 정복하고 북만땅인 녕안현 산동툰부근에서 주보중부대와 만났다.

《언젠가 수령님께서는 자신이 북만원정대를 이끌고 경박호대안의 산동툰에 이르렀을 때 항일련군 제5군장 주보중이 너무 반가와 숙영지에서 10리나 되는 로천구에까지 달려나와 마중했다고 회고하셨습니다.》

김정일동지의 말씀에 흑룡강성 성장은 마치 그때의 증견자이기라도 한듯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저는 경박호반전투에 못지 않게 크게 벌어진 산동툰전투를 잘 알고있습니다.》

《박격포를 쏘아 적지휘소를 들부신 전투 말이지?》

대병국국무위원이 한마디 끼여들었다.

《그렇습니다. 원래 5군지휘관들은 작전을 토의할 때 박격포나 중기관총 같은 중무기가 민활히 활동해야 하는 유격전의 특성에 맞겠는가고 하면서 불합리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포탄세례를 받은 적들이 아우성을 치며 꽁무니를 빼는것을 보고는 〈김일성고려홍군〉이 제일이라고 엄지손가락을 내들었습니다. 일제〈토벌대〉와 위만군은 〈고려홍군〉이란 말만 들어도 벌벌 떨며 감히 접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가없이 파아란 5월의 봄하늘에서는 흰구름이 떠가고 그 흰구름마냥 선체가 하얀 유람선은 경박호의 짙푸른 물에 아름다운 자태를 담고 흘러가고있었다.

명승지 경박호일대에 깃든 수령님의 항일전쟁의 력사를 잘 알고있는 머리희슥한 흑룡강성 당서기는 장군님을 위해 유람선우에 마련한 오찬에서 저으기 감동된 어조로 축배사를 하였다.

《…지난 항일전쟁시기 김일성주석동지께서는 수많은 조선의 혁명투사들을 지휘하시여 중국인민과 어깨겯고 피어린 투쟁을 벌려 일제를 타승하시였습니다. 김일성주석동지에 의해 흑룡강성과 조선은 거의나 한세기전에 잊을수 없는 력사적관계를 가지게 되였습니다. 김일성주석동지께서 경박호기슭에서 중국노래 〈소무가〉를 부르시던 영웅적기백과 필승의 신념, 숭고한 뜻은 오늘도 우리 중국인민을 깊이 감동시키고 고무해줍니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동북지방에 깃든 수령님의 항일무장투쟁업적을 자상히 추억하는 중국동지들과 축배잔을 찧으시였다.

그것은 1935년 7월 하순, 녕안현 산동툰전투를 승리적으로 끝낸지 얼마후의 일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주보중과 북만의 유격부대들이 손을 들고 물러나앉은 돈화와 액목일대진출을 자진해나서시였다. 경박호일대인 돈화도 그렇지만 액목은 더우기 공산주의운동의 미개척지였다. 좌경모험주의자들이 벌린 8. 1폭동의 여파로 이 지방 군중들은 일제와 반동군벌의 엄청난 피해를 당하였다. 구국간판을 내건 토비무리들의 수탈과 행패질이 심한데다가 일제놈들과 그 주구들의 악선전으로 하여 이 지방 인민들은 공산당이 토비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여겨왔다.

수령님께서는 원정대를 이끄시고 경박호를 건너 액목땅의 동쪽관문이라고 할수 있는 중국인들만이 사는 부락에 당도하시였다. 주민들로부터 랭대를 받으리라 생각했지만 너무도 예상밖이였다. 부락의 중국사람들은 원정대가 오는걸 보고 《홍호자》가 온다면서 아이들까지 데리고 어디론가 도망쳤고 마을에 남은 허약자들과 늙은이들은 집안에 문을 닫아걸고 숨었다.

수령님께서는 부락에 페를 끼치지 않게 부근의 수림에 천막을 치고 부대를 휴식하게 하시였다. 그리고 대원 몇사람을 데리시고 마을 복판에 있는 소학교로 가시였다. 소학교는 텅 비여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소학교마당에 풍금을 내다놓고 손수 타시면서 대원들과 함께 중국노래를 부르시였다. 중국사람들이 애창하는 명곡인 양귀비의 노래와 《소무가》였다. 원명이 《소무목양》인 《소무가》는 수령님께서 길림시절에 배우고 즐겨부르시던 가요였다.

소무는 B.C 2세기 한나라의 명망높은 충신이였다. 북쪽변방의 흉노족들은 황제의 사신으로 온 그를 인질로 붙잡아놓고 저들에게 굴복시키려 하였다. 소무가 응하지 않자 흉노족은 그에게 양을 방목시키면서 귀순하지 않으면 수양이 새끼를 낳을 때까지 한나라에 돌아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소무는 19년간이나 흉노족들한테 같혀 온갖 멸시와 고통을 당하였지만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소무는 호지에 잡혀있어도

절개를 욕되게 하지 않았네

눈과 얼음덮인 흉노땅에서 19년

목마르면 눈을 먹고

배고프면 요털을 삼키며

북해변에서 양을 몰았네

마음은 한나라에 가있으나

늙도록 몸은 돌아가지 못했네


학교마당에서 울리는 풍금소리와 노래소리는 소학교 상급반학생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소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자 교원들과 동네어른들도 줄레줄레 따라나섰다.

《고려홍군》이 중화민족의 애창가요를 류창하게 부른다는것은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부락어른들은 친절과 선망의 눈길로 능란한 솜씨로 풍금을 타시는 젊으신 수령님을 우러렀고 학생들은 풍금소리에 맞춰 대원들과 같이 《소무가》를 불렀다.


모진 고생 겪을수록

마음은 철석으로 굳어져

변강의 밤 때로 피리소리 들으면

가슴은 아프고 쓰리였네


바다가 마르고 돌이 썩는다 해도

큰 절개는 조금도 굽히지 않아

흉노들도 놀라서 그 위덕에 탄복하였네


풍금소리와 노래소리, 찬탄의 목소리는 온 부락을 진동시키였다. 도망갔던 마을사람들이 저저마다 모여들었다. 늙은이들은 지팽이에 의지하거나 손자애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나왔다. 삽시에 소학교마당은 사람들로 꽉 찼다.

수령님께서는 풍금뚜껑을 덮고 부락사람들에게 중국말로 가슴을 치는 반일연설을 하시였다. 목마르면 눈을 집어먹고 배고프면 짐승털을 삼키면서도 나라를 사랑하고 절개를 욕되게 하지 않은 소무처럼 마음을 철석같이 다져 섬오랑캐 일제놈들을 쳐부시고 빼앗긴 조국을 찾자는 수령님의 절절한 반일웅지는 중국인부락 사람들을 깊이 감동시키였다. 그들은 《고려홍군》을 비적도 마적도 아닌 진짜배기 애국적인 혁명군이고 신사멋쟁이군대라고 칭송하며 후원하려 했다. 그러나 원정부대는 인민들의 낟알 한톨, 실 한오리도 다치지 않았다.

《고려홍군》은 액목과 돈화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지방인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

《우리 수령님께서는 80고령에 이르시여서도 종종 소박한 풍금으로 〈소무가〉를 타시면서 중국동지들과 어려운 공동투쟁의 길을 개척하던 나날을 회고하군 하시였습니다.》

김정일동지의 추억깊은 말씀에 대병국국무위원은 술잔을 내려놓고 중국사람들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후날 주보중은 하바롭스크에서 〈김일성장군과 조선동지들의 업적을 떼놓고서는 동북항일련군의 발전력사를 말할수가 없다.〉고 감회에 젖어 이야기했습니다. 김일성주석동지와 조선혁명가들이 동북해방을 위해 20여년이나 목숨바쳐 싸웠기때문에 피로써 맺어진 중조친선이라고 하는겁니다.》

《국무위원동지가 좋은 말을 해주어 감사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젊은 흑룡강성 성장이 동북항일혁명력사를 잘 알고있는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중국동지들도 알다싶이 이전 흑룡강성 성장 진뢰동지는 부부가 다 우리 수령님과 어깨겯고 항일무장투쟁을 해온 로혁명가들입니다. 수령님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진뢰성장은 눈물을 흘리며 조문하겠다고 할빈에서부터 직접 승용차를 몰고 국경 신의주에 왔습니다. 우리 일군이 외국인조객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진뢰성장은 〈나는 조선에 외국인이 아니다. 김일성주석동지와 오래동안 함께 고생한 형제간 되는 사람인데 왜 조문하지 못하겠는가.〉고 하면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보고를 받고 몹시 감동하여 례외로 진뢰성장을 조객으로 받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 조중친선의 전통을 마련해준 전세대 혁명가들의 뉴대는 이렇듯 뜨겁고 진실합니다.》

병풍을 이룬 산발너머에서 불어온 바람이 경박호에 잔물결을 일으켰다.

《세월은 흐르기마련입니다. 세월의 이끼가 력사의 갈피에 두텁게 쌓이면 잊게 되고 망각될수 있는데 젊은 성장이 그 피어린 항일사를 체험한 사람처럼 날자까지 기억하고있으니 대단합니다. 력사를 알면 선배들이 공동투쟁에서 이룩한 전통을 이어나갈수 있습니다.》

《총비서동지, 과분한 치하를 해주셔 고맙습니다.》

흑룡강성 성장은 몇잔 마신 모태주기운으로 얼굴이 더 불그스레해졌다.

《제가 여기 북만땅에 새겨진 김일성주석동지의 항일혁명업적을 돌이켜보게 된것은 다 총비서동지의 덕분입니다. 총비서동지께서 이 경박호에까지 찾아오시여 중조친선의 전통의 뿌리를 추억해주시니 저희들이 어떻게 그 귀중한 혁명력사를 잊을수 있겠습니까.

이번 봄철에 동북땅이 몹시 가물었습니다. 오래동안 비가 너무 오지 않아 작은 강들은 거의다 말라버리고 큰 강물도 형편없이 줄어들었습니다. 흑룡강성에서 걱정이 산같았습니다.

가물에 농사걱정도 컸지만 그보다는 총비서동지께 경박호의 아름다운 풍치를 원모습대로 보여드릴수 없게 된것입니다. 호수물량이 너무 줄어 유람선을 직접 부두에 갖다대지 못하게 되였습니다. 저희들은 비 한방울 떨어지지 않는 하늘을 원망하면서 비상대책으로 부두에서 유람선까지의 수십m구간에 다리형식의 발판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런데 글쎄 총비서동지께서 경박호에 오시기 며칠전부터 동북광야에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밤낮을 이어 비줄기가 쏟아지니 하루에 보통 호수수위가 60cm 높아졌습니다. 새벽녘에는 뚝 멎고 총비서동지께서 호수에 도착하시자 하늘은 구름한점 없이 맑게 개였습니다. 물이 가득찬 경박호는 풍치수려한 아름다운 본래모습을 갖추고 총비서동지를 맞이하게 되였습니다. 아마 하늘도 자연도 총비서동지를 존대하고… 중조친선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경박호를 아름답게 장식한것 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성장이 부어올리는 축배잔을 기울이시였다. 목단강시 민족악단 배우들이 열정적으로 부르는 노래를 들으시면서도 해빛에 눈부신 잔물결이 일렁이는 푸른 호수와 아지랑이가 사라지고 비에 말쑥하게 씻긴 산들의 선명한 자태를 점도록 바라보시였다.

오랜 세월의 흐름속에 산천도 변모되였지만 나라와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운 옛 투사들이 력사에 남긴 우의와 친선과 뉴대의 고귀한 전통은 경박호의 푸른 물에 비껴 영원할것이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