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장군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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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군님의 하루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정일동지는 그 누구보다도 조국과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시였으며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길에 한생을 깡그리 바치시여 조국청사에 영원히 빛날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신 절세의 애국자이십니다.》
하루는 아침으로 시작되고 저녁으로 끝난다.
허나 우리 장군님께 있어서 하루는 인민을 위해 스스로 무거운 짐을 걸머지신채 초인간적인 정력과 책임감으로 이어가신 불면불휴의 순간순간의 련속이였다.
주체91(2002)년 6월중순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새벽에 몇몇 일군들을 데리시고 지방에 주둔하고있는 인민군대의 어느한 부대 농장을 찾으시였다.
농장에 펼쳐진 밀보리포전을 매우 만족하신 표정으로 돌아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알곡생산을 늘이고 나라의 산과 들을 사회주의면모에 맞게 전변시켜나갈데 대한 강령적인 과업을 주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퍼그나 흘러 맑게 개인 하늘에는 해가 솟아올라 대지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하였다. 일군들은 병사들을 찾아 첫 새벽녘에 수백리길을 달려오신 장군님의 로고에 눈시울을 적시면서 그이께 잠간 다리쉼이라도 하실것을 말씀드렸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의 간청을 만류하시고 부대의 다른 한 단위를 더 돌아보신 뒤 승용차에 오르시여 다시 평양으로 향하시였다.
차창가에는 그때에야 포전으로 일나가는 농장원들이며 아침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의 모습이 언뜩언뜩 비껴들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일행이 새로 건설된 대동강맥주공장에 도착한것은 늦은 아침녘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최상의 질이 보장된 공장건물과 최신식설비들로 장비된 생산공정들을 돌아보시면서 멋쟁이공장이라고, 이제는 우리 인민들에게 사철 시원한 맥주를 더 많이 보내줄수 있게 되였다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11시가 거의다 되여서야 맥주공장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길로 또 평양일용품공장 치솔직장을 찾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현대적인 치솔생산공정들을 구체적으로 돌아보시며 치솔생산도 강모사가 센것, 중간것, 약한것 이렇게 3가지로 생산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몸이 약한 사람이 센 강모사로 만든 치솔로 이를 닦으면 이몸에서 피가 날수 있으므로 좋지 않습니다. 이몸이 약한 사람은 연한 강모사로 만든 치솔을 써야 합니다.》라고 친부모도 미처 헤아리지 못할 세심한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공장문밖을 나서시였을 때는 오전시간이 다 지났다.
일군들의 마음속에는 점심시간도 되였으니 그이께서 잠시나마 휴식하실수 있으리라는 한가닥 기대감이 자리잡았다.
그런데 어인 일인가.
치약과 치솔생산이 세계적수준이라고 못내 기뻐하시면서 공장일군들에게 생산을 꼭 정상화하라고 당부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행했던 일군들에게로 돌아서시며 동무들은 먼저 돌아가 휴식을 하여야 하겠다고, 아침일찍부터 나오라고 하여 먼길을 휴식도 없이 데리고다녀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였던것이다.
순간 일군들은 강한 충격에 휩싸여 그이께 무엇이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그만 말문이 막히고말았다.
자기들이 새벽단잠에 취해있을 때에도 집무를 보셨을 장군님, 휴식도 끼니도 건느시고 초소로, 공장으로, 농촌으로 언제나 드바삐 달리셔야 하고 삼거웃처럼 뒤엉킨 문제도 즉석에서 명명백백한 해답을 주셔야 하는 자신의 초고도의 정신육체적인 로고는 뒤에 두시고 그저 따라다니기만 한 자기들에게 오히려 휴식을 권하시다니.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감격에 북받쳐 아무 말씀도 못드리고 부디 안녕만을 바라며 인사를 올리는 일군들에게 손을 들어 작별인사를 남기시며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전사들은 남고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떠나시였던것이다.
그이의 하루하루는 이렇게 흘렀다. 그이의 위대한 한평생은 이런 날들의 련속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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