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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품에 안겨 혁명가극의 주인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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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341회 작성일 23-01-1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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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품에 안겨 혁명가극의 주인공으로

 

나는 누구보다 노래를 사랑한다.

철부지소녀시절부터 음악과 인연을 맺고 하많은 노래를 불러왔지만 노래 《한없이 고마운 조국의 품》 나는 남달리 사랑하며 즐겨부른다.

어제날의 이국살이 설음도 가셔주고

꿈에서만 그려보던 소원도 풀어주네

아 조국이여 그대는 수령님품

희망을 꽃펴주는 어머니여라

사랑의 품이여

지금도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지나온 나날들이 감회깊이 떠오르며 눈굽이 젖어든다.

1950년대말 거치른 일본땅에서 태여난 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몹시 좋아하였다.

그러던 1973년 여름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 공연을 본 후부터 나의 마음속에서는 성악가가 되고싶은 열망이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당시 온 일본땅을 뒤흔들어놓던 공화국의 만수대예술단이 내가 살던 후꾸오까현에서도 공연을 진행하였다.

세상에 태여나 그처럼 황홀한 공연을 처음으로 본 16살 애어린 나의 가슴속에는 성악가로서 청춘의 푸른 꿈을 꽃피워갈 희망이 보름달처럼 가득 부풀어올랐다.

하지만 거치른 자본주의일본땅에서는 그 누구도 나의 이 소원을 알아주고 풀어주지 못하였다.

오직 인민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사회주의조국에서만이 그 소원을 이룰수 있음을 깨달은 나는 1973년 10월 꿈결에도 그리운 공화국의 품에 안기였다.

낳아키운 부모는 바다너머 일본땅에 있었지만 나는 부모의 사랑보다 더 뜨거운 어머니조국의 사랑속에 부러운것없이 자랐다.

무료교육의 혜택속에 온갖 조건을 보장받으며 평양음악무용대학(당시)을 졸업한 나는 그토록 소원하던 가극배우가 되였다.

영광스럽게도 나는 20대처녀시절에 조국의 이름있는 예술단체에서 창작한 혁명가극 《피바다》 주인공역을 맡아 수행하게 되였다.

혁명가극 《피바다》 어머니로 불리우며 조국이 알고 인민의 사랑을 받는 가수로 보람찬 예술창조활동을 벌리던 그 나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으로부터 어머니역을 한 배우가 노래를 잘 부르니 작품의 수준이 쑥 올라간다고, 그는 혁명가극 《피바다》 품위에 맞는 진짜주인공역감이라는 최상의 평가를 받아안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였다.


- 혁명가극 《피바다》에서 어머니역을 수행하는 배우 조청미(가운데) -


조국의 사랑속에 공훈배우, 인민배우의 영예도 지니고 이름난 성악가수들에게도 드물게 차례지는 개인독창회를 여러차례 진행한 나는 국제성악콩클에 참가하여 순위권에 입상하고 음악특별상도 받았다.

예순이 지난 오늘도 나는 청춘의 활력에 넘쳐 주체음악예술의 후비들을 키우는 원종장인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에서 후대교육사업에 전념하면서 삶의 보람과 긍지를 한껏 느끼고있다.

나를 낳아키운 부모도 한갖 철부지소녀의 공상으로밖에 여기지 않았던 나의 희망, 나의 꿈, 그것은 따사로운 조국의 품에 안겨 신비한 전설에서처럼 현실로 활짝 피여났다.

하기에 성악가수로서 성공한 쉽지 않은 인생이라고 사람들이 축하해줄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군 한다.

절세위인들의 품에 안기지 못했더라면 나의 운명은 달리되였을것이라고.

진정 어머니조국이 있어 나의 복된 삶도 있으니 나는 앞으로도 노래 《한없이 고마운 조국의 품》 부르고 또 부르며 조국을 위해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나가겠다.

가슴마다 걸음마다 기쁨을 안겨주고

이 나라의 주인으로 한생을 빛내주네

아 고마워라 수령님 그 은덕

이 한몸 다 바쳐 충성다하리

효성을 다하리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교원 인민배우 조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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