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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남의 열풍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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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6,586회 작성일 22-08-02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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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편

 

12

저녁을 먹는둥마는둥 대충 설때리고 밖으로 나선 김동철은 음침한 땅거미를 밟으며 무거운 걸음을 옮기였다.

저녁 8시부터 공장회관에서 진행되는 기술자협의회에 참가하러가는 길이였다.

김동철에게 있어서 이 모임은 그 어느 모임보다도 가장 두렵고 괴로운것이였다. 당의 방침으로 받아안은 이해의 생산과제들중 어느 하나도 변변히 집행한것이 없었다.

그 원인을 분석하느라면 어차피 행정책임자인 지배인의 과오에 대하여 상기하게 될것이였다. 그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그보다도 더 걱정은 아무리 머리를 짜도 년말전으로 맡겨진 대상설비생산과제를 수행할수 있는 방도를 찾아낼수 없는것이였다.

김동철이 회관안에 들어서니 벌써 300여명은 실히 넘을상싶은 사람들이 집행석을 마주하고 앉아있었다.

《지배인동무, 빨리 오시오.》

집행석에서 조직비서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던 주혁민이 급하게 손짓을 하였다. 그는 집행석가운데자리에 김동철을 앉히고나서 서둘러 모임을 선포하였다.

《협의회를 시작합시다. 로동행정과 과장동무, 출석을 보고하시오.》

살집좋은 중년의 사나이가 뜨직뜨직 일어나서 늘 들고다니는 푸른 뚜껑을 씌운 사업일지를 뒤지였다.

《후방부지배인과 주물직장장이 참가 못했습니다.》

후방부지배인은 도당에서 불러서가고 주물직장장은 병으로 출근을 못했다고 하였다.

《도당에서 후방부지배인을 왜 불렀습니까?》

주혁민이 검은 눈섭을 치켜올리며 조직비서에게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저한테는 그런 련락이 없었습니다.》

《공장당위원회에 알리지도 않고 부를수야 있나. 지배인동무도 모르겠지요?》

주혁민이 물었으나 김동철은 아무 반응도 없이 머리를 수굿하고 앉아있었다. 그는 도당에서 후방부지배인을 부른것이 아니라 후방부지배인자신이 스스로 찾아갔을거라고 짐작하였다. 최근에야 그는 주혁민책임비서와 후방부지배인의 류다른 인간관계에 대하여 알게 되였다.

김동철은 그들의 관계를 같은 회령탄광기계공장출신인 곽경두에게서 들었다. 곽경두는 공장생산부기사장을 하다가 최근에 해임되여 업무부 책임부원으로 내려간 사람이였다.

곽경두는 성격이 쾌활하고 인간관계에서 원만하며 체구도 름름한 50대의 미남자였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령에 있을 때부터 곽경두를 알고있는 주혁민책임비서도 그를 도량이 넓고 어려운 때 남을 잘 도와주는 우리 사회의 멋쟁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는 사교성도 있어 업무부에서 물어오지 못하는 귀한 물자도 그가 가면 영낙없이 해결해오군 하였다. 그에게 있는 한가지 큰 결함은 전문부문의 실력이 부족한것이였다. 청진광산금속대학출신의 야금기사인 그는 주물직장 책임기사로 있을 때도 그래 생산부기사장을 할 때도 그래 자기가 맡은 기본사업을 아래사람에게 맡기고 주로 업무부사업을 도와주러 다니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혁민은 당위원회 비서처에 제기하여 그를 공장직맹위원장 겸 업무부 책임부원으로 돌리고 유압직장 현장기사인 최강철을 생산부기사장으로 임명하도록 하였다.

김동철은 세번째 줄 중간구역에 앉아있는 허여멀쑥한 얼굴에 파도형의 검은 머리를 멋지게 넘긴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 사람이 바로 엊그제까지 생산부기사장을 하다가 업무부로 옮겨간 공장직맹위원장이며 업무부 책임부원인 곽경두였다. 그는 지배인의 눈길과 마주치자 무슨 뜻에서인지 고개를 끄덕여보이였다.

주혁민이도 곽경두쪽에 얼핏 눈길을 스치더니 장내를 향해 웃으며 말하였다.

《지금 별 우스운 소문이 다 돌고있습니다. 회령에 있을 때 후방부지배인이 나에게 폭군이라고 비판한적이 있는데 그때문에 복수당할가봐 그가 지금 직장을 옮길 공작을 한다고 합니다. 그럴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내 동무들앞에 약속합니다. 좋은 비판을 해준 사람한테 왜 복수하겠습니까? 후에 나에게서 그런 개인감정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제때에 비판하시오. 이것은 300명 사람들앞에서 약속한것이니 어길수 없습니다, 하하하.》

주혁민은 대범하게 웃었으나 김동철은 속으로 여간 놀라지 않았다.

그는 책임비서만은 그런 소문이 퍼지고있는것을 모르는줄로 알았다. 장내가 수선거리였다.

주혁민은 장래를 정돈시킨 다음 협의회를 시작하자고 하였다.

《먼저 올해에 우리 공장이 받아안은 국가과제들이 어떤것이며 집행상태가 어떤가를 상기해봅시다. 생산부기사장동무, 알려드리시오.》

키는 작은편이나 몸이 통통하고 동그란 얼굴에 눈이 억실억실한 중년사나이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가 유압직장 현장기사로 있다가 이번에 생산부기사장 겸 《HM기》제작단 부단장으로 임명된 최강철이였다.

강철이라는 억센 이름과는 달리 성미가 지내 어진 그는 집행부에 앉아있는 지배인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펴보고 생산계획수행정형을 대상별로 하나씩 찍어가며 알려주었다.

김동철은 면구스러워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올해 대상설비생산과제만 하여도 무려 20여종이나 되는데 계획수행정형이 말이 아니였다.

10월 중순현재 주물직장같은것은 30프로도 못되고 건설직장은 10프로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지배인, 당비서가 마음을 맞추지 못하니 이렇게 됐지요.》하고 사람들마다 욕을 하는것 같아 얼굴이 뜨끈뜨끈하였다.

계획과제수행정형에 대한 수자발표가 끝나자 주혁민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사람저사람 둘러보며 실로 기관총련발탄을 퍼붓듯이 격렬하게 말하였다.

《동무들, 실태는 이렇습니다. 과연 막연합니다. 그러나 계획은 곧 법이니만큼 무조건 집행해야 합니다. 계획을 못하면 법을 어긴것으로 되니 당증을 내놓고 법정에 올라서야지요. 지배인동무, 안그런가요?》

김동철은 온몸의 피가 얼굴에 몰리는것 같았다.

주혁민이 손바닥으로 집행탁을 두드리며 계속하였다.

《미진된 생산을 과연 년말전으로 보충할수 있는가? 있습니다. 결심하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여 방도를 탐구하면 길이 열립니다. 아직 80일이라는 날자가 있습니다.》

그는 생산이 미달된 매 직장들에서 계획수행을 위한 방도를 탐구해보라고 이미 한달전에 과업을 주었으니 이제부터 안을 내놓고 토론해보자고 하였다.

순서를 정한것도 없으니 자유롭게 격식이 없이 토론에 참가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누구도 쉬이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성미가 급한 책임비서는 더 기다려내지 못하고 주물직장 부직장장을 불렀다.

보통키에 얼굴이 나부죽하고 오목눈인 쉰살 났을가말가 한 사람이 어딘가 맞갖잖아하는듯 한 표정을 하고 일어섰다. 그는 이번에 강충현에게 시험소소장자리를 인계하고 주물부직장장으로 옮겨앉게 된 사람이였다.

실력이 있는 야금기사였으나 당위원회에서는 그가 기계공학과 단조, 조기와 같은 제2차 가공작업들에는 밝지 못해서 강충현이와 소장자리를 교체했었다.

주혁민은 부직장장의 납작한 흰 얼굴을 지켜보며 말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공장의 첫 작업공정을 맡은 주물이 맨망꼬리에 서있는거요. 동무네때문에 모든 가공직장들에서 생산이 걸리고있소. 부직장장동무, 토의된 안을 내놓소.》

부직장장은 고개를 창문쪽에 돌린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자그마한 오목눈에는 엊그제 주물직장으로 옮겨온 나보고 왜 못살게 구느냐하는 불만기가 헨둥히 비쳐있었다.

《왜 말이 없소? 주물에서 앉아뭉개니 탄광에서 목마르게 기다리는 탄차, 쇠동발, 사슬만곡, 콘베아 등 여러 생산이 다 죽고있소. 동문 〈HM기〉베트도 못하겠다고 나자빠졌다면서?》

《〈HM기〉베트는 큰 물건이여서 주물직장의 용선로로는 만들기 곤난합니다.》

김동철이 주물을 두둔하였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였다.

《베트는 주철품인데 주물에서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벌써 못한다는 소리부터 하면 〈HM기〉를 개발하겠습니까.》

김동철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 쩔쩔매고있는 형편에서 10년후 총화하게 될 《HM기》에 대해선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주혁민은 《HM기》제작단 설계조 조장인 윤현덕실장을 불렀다.

《실장동무, 주물에서 나자빠지는데 베트를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HM기〉문제는 기술부기사장이 온 다음에 구체적으로 토론하겠지만 설계조에서 초보적으로 안을 어떻게 잡고있는지 들어봐야 하겠습니다.》

윤현덕은 위가 아픈지 잔주름과 깊은 주름이 엉켜있는 너부죽한 얼굴을 찌프리며 아직 이렇다할 안을 잡지 못하고있다고 하였다.

한가지 명백한것은 외국의 설계도를 그대로 모방하지 말고 공장의 실정에 맞게 개조해야 된다는것이였다.

《실례로 베트의 길이를 외국의것보다 1.2메터정도 짧게 하면 제가 부어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설계도개조문제가 우에서 허락되지 않고 또 우리 동무들속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기때문에 결심을 못하고있습니다.》

《우리가 할수 있으면 하는게지 그것까지 우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까? 그러지 않아 일전에 지배인동무가 서정후부부장이 설계도를 1미리메터도 변경시켜선 안된다구 해서 어쩌지 못한다고 하길래 내가 책임질테니 공장의 실정에 맞게 개조하자고 했소. 그런데 우리 공장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는데 누구요? 설계조 설태섭이! 탁석준이! 일어나시오.》

주혁민이 이름을 부르자 설태섭이 튕겨나듯 몸을 솟구고 탁석준은 황소같은 느린 동작으로 어깨를 찌그렁거리며 일어섰다.

《설태섭동무! 동무가 반대하오?》

《아닙니다. 책임비서동지! 실장동지가 말씀한것처럼 우리 공장의 실정에서는 베트의 길이를 1.2메터 짧게 해야 성공할수 있습니다. 기어이 해내겠습니다. 우리 공장, 우리 실정에 맞는 우리 식의 〈HM기〉설계도를 제가 꼭 완성하겠습니다.》

《역시 젊은 사람이 패기있소. 동문 모호수학에 펄쩍 난다는데 한번 잘해보기요. 털어놓고 말해서 〈HM기〉의 운명은 동무네 설계조에 달려있다고 말할수 있소. 탁석준동무, 동무도 자신있겠지?》

주혁민이 허리를 구붓하고 서있는 탁석준에게 눈길을 돌리였다.

《저는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자기 견해를 발표할수 있을만큼 준비가 돼있지 못합니다. 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탁석준은 행동도 굼뜨지만 말도 령감들처럼 뜨직뜨직하게 하였다.

《동무더러 완행이라고 한다는데 진짜 완행이로군. 하하하… 제작단 부단장인 생산부기사장의 생각은 어떻소?》

주혁민은 맨 앞줄에 앉아있는 최강철에게 물었다.

《우리 공장의 실정에서 베트의 길이를 외국의것보다 더 짧게 만들어야 한다는데 대해선 더 론의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경우 대단히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HM기〉의 주추돌이라고 할수 있는 베트의 규격을 달리하면 9천여개나 되는 다른 모든 설비, 부속품들의 규격도 달리하여야 합니다. 그 부분설계도까지 다 고쳐서 도면을 완성하자면 한 1년 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따라서 그런 경우 본격적인 설비제작은 래후년도부터 시작할수 있습니다. 아마 이런것을 념두에 두시고 어버이수령님께서 1993년에 시작해도 좋고 1994년에 시작해도 좋다, 그저 21세기전으로 여러대를 만들어내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최강철은 똑바로 서서 침착하고 명확하게 말하였다.

《래후년이라? 나같이 성질 급한축은 기다리기가 베차겠군. 하하하, 설계사업소 소장동무 좀 말해보시오.》

주혁민은 최강철이옆에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앉아있는 대리석처럼 얼굴이 매츨한 중년남자를 지켜보았다.

《예, 저는》하고 소장은 일어나지 않고 걸상등받이에 몸을 제끼며 틀지게 입을 열었다.

《저는 한마디로 말해서 〈개조〉를 반대합니다. 설계도를 개조하자면 기술적인 담보도 없거니와 설계원 3명이 1년품을 들여야 한다니 위험천만한 모험이고 막대한 시간랑비, 로력랑비입니다. 저는 긴장한 설계로력때문에 머리를 앓고있는 사람으로서 1년에 1천여공수의 설계로력을 랑비하게 되는데 대해 묵과할수 없습니다. 서정후박사선생이 하라는대로 설계도를 그대로 리용하면 첫째로, 안전하고 둘째로, 1년이라는 시간과 1천여공수나 되는 설계로력을 절약하게 되는데 왜 한사코 개조하겠다고 합니까.》

설계사업소 소장 독고명천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고무공이 튕기듯 설태섭의 머리가 훌쩍 우로 떠올랐다.

《독고소장동지! 도면을 개조할 필요성에 대해선 이미 앞에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공장의 설비를 가지고는 베트의 길이를 1.2메터 줄이지 않고서는 주물할수 없다고요.》

《단번에 주물할수 없으면 두토막을 내서 주물한 다음 용접방법으로 련결하면 되지 않는가. 안된다는 소리만 하지 말구 탐구하면 방도가 나온단 말이요.》

《야, 독고소장동지두. 그렇게 하면 베트우에서 움직이는 왕복대가 10톤이상 되는데 용접한 련결부가 0.001미리메터의 정밀도를 유지해냅니까. 최고정밀기계라는걸 생각하셔야지요.》

설태섭은 안타까운듯 한숨을 쉬였다.

《아니요. 부러진 뼈를 붙이면 더 견고해지는것처럼 용접을 잘하면 더 든든해져!》

독고소장은 뒤에 서있는 설태섭을 돌아다보며 소리높이 웨치듯이 말하였다.

《유기체와 무기체가 같습니까. 참 답답합니다.》

설태섭의 말투도 좀 거칠어졌다.

김동철은 어처구니가 없어 세모눈을 찌프릴사하고 독고소장을 아래우로 훑어보았다. 그는 독고소장이 《HM기》에 대한 초보적인 상식도 없다고 생각되였다. 실지 독고소장은 《HM기》에 대한 과학기술적인 일가견을 가지고 《개조》를 반대하는것이 아니였다. 그에게는 세가지 리유가 있었다.

반대하는 첫째 리유는 이미 그가 말한것처럼 설계사업소의 로력을 빼앗기우는것이 아깝기때문이고 둘째 리유는 기계공학박사인 서정후를 우상화하고있기때문이였다. 그는 과학기술의 수준상 차이에서 서정후를 봉황새라고 한다면 공장의 기술자들은 촌닭에 불과한것으로 보고있었다. 이를테면 그는 서정후를 지지하는 길이 성공의 길이라고 확신하고있었다. 셋째 리유는 일종의 심술이였다. 그는 책임비서와 지배인이 설계사업소 소장도 갈아치울 계획을 하고있다는 말을 들은 때부터(물론 그것은 뜬소문이다.) 그들에 대한 감정이 아주 나빠졌다.

김동철은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 독고소장을 잠시 지켜보다가 주혁민에게 《〈HM기〉는 당장 급한게 아닌데 후에 제작단동무들끼리 따로 토론하지 않겠습니까. 뭐 언어가 통해야 토론하지요.》하고 독고소장을 념두에 두고 혀를 찼다. 이것을 감촉한 독고소장의 하얀 얼굴이 대번에 이그러졌다.

주혁민이도 《HM기》의 베트를 두토막내서 용접으로 붙이자고 한 독고소장의 어이없는 말에 놀란듯 고개를 흔들며 《우리 기술일군들이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지식갱신주기는 짧아집니다. 공부하지 않고 1~2년 멍하니 지나면 무식자가 됩니다. 이제는 기술이 없고 지식이 없는 기술일군은 스스로 자리를 내놓아야 합니다.》하고 엄하게 오금을 박았다. 새빨갛게 익었던 독고소장의 얼굴이 이번에는 피기가 가신듯 하얗게 질리였다.

장내의 분위기가 저으기 긴장해졌다.

《그렇게 합시다. 〈HM기〉는 후에 따로 보기로 하고 계획문제를 토론합시다.》

주혁민은 아까 일어섰다가 《HM기》문제가 제기되여 슬그머니 앉아버린 주물부직장장을 다시 일궈세웠다.

《부직장장동무, 미진된 계획을 어떻게 년말전으로 보충하겠는지 탐구된 방안을 말하시오.》

주혁민이 다그어댔으나 부직장장은 도전적인 태도로 고개를 외면한채 창문밖을 내다보고만 있었다.

《왜 대답이 없소? 어서 말하오.》

그제야 부직장장은 고개를 돌리며 짜증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주물에 내려간지 14일밖에 안되는 저한테 왜 자꾸 다그어댑니까. 저에겐 아무런 책임도 없습니다. 저보고 묻지 말고 여기 주물직장 책임기사도 있고 분초급당비서도 있으니 그들에게 물어보시오.》

주혁민이 뜻밖인듯 얼굴에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부직장장을 지켜보는 그의 커다란 검은 눈이 숯불처럼 이글거리였다.

《동무, 거 무슨 태도야. 누가 동무한테 책임을 묻는가. 토론된 방안을 말하라는게 아닌가. 14일이라는 날자가 적소? 14일동안에 주물직장 하나 료해하는게 뭐가 힘들어! 방안토의야 왜 못하겠는가. 직장장이 없으니 동무한테 물어보는게 아닌가.》

김동철이도 부직장장이 곱지 않게 보이였다.

그는 부직장장이 이번 간부사업에 불만을 가지고 저렇게 도전적으로 나온다고 생각되였다. 그러고보면 곽경두는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싶었다. 그는 생산부기사장자리에서 떨어져 업무부 책임부원으로 내려갔지만 아무런 불만도 없이 웃으며 지냈다.

김동철은 그가 자진해서 《HM기》제작단 후방사업을 맡겠다고하여 이번에 후방조조장으로 임명하였다.

《책임비서동무, 주물도 따로 보지 않겠습니까? 꼴을 보니 저 동무넨 방안토론을 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김동철이 기분이 언짢아 입을 떫게 다시며 이렇게 의견을 제기하자 주혁민이도 동의하였다.

《좋습니다. 시간랑비를 하지 말고 주물직장은 따로 봅시다. 그다음 건설직장! 년간계획을 10프로밖에 하지 못한 건설직장장동무, 일어나시오.》

기계체조선수처럼 균형이 잡힌 미츨한 몸매의 중년사나이가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일어섰다.

《한가지 물읍시다. 동무넨 어떻게 되여 년간계획을 10프로밖에 못했소. 지금까지 아홉달동안 도대체 뭘했소?》

건설직장장은 버릇인지 그냥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면서 흘끔흘끔 지배인의 눈치를 살피고있을뿐 입을 열지 못했다.

《건설이 그렇게 된데는 나에게 잘못이 많습니다.》

김동철이 허공을 올려다보며 침울하게 중얼거리였다. 그는 지금까지 중앙과 도, 구역에서 제기되는 일체 로력동원을 건설직장에서 담당하게 했었다. 지금도 230명 건설직장로력중 50프로의 인원이 동원으로 외지에 나가있었다. 외부동원에 건설직장로력을 쓴것은 5월10일종합공장의 모든 생산직장들이 전국가적인 공업경제와 련쇄되여있지만 건설직장만은 다른 공장, 기업소들과 맞물린 생산이 없기때문이였다.

가령 탄차직장에서 탄차를 생산하지 못하면 그 영향으로 나라의 석탄생산에 지장을 주게 되지만 올해 건설직장의 계획과제인 창광원식목욕탕건설을 못한다고 해서 나라의 경제발전에 손해를 주는것은 조금도 없는것이였다.

김동철은 이러한 피치못한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고나서 《그래서 죽으나사나 생산과제들은 해보도록 노력하겠지만 건설과제는 아무래도 죽여야 할것 같습니다. 건설로력을 모두 생산직장에 돌릴수밖에 없습니다. 건설과제를 못하는 경우에는 내가 욕을 먹고 지배인자리를 내놓으면 그만이지만 생산과제를 못하면 문제가 다릅니다. 내 목을 내놓는다고 해서 나라의 경제발전에 미치는 손해를 막을수 없습니다.》하고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그게 지배인동무의 해결방도입니까?》

주혁민은 성급하게 반문하고 또 그처럼 급하게 말을 이었다.

《건설과제든 생산과제든 국가과제는 절대로 에누리할수 없습니다. 무조건 집행해야 합니다. 건설로력을 생산직장에 돌리다니 그게 될말입니까.

지배인동무가 전극생산기지를 애써 꾸려놓았는데 거기서 일하는 로동자들을 생각해서라도 목욕탕을 잘 꾸려야 합니다. 그들이 흑연가루를 뒤집어쓰고 일하지 않습니까.》

책임비서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김동철은 비수에 찔리운듯 몸을 흠칫하였다. 듣고보니 심각한 군중관점문제였다.

《전극생산기지말이 나온 기회에 하나 강조하겠습니다.》

김동철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혁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였다.

《일부 일군들이 우리 공장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할수 있는 전극생산기지를 놓고 자력갱생을 비속화한다느니, 사이비자력갱생기지라느니 삐뚠 소리를 하는데 아주 옳지 못합니다. 우로부터 전극이 보장되지 않아 지배인동무가 아글타글 피땀을 바쳐 꾸린것인데 사이비가 뭐고 비속화가 뭐요. 그래도 그것이 있기때문에 주강직장에서 전기로가 살고있지 않는가. 다시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문젤 보겠습니다.》

김동철은 인두에 지지우는듯 눈뿌리가 확 달아올랐다.

《그리들 알고 발언을 주의하시오.… 그런데 지배인동무, 무슨 동원이 그렇게 많아서 건설로력의 절반이상이 외지에 나가있습니까. 중공업부문의 로동자, 기술자들은 농촌동원도 하지 않게 되여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 그렇게 됩니까. 동원을 시키는 사람들도 자기대로 당당한 명분이 있습니다.》

김동철의 목소리는 울분에 떨리였다.

목욕탕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김동철은 전 당비서에 대한 불쾌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전 당비서는 목욕탕을 건설해야 한다, 제기된 과제를 무조건 관철해야 한다 하고 말을 많이 하였으나 그 과제를 수행할수 있도록 도와준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쓸데없는 일로 생산지휘일군들을 오라가라 하며 들볶아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였다.

《요구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집행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죽하면 건설중대를 〈동원폰드〉로 쓰겠습니까.》

《좋습니다. 알아보고 외부에 동원된 건설로력을 모두 불러들입시다.》

주혁민은 무질서한 사회동원이 나라의 경제를 망치게 하고 생산자들의 기술기능을 높이는데 방해를 끼친다고 하였다. 무슨 문제가 제기되면 동원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일부 일군들의 악습때문에 나라가 오히려 골탕을 먹는다는것이였다.

《물론 국가적으로 제기되는 중요한 동원에는 성실히 참가해야 합니다. 그런 경우에도 비생산부문의 관리성원들을 동원시켜야 합니다.… 건설직장장동무, 로력을 다 불러들이면 창광원식목욕탕건설을 년말전으로 완공할수 있겠습니까?》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던 건설직장장이 이마를 문지르며 다시 일어섰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창광원식목욕탕은 7개월분 작업량입니다.》

《로동정량규정에 의하면 7개월이 아니라 8개월분 작업량입니다.》

김동철이 건설직장장의 말에 동을 달고 상체를 뒤로 제끼였다.

《8개월이요? 좋습니다. 창광원식목욕탕은 내가 맡겠습니다. 나는 200명의 로력을 가지고 40일동안에 하겠습니다. 지배인동무한테 11월 25일전으로 총화를 짓겠습니다.》

김동철이 뒤로 제꼈던 웃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책임비서를 바라보았다.

《내가 다른것은 몰라도 창광원식목욕탕은 자신있습니다. 하하하…》

주혁민은 언제 성이 났던가 싶게 신바람이 나서 폭이 넓게 몸을 좌우로 흔들며 창광원식목욕탕을 건설해본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그는 새별군당에 있을 때 200명의 로력으로 5개월동안에 창광원식목욕탕을 건설하였다. 그후 회령탄광기계공장에서는 경험이 축적되여 200명의 로력으로 군목욕탕보다 좀 작은 목욕탕을 석달동안에 완공하였다. 이제는 목욕탕을 2개나 지어본 경험이 있으므로 200여명의 로력으로 창광원식목욕탕을 40일동안에 건설할 자신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단조직장옆에 넓은 공지가 있으니 거기에 목욕탕을 건설하여 단조직장, 주물, 주강직장에서 나오는 페열로 목욕물을 덥히자고 하였다. 페열의 온도가 500도이상이므로 그것이면 창광원식건물의 난방까지 충분히 해결할수 있다는것이였다.

《2층으로 건설하되 아래층에는 한번에 70명이상 수용할수 있는 대중탕, 독탕, 한증탕도 만들고 웃층에는 고급리발소를 차립시다. 그리고 한쪽옆에 도서실서고와 열람실을 잘 꾸려놓읍시다.》

주혁민은 좌석에 둘러앉은 300명 사람들을 쭉 둘러보며 이제는 과학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므로 지식과 기술이 없이는 일보도 전진할수 없다고 다시금 강조하였다.

로동자, 기술자들의 지식과 기술수준을 높이는데서 도서실운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지금 공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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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그런데 지금 공장에서는 기술준비실 한귀퉁이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창고와 같이 어스크레한 방을 도서실이라고 쓰고있었다. 거기에는 책도 별반 없었다.

김동철은 그 도서실에 제 모습이 비껴있는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혁민의 목소리가 그의 귀청을 울리였다.

《공장자금을 아끼지 말고 책을 많이 사다가 공장도서관을 하나 잘 꾸립시다. 정전직후 우리수령님께서 쏘련의 원조금으로 제일 처음 사들이신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책입니다. 책을 먼저 사들이셨습니다. 더 긴말할것없이 도서관과 고급리발소가 달린 창광원식목욕탕을 내가 당위원회분공으로 알고 40일동안에 꼭 건설해놓겠습니다. 지배인동무, 믿어주시오.》

김동철은 아무 반응도 없이 꼿꼿이 앉아있었으나 내심으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여기서 그는 주혁민과 전 당비서와의 차이점을 보았다.

책임비서가 이렇게 어려운 몫을 담당하여 밀어준다면 무슨 일이든 못하겟는가 하는 신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건설직장문제가 락착되자 주혁민은 단조직장, 탄차직장 등 실적이 낮은 직장들을 차례로 짚어가며 방안토의를 하였다. 그 과정에 건설적인 좋은 안들이 적지 않게 나왔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더 많았다. 제일 큰 걱정거리는 지난해에 못하고 넘어온 대형마광기대치차 4대를 올해안으로 생산하는 문제였다. 이발 하나의 직경이 4메터나 되는 마광기대치차를 깎자면 처음에 먼저 거친깎기를 하고 그다음에 그것을 조금씩 더 다듬는 정결깎기, 세밀깎기, 최정밀깎기 등 4개의 공정을 거쳐야 하였다. 그래서 마광기대치차 4대를 다 깎자면 아무리 빨리 한다 하여도 4달이상 걸려야 했다. 즉 120일이상 걸려야 하는데 이해는 8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마광기대치차를 맡은 중형가공직장에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도를 내놓지 못하였다.

협의회에서는 이러한 미해결문제들을 후에 따로 토론하기로 하였다.

×

기술자협의회는 한시간 반동안 진행되였다.

주혁민은 페회를 선언한 뒤 협의회참가자들에게 4.4분기 특별분공을 적은 봉투를 하나씩 내주었다. 그 봉투를 뜯어보고는 모두들 놀라는듯 얼굴에 강한 파문을 지었다. 300여명이나 되는 매개 성원들에게 그런 개별분공을 다 적어주자니 얼마나 많은 품을 들였겠는가 하고 생각하는듯 싶었다. 기실 주혁민은 300여개 봉투속에 그것을 적어넣느라 하루밤을 꼬박 새웠다.

김동철이도 봉투를 받아가지고 앉은자리에서 뜯어보았다. 주혁민은 몹시 놀라는 그의 얼굴표정을 일별하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김동철에게는 두가지 분공을 주었다. 하나는 10월안으로 《HM기》개발을 위한 10년전망계획서를 작성하여 당위원회에 제출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계획이 제일 많이 미달된 주물직장을 전문담당하여 그 직장의 년간생산계획을 12월 15일전으로 넘쳐수행하게 하는것이였다.

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동쪽하늘높이 반달이 떠있었다.

주혁민은 협의회에서 토의된 목욕탕건설부지를 돌아보고싶어 달그림자가 드리운 어둑한 구내길을 걸어갔다.

한시간 반동안이나 협의회를 하고 매개 참가성원들에게 특별분공을 적은 봉투까지 나누어주었으나 그의 마음은 웬일인지 가볍지 못하고 불안스러웠다. 기술자협의회의 기본목적은 올해 년간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방도를 찾아내는것인데 그 문제가 뜻대로 원만히 해결되지 못하였기때문이였다. 물론 새로 방안을 찾아낸것들이 적지 않았지만 주물직장을 비롯한 많은 생산직장들이 걸린 문제에 대한 해결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더우기 마음이 무거운것은 협의회에서 해결방도를 찾아내자고 자기가 열정적으로 호소할 때 그에 공감하는 표정들이 별로 보이지 않은것이였다.

주물부직장장의 도전적인 태도, 설계사업소 소장의 불만기어린 발언, 그밖에도 주혁민은 협의회를 하는 동안 일부 사람들의 얼굴에서 내키지 않아하는 기색을 읽었었다.

그는 자기가 사람들의 심장을 움직이지 못했다고 생각되였다.

(과연 올해 년간계획을 수행할수 있을가?)

협의회뒤끝에 이러한 불안이 그의 온몸을 사로잡았다.

올해 년간계획을 수행하느냐, 수행하지 못하느냐 하는것은 라남에 내려온 자기 사업에 대한 객관적인 첫 검토로 되는 일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일시 말밥에 올랐던 5월10일종합공장을 제 곬에 들게 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더우기 이해의 생산계획을 중시하는것은 그것이 20세기의 마지막장을 장식하는 1990년대의 첫해 과제라는데 있었다. 그때문에 수령님과 김정일동지께서도 1990년대의 첫발을 내디디는 이해의 모든 사업을 각별히 중시하시였다.

그런데 우리 공장이 년간계획을 수행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라앞에 무슨 면목이 서겠는가. 면목도 면목이지만 그로 인하여 국가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히 큰것이다.

5월10일종합공장이 올해계획을 수행하지 못하면 김철, 무산, 평화력, 안주탄광 등 수많은 련관공장, 기업소들의 래년도생산에 막대한 지장을 주게 된다. 그것은 또한 《HM기》를 개발하기 위한 10년전망계획수행에 첫 타격을 주는것으로 된다. 구내길을 걸어가는 주혁민의 머리에서는 여러가지 불안한 생각들이 고패질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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