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17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산 작성일 22-08-07 03:57 조회 4,574 댓글 0본문
제 1 편
17
한정희는 종업원궐기대회시간이 박두하여 문화회관을 향해 달음박질을 쳤다. 그는 20여일전에 청진의학대학병원에 입원한 고영춘 후방부지배인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회관안은 발디딜 자리없이 사람들이 꽉 들어차있었다. 500명도 수용하기 빳빳한 회관에 천여명사람들이 들어와있어 걸상사이로 난 중심통로까지도 메워져있었다. 회관만으로는 종업원을 다 수용할수 없어 일부 사람들은 공장회의실에 유선장치를 하고 들어가있다고 하였다.
바깥날은 선선했으나 회관안은 사람들의 몸에서 풍기는 열기때문에 난로불을 지핀것처럼 화끈거렸다.
정희는 앉을 자리가 없어 허리를 낮게 구부리고 이쪽 저쪽을 살펴보며 메워진 통로를 뚫고 들어가는데 마침 저앞에서 고정순이 손짓을 하였다.
《정희동무, 여기와. 여기 앉아.》
정희는 겨우 그쪽으로 비집고들어가 조여앉았다.
《왜 이렇게 늦었니?》
《후방부지배인동질 면회하고 오는 길이야. 아이 숨 답답해. 회의를 몇시간 하겠는지 견디기 바쁘겠구나.》
정희는 손수건으로 부채질도 하고 얼굴의 땀기를 훔치기도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정순이의 바른쪽옆에 앉은 사람이 《후방부지배인동지의 병이 어떻소?》하고 말을 건네였다.
《아이 실장아바이시군요.》
정희는 고개를 숙여 알은체를 하였다.
윤현덕실장이였다.
정희는 그에게 인사를 했을뿐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 《부지배인동진 원래 기관지가 나쁜데 좀 치룔 받으면 일없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입원한지 한달이 돼오는데 한번도 가보지 못해 안됐군.》
윤현덕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고 기침을 깇었다. 구새통을 두드리는것 같은 윤현덕의 기침소리가 정희의 가슴을 아프게 자극하였다. 현재 기관지상태로 보면 현덕의 병은 부지배인에게 대비도 되지 않을만큼 훨씬 나빴다.
웅성거리던 회관이 일시에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지배인과 책임비서가 첫눈에 간부라는 인상을 주는 풍채있는 웬 사람을 앞세우고 집행부좌석을 꾸려놓은 회관무대로 걸어나오고있었다.
틀이 있게 걸어가던 풍채좋은 사람이 세개의 사무용책상을 나란히 붙여놓고 여라문개의 개별걸상들을 가져다놓은 집행석에 이르자 책임일군들에게 먼저 들어가앉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러나 책임일군들이 사양하여 손님이 마이크장치가 있는 가운데자리에 앉고 그 량옆에 지배인과 책임비서가 앉았다.
《저분이 누구야?》
정희가 고정순에게 묻는 소리였다.
《기계제작부문의 부부장인데 〈HM기〉제작의 총지휘자래. 기계공학박사라나.》
이마가 훤칠하고 량볼에 보기 좋게 살이 붙은 서정후의 혈색좋은 길둥그런 얼굴에는 노상 가벼운 웃음이 떠돌고있어 사뭇 인상이 좋았다. 그는 회의를 지도하러 내려온 간부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무슨 자료철같은것을 지배인에게서 받아가지고 천천히 한장씩 넘기였다.
책임비서가 자료철을 뒤적이는 서정후를 힐끔 스쳐보고 걸상에서 일어나 장내를 둘러보았다. 그동안 건설야외작업을 많이 한탓에 청동빛으로 그슬린 그의 얼굴에서 부리부리한 눈이 정기있게 번쩍거렸다. 언제나 앙양된 기분에서 활기있게 움직이던 그는 책상과 걸상사이에 서있는것이 답답한듯 쭉 빠져나와 집행부석을 등지고 서서 기운차게 소리쳤다.
《조용하십시오. 설계사업소 비서동무, 동무네 사업소에서 다 왔소? 설태섭동무 왔소?》
《예, 왔을겝니다.》
설계사업소 분초급당비서가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며 어정쩡한 대답을 하였다.
《왔을거요가 뭐요. 왔으면 왔다, 안왔으면 안왔다 대답이 명백해야지.》
책임비서가 사업소비서에게 퉁을 주자 중간구역 좌석에서 설태섭의 큰 머리가 불쑥 솟구쳐올랐다.
《예, 여기 왔습니다.》
《음, 왔구만.… 앉소.》
책임비서가 유독 설태섭의 출석정형을 확인하는것을 보고 정희는 뜻없이 가슴을 울렁거리고있는데 왈패형인 고정순이 짐짓 부러운 모양을 하며 시까슬렀다.
《야, 정희동문 좋겠네. 랑군님이 책임비서동지의 총애를 받으니…》
정희는 정순의 허벅다리살을 꼬집어 비틀었다.
《아, 야야!》
정순은 울상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윤현덕의 옆에 앉은 기술과의 청년이 상체를 쑥 내밀고 정순에게 시물거리였다.
《부러워하지 말구 동무도 하나 골라잡구레.… 내 채탄기직장 조립반장 김경복을 소개해줄가.… 그 친구 재간둥이야! 게다가 〈HM기〉제작단 가공조립조에서 같이 일하게 됐으니 그게 무슨 연분인지도 몰라.》
《싫어요! 그 사람 나보다 십년이나 우이구 공장대학생이야요. 야금기사가 시시하게 기능공로총각을 얻겠어요?》
《모르는 소리. 그 친구야말로 전망이 있어.… 그 친구 생일이 8월 19일인데 그게 행운의 수자래! 설계실장아바이의 결혼식날자도 8월 19일이요. 그렇지요, 아바이?》
윤현덕은 아무 대꾸도 없이 그저 벙긋이 웃고있는데 고정순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요! 그럼 그 동무하구 련앨 해본다, 호호호…》
《조용해! 책임비서의 말을 좀 듣자. 모임에 와서 그렇게 떠들면 되나. 어린이도 아니구 기사들이…》
윤현덕이 웃고 떠드는 젊은이들을 돌아보며 혀아래소리로 타일렀다.
두 처녀는 목을 움츠리고 저쪽 청년은 웃으며 혀를 내밀었다.
책임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종업원총회에 로관리공을 제외한 모든 동무들이 한명도 빠짐없이 참가해야 됩니다. 이미 말한것처럼 세포비서들이 참가정형을 장악해두시오.… 기술과 고정순동무 왔소?》
《어마나, 내 이름은 왜 부르니?》
정순은 덴겁하여 앞사람잔등에 몸을 숨기였다.
《고정순동무, 왔소?》
책임비서는 더 높은 목소리로 불렀다.
《예, 왔습니다.》
고정순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혁민은 대뜸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5월10일종합공장을 처음으로 현지지도하신 날이 언제요?》하고 물었다.
《1957년 5월 10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장을 5월10일종합공장이라고 합니다. 57년 당시 우리 공장의 이름은 라남기계공장이였습니다.》
고정순은 맑은 목소리로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우리 공장을 처음으로 현지지도하신 날은 언제입니까?》
책임비서는 엄격한 시험관처럼 한점의 웃음도 없이 물었다.
《1968년 6월 10일입니다.》
저으기 긴장해있던 처녀의 둥그런 얼굴에 이제는 활기가 넘치기 시작하였다.
《그때 동문 어느 직장에서 일하였습니까?》
고정순은 어리둥절하여 새까만 큰 눈을 깜빡거리더니 소리쳐 대답하였다.
《저는 1966년생입니다. 따라서 당시 저는 탁아소에서 보모들과의 사업을 하였습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무거운 표정을 하고 앉아있던 지배인까지도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서있는 고정순쪽을 바라보며 히뭇이 웃음을 띠였다.
서정후도 아래웃이가 다 보이도록 입을 벌리고웃었다.
오직 주혁민 한사람만이 성난 사람처럼 서있었다.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중 어버이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첫 현지지도의 날을 모르고있는 동무는 한명도 없을것입니다. 그런데 수령님의 첫 현지지도를 받은 사람이 지금 몇명이나 되는가? 그때에 있은분들이 있으면 여기 집행부석에 나와주십시오.》
수선거리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어디에서 누가 일어나는가 하여 앞쪽에서는 뒤를 돌아보고 뒤에서는 고개를 솟구고 이쪽저쪽을 살피였다.
맨 앞줄 가운데자리에 앉아있던 경로동직장 관리위원장이 무엇을 부정하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일어섰다. 어떤 행동을 시작할 때에 머리를 내젓는것은 그 사람의 버릇이였다. 다음으로는 앞줄 맨 옆에서 오성오기술부기사장이 일어나 뒤를 돌아보며 《현덕실장동무, 나오라는데 나갑시다.》하고 소리치고는 집행석이 있는 무대우로 올라갔다.
윤현덕은 무거운 짐을 진 사람처럼 힘들게 일어섰다.
한정희가 일어나서 길을 내주자 그는 지나온 인생의 자욱자욱을 되밟아보듯이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어갔다. 그뒤로 윤박람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따라갔다.
주혁민은 네사람이 집행부걸상에 앉는것을 보고 《동지들, 보다싶이 그때에 있은분이 우리 공장에 이제는 네분밖에 없습니다. 여기 오성오기술부기사장과 경로동직장 관리위원장은 기계전문학교를 졸업한 다음부터 오늘까지 34년동안을 우리 공장에서 일했고 윤현덕실장도 기계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라남기계공장에 배치되였는데 도중에 주간대학을 다니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윤박람동무는 1956년부터 오늘까지 34년을 검정실에서 검정공으로 일해왔습니다.
오늘 여러 동지들을 모이게 한것은 어버이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여러차례의 현지지도를 한번도 빠짐없이 현지에서 받은 오성오기술부기사장동무의 목격담을 들어보기 위해서입니다.》하고 말하고는 오성오에게 시간이 없으니 1시간을 넘기지 말고 추려서 이야기하라고 하였다.
장내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오성오는 두툼한 원고뭉치를 들고 연탁앞으로 걸어나왔다.
장내의 수백명사람들이 숨소리를 죽인채 귀를 도사리고 그의 입이 열려지기를 기다렸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