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를 통해 본 세계적인 수학자 조주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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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를 통해 본 세계적인 수학자 조주경 (1)
- 새별(직업; 학생, 주소; 심양)독자의 요청에 대한 회답기사 -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절세의 위인들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서 지난날 곡절많은 생활의 길을 걸어온 오랜 지식인들도 우리 제도에서 자라난 새 세대 지식인들도 다같이 보람찬 과학탐구의 한길을 걸으며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 제자로서 값높은 삶을 빛내여올수 있었습니다.》
공화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과학탐구에 한생을 바친 지식인들중에는 세계적인 수학자 조주경선생도 있다.
본사편집국은 특출한 과학연구성과로 세계수학발전에 크게 기여한 조주경선생에 대하여 그가 남긴 일화들을 통해 소개하려고 한다.
어머니도 이루어줄수 없었던 배움의 꿈
1931년 9월 경상북도 영양군의 어느한 빈농의 가정에서 태여난 조주경선생은 어릴적부터 배움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다.
나무를 해가지고 돌아오다가도 글소리 울리는 학교창가앞에서만은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하였으며 키돋움하면서 한문제한문제 적어놓았던 수학학습장때문에 《글도적》으로 몰려 왜놈아이들의 발밑에 짓밟힌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일찌기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던 그의 어머니는 이러한 아들의 모습을 여러번 목격하고는 궂은일, 마른일 가림없이 해가며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그를 소학교에 입학시켰다.
피타는 노력과 정열을 가지고 공부에 전심전력한 조주경선생은 인차 모든 과목에서 높은 실력을 나타내였으며 특히 수학과목에서는 따를 학생이 없었다.
당시 그는 학과경연들에도 여러번 참가하여 최우수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일제의 극악한 민족차별정책으로 하여 1등의 자리는 늘 왜놈아이들에게 넘어갔다.
그때마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기를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진정한 조국이 없으면 개인의 희망과 재능도 꽃피울수 없다는 진리가 자리잡게 되였다.
이러한 진리를 그는 해방이 되였지만 미제가 판을 치고 근로대중이 착취자들의 억압밑에 신음하는 괴뢰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더욱 사무치게 절감하였다.
어느날 책방에 들렸던 그는 외국문으로 된 수학책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언제부터 몹시 보고싶은 책이였지만 그에게는 책을 살 돈이 없었다.
별수없이 책방을 나서는 조주경선생의 눈가에 황황히 돌아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며칠후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길바닥에 쓰러져있는 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낮에는 삯빨래를 하고 저녁에는 물지게장사를 하여 아들의 학비를 대여오던 어머니가 자기 피를 팔아 그가 보고싶어하던 책값을 마련하려 했던것이다.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으며 그는 사람 못살 지옥같은 사회를 저주하였다.
이를 계기로 대학을 그만둘것을 결심한 그는 그 돈으로 책대신 어머니의 약을 샀고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품팔이에 나섰다.
그러던 그는 주체39(1950)년 7월 인민군대에 의하여 고향이 해방되자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공화국의 품에 안기였다.
참된 새 삶을 안겨준 고마운 조국을 위해 용감히 싸우다 부상을 당하여 왼팔을 잃은 불구의 몸이 되였지만 그는 전쟁의 승리를 내다보시고 전선에서 싸우고있는 인민군군인들까지 대학으로 불러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에 의하여 김일성종합대학 물리수학부(당시)에 편입하게 되였다.
배움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고싶었던 조주경선생의 꿈과 애오라지 아들을 공부시키겠다고 그처럼 애쓰던 어머니의 소망은 이처럼 공화국의 품에서야 비로소 실현될수 있었다. (계속)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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