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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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작성일 22-08-12 06:49 조회 4,057 댓글 0본문
제 2 편
1
1994년 10월 16일.
진회색 띠구름이 줄지어 펼쳐진 주작봉마루에는 소슬한 찬바람이 불어치고있었다.
수령님의 서거 100일추모회가 끝난지도 퍼그나 시간이 흐른 깊은 밤이였다.
추도가의 선률이 은은히 울려퍼지는속에 어디선가 접동새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울려왔다.
누가 말했던가, 접동새는 엄마 잃은 설음에 피를 토하는 새라고.
김정숙동지의 반신상앞에 한식경이나 서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검스레한 솔숲쪽을 이윽히 보시다가 돌아서시였다.
그이께서 타신 차가 만수대언덕쪽에 이르자 수령님의 동상주변은 오열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있었다.
눈물의 바다, 울음의 바다였다.
길녘에 차를 세우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터지는 아픔을 걷잡지 못하며 뿌잇한 눈길로 그 광경을 지켜보시였다.
허리굽은 백발의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이제 대여섯살 됐을가 말가한 어린이들도 보이시였다. 수령님의 동상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며 소리쳐 울고있는 어린이들을 보시느라니 그이께선 금시 가슴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으시였다.
수령님의 동상 대돌우에 꽃을 얹어놓는 사람들속에는 피부색이 각이한 외국인들도 있었다.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때로부터 100일이 지나도록 인민들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갑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프게 입술을 깨물며 눈길을 돌리시였다.
잠시후 집무실에 들어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동안 집필하시던 론문 《사회주의는 과학이다》의 원고를 펼쳐놓으시였다.
하지만 글줄들이 눈에 안겨들지 않으시였다.
방금전에 보신 광경이, 어머님앞에 가서 나누셨던 말씀이 되살아올랐다.
그이께서는 마지크를 쥐시였다.
오래전부터 사회주의의 《종말》에 대하여 떠들어대던 적들은 수령님의 서거이후 《조선의 사회주의는 빠르면 3일후에, 조금 늦으면 석달후에. 기껏 늦어서 3년후에는 꼭 망하게 된다》고 쾌재를 올리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적들의 《3, 3, 3》설에 반격을 가하며 마지크를 달리시였다.
굵다란 마지크를 약간 눕혀 휘둘러쓰시는 글줄, 일사천리로 굽이쳐가는 그 글줄들은 마치도 세계의 무대우로, 력사의 종심으로 호호탕탕히 굽이치는 거센 혁명의 물결을 방불케 하였다.
《장군님!》
그이께서는 문득 손을 멈추시였다. 부관이 옆에 서있었다.
《장군님, 오늘은 좀 쉬십시오. 그렇게 무리하시다…》
부관은 뒤말을 잇지 못하고 갑자기 돌아서더니 녀인들처럼 흐느껴 울었다.
그이의 손에서 떨어진 마지크가 원고지우에서 몇바퀴 굴러갔다.
그이께서 일어서시였다.
《그만 그치시오. 울지 말고 여기 좀 같이 앉기요.》
그이께서는 흐느끼며 서있는 부관을 응접탁앞에 앉히고 자신도 그옆에 나란히 앉으시였다.
부관은 벌겋게 이물린 눈으로 집무탁에 놓여있는 원고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글을 좀 쓰댔소. 요즘 나는 정황없는 속에서도 짬짬이 글을 쓰고있소. 이에 대해선 동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지. 그런데 동무까지 자꾸 울면 내 가슴이 더 아프지 않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목이 잠기여 더 말씀을 못하시였다.
《장군님, 죄송합니다. 사실 전 장군님을 위로해드리자고 방에 들어섰는데 오히려 제가 먼저… 항일혁명투사동지들이 만날적마다 저더러 장군님을 잘 위로해드리라고 부탁하군 하지만 전 오히려 장군님을 괴롭히고있습니다.》
부관은 급히 몸을 돌리며 손수건을 얼굴에 가져다댔다.
그이께서는 물결치는 부관의 어깨를 지켜보며 긴 숨을 내그으시였다.
《부관동무, 우리 힘을 냅시다. 힘을 내야 하오.
나는 아까 대성산에 가서 많은걸 생각했소.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님께서는 늘 말씀하셨소. 〈정일아, 어서 커라. 어서 커서 아버지장군님을 잘 도와드려라…〉하고… 나는 어머님을 뵙기가 죄송스러웠소. 어머님의 그 말씀, 그 목소리가 귀가에 자꾸 울려와서 가슴이 찢기는것 같았소.》
그이께서는 가슴이 답답하여 잠바쟈크를 내리긋고 일어서시였다. 그리고 몇발자국 걸어가다가 집무탁 모서리를 짚고 돌아서시였다.
부관은 간신히 울음을 참으며 서있었다.
《굳센 의지를 가지고 모든 고통을 이겨내야 하오. 오늘수령님을 잃고 돌이켜보니 수령님과 어머님은 정말 의지가 강한분들이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비장한 표정을 짓고 주먹을 그러쥐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수령님의 한생에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소. 어머님 또한 어리신 나이에 부모님과 오빠, 동생, 조카 다 잃으셨소. 그런데도 꿋꿋이 그 모든 불행과 고통을 이겨냈고 혁명을 하셨소.
〈슬픔을 힘과 용기로!〉이것은 사실상 수령님과 어머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에 내놓으신 혁명구호요.》
부관은 눈물에 젖은 손수건을 움켜쥐고 그이를 경건히 우러렀다.
《부관동무, 의지가 없이는 혁명을 못합니다. 우리는 울지만 말고 수령님의 유훈을 집행해야 합니다. 그때문에 나는 피눈물을 삼키면서도 글을 씁니다. 나는 이 땅에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울데 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기어이 관철할 결심이요.》
굳센 의지가 풍기는 그이의 말씀에 부관은 한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장군님, 저도 힘을 내여 일하겠습니다.》
《고맙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조금 목소리를 가라앉히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올해부터 3년동안을 완충기로 정하고 이 기간에 농업, 경공업, 무역제일주의를 실현하자고 하시였소. 이 전략은 최근년간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이 우리 나라를 압살하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고있는데 대처하여 우리 식 사회주의의 위력을 전면적으로 발양시킬수 있게 하는 혁명적인 전략이요. 그런데 수령님께서 돌아가셨소. 경제와 인민생활을 걱정하다가 돌아가셨소.》
그이께서는 눈을 지그시 감으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근심어린 안색을 지으며 현재 경제부문에서 나타나고있는 편향들을 지적하시였다.
《요즘 일부 일군들은 새 경제전략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수령님께서 서거 직전 7월 5일과 6일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하신 마지막교시가 수령님의 유훈이라고 하며 거기에만 신경을 쓰고있소.》
심지어 어떤 일군은 4년전에 수령님께서 과업을 주신 《HM기》개발은 뒤전에 밀어놓고 당장 원유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하면서 타빈제작에 필요한 자재를 다른 나라에서 400만딸라어치나 사오겠다고 하였고 또 어떤 일군들은 복선철길을 놓겠다고 제기하였다. 그런가하면 한두해사이에 큰 짐배 백척을 무어내겠다고 하면서 저마끔 나라에 손을 내밀고 설비와 자재, 로력과 자금을 요구하였다.
경제일군들의 머리속에서 경제전략은 사라지고 수령님의 마지막유훈 즉 1994년 7월 5일, 6일 교시를 관철하여야 한다는 생각만이 자리잡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문제를 시급히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엄중한 후과가 초래될수 있다고 하시였다.
《수령님의 유훈에 대한 관점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물론 7월 6일에 하신 교시가 마지막으로 하신 수령님의 교시인것만은 사실이요. 그렇다고 하여 그때에 하신 교시만을 유훈으로 생각하고 그전에 하신 교시는 유훈이 아닌것처럼 생각하면 큰 잘못이요. 나는 오늘 추모회를 하고나서 당중앙위원회와 정부의 책임일군들에게 바로 이 문제를 강조했소. 동무는 이것을 알아야 하오.》
그이께서는 멀고 험한 길을 같이 다녀야 할 부관을 의미심장히 지켜보시였다.
수령님의 서거이후 언제부터 부관에게 하고싶었던 말씀을 이 밤에 하시였다.
《수령님을 잃은 이 땅에 자연재해까지 들었소. 우리가 눈물만 흘리며 맥을 놓고 앉아있으면 끝장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첩첩히 막아선 고난과 시련의 준령을 보고계시였다. 오직 수령님께서만이 하실수 있었던 그 많고 어려운 일들을 이제 자신께서 다 맡아야 하시였다.
《장군님, 지금까지 제가 장군님께 너무 응석만 부리였습니다.》
부관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동무가 나한테 응석을 부리지 않으면 누구한테 부리겠소. 너무 심각해질건 없소.》
부관은 언제나 허물없이 따뜻이 대해주시는 그이의 인정미에 가슴이 후더워져 눈을 슴벅이며 서있었다.
《자, 한참 이야길 했으니 이젠 그만 돌아가 쉬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관을 내보내고 론문집필을 계속하시였다.
새벽까지 글을 쓰시였다.
그이께서는 매일과 같이 완강하게 일을 해나가시였다.
수령님의 서거 100일추모회가 있은지 나흘후 미국대통령 빌 클린톤이 김정일동지께 조미기본합의문에 대한 담보서한을 보내여왔다.
그날에도 그이께서는 원자력총국 일군들과 대외부문의 책임일군들을 집무실로 부르시여 새로운 대미외교활동방향을 밝혀주시면서 나라의 경제를 추켜세우기 위한 방도적문제를 거의 두시간에 걸쳐 말씀하시였다.
그 며칠후에는 농업과 경공업부문의 책임일군들과 담화를 하신데 이어 전기, 석탄, 금속, 기계 등 중공업부문의 책임일군들을 집무실로 부르시였다.
그날 리명국비서(그는 며칠전에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임명되였다.)를 따로 불러 말씀하시였다.
《11월 9일은 라남에서 〈HM기〉시험을 하는 날입니다. 지난 7월초 내가 그 동무들에게 수령님을 모시고 〈HM기〉를 보러 가겠다고 하였는데 갈수 없게 됐습니다. 비서동무가 일군들을 데리고 가보시오.》
《장군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리명국은 목메인 소리로 대답을 올리였다.
며칠후 리명국은 서정후, 장유선이들과 함께 라남으로 가기 위해 평양-두만강행 렬차에 올랐다.
몇명의 촬영기자들도 수행하였다.
그날은 11월 4일이였다.
이날 로동신문은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1994년 11월 1일 론문을 발표하시였다. 〈로동신문〉편집위원회는 김정일동지의 론문 〈사회주의는 과학이다〉전문을 게재한다.》라는 설명밑에 론문의 전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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