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신념으로 삶을 빛내인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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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신념으로 삶을 빛내인 혁명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형권동지는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을 단결의 중심으로,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우러러모시고 수령님께 충성다한 견결한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김형권동지는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주체적인 무장투쟁로선과 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국내에 파견되여 활동한 조선혁명군 무장소조의 책임자였습니다.》
오늘은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께서 서거하신지 87돐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는 온 겨레는 조국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혁명투쟁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김형권동지의 빛나는 한생을 감회깊이 돌이켜보고있다.
조선인민에게 불행을 들씌우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는 무자비한 철추를 안겨야 한다는것을 힘있게 선언하시고 파발리에서 악질경관 《오빠시》순사부장놈을 조선인민의 이름으로 단호히 처단하신 후 모여온 군중앞에서 격동적인 반일선전을 하시던 그분의 모습을 사람들은 오늘도 잊지 못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로선과 방침을 앞장에서 받드시며 그 실현을 위해 정력적이며 줄기찬 투쟁을 벌려나가시던 김형권동지께서는 변절자의 밀고로 원통하게도 놈들에게 체포되시였다. 매일과 같이 계속되는 중세기적인 고문, 어리석은 회유와 기만, 련이은 재판놀음과 가혹한 형벌…
말로써는 이루 다 형언할수 없고 육체마저 지탱하기 힘든 고통속에서도 그분께서는 일제와 끝까지 싸우지 못하고 체포되신것을 더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여기시며 잠시도 옥중투쟁을 멈추지 않으시였다.
옥중투쟁을 힘차게 벌리시던 어느날 그이께서는 한장의 《동아일보》를 받아보시였다. 거기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눈부신 활동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었다.
그이께서는 크나큰 감격과 흥분에 휩싸여 상처의 아픔마저 잊으신듯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북녘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김형권동지께서는 이날 백두광야를 주름잡으시며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단 한번만이라도 다시 뵙고싶은 간절한 그리움으로 가슴 불태우시며 우리 나라의 해방이 멀지 않았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를 회고하시며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형권삼촌은 눈을 감는 마지막순간에야 수감자들에게 숨기고있던 이야기를 하였다.
〈김일성은 내 조카이다. 그는 지금 만주에서 큰 혁명부대를 이끌고 왜놈들을 족치고있다. 그 부대가 국내에 쳐들어올 날은 멀지 않았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무장으로 싸우라. 무장을 들고 싸워야 왜놈들을 쫓아내고 나라를 해방할수 있다!〉
나는 형권삼촌을 생각할 때마다 카륜회의결정을 관철하는 길에서 청춘을 서슴없이 내던진 수많은 전우들을 눈앞에 그려보군 한다.》
그처럼 조국과 인민을 사랑하시고 위대한 수령님을 열렬히 흠모하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께서는 주체25(1936)년 1월 12일, 성에가 하얗게 불린 차디찬 감방에서 그리도 열렬하고 불같은 혁명열로 높뛰던 심장의 고동을 멈추었다. 그때 그분의 나이는 서른한살이였다.
참으로 김형권동지의 생애는 혁명가는 수령의 로선을 어떻게 받들고 관철해야 하며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혁명의 길에서 다진 맹세와 신념을 어떻게 고수해야 하는가를 후대들에게 보여준 고귀한 한생이였다.
그이의 한생은 너무도 짧았다.
하지만 생의 순간순간 위대한 수령을 모신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총대를 억세게 틀어잡고 싸울 때 반드시 승리한다는 진리를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신것으로 하여 그이의 한생은 우리 조국력사와 더불어 길이 빛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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