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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행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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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188회 작성일 23-01-1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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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행기념관

 

공화국의 수도 평양의 고색창연한 력사유적인 련광정의 길건너편에는 품들여 다듬은 화강석을 정성다해 쌓아올려 건설한 특색있는 건축물이 있다.

그것이 바로 백선행기념관이다.

평양사람이라면 누구나 백선행녀인에 대해 잘 알것이다.

이 건물은 그가 한푼두푼 모은 돈을 서슴없이 내놓아 1920년대에 건설한것이다.

그후 그 건물은 2005년에 다시 보수개건되였는데 면적은 1 056㎡이고 3층으로 되여있다.

백선행은 1848년 11월(음력) 평양부 박구리(당시)에서 백지용의 맏딸로 태여났다.

그는 7살에 아버지를 잃고 14살에 시집을 갔으나 야속하게 2년후 남편까지 잃게 되였다.

이때로부터 백과부로 불리운 그는 이후로 헛눈 한번 팔새없이 남들이 꺼려하는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그는 첫 자선사업으로 만경대구역 선내동(당시 대동군 룡산면)에 석조다리를 건설하였다. 다리가 준공되자 인민들은 이름도 없이 《백과부》라는 별호만 가지고있던 그에게 착한 일을 한다는 뜻에서 《선행》이라는 이름을 주고 그것을 따서 다리이름을 《백선교》라고 지어불렀다.

백선행은 수중에 돈이 많았지만 부귀영화를 조금도 탐내지 않고 조반석죽하면서 자기가 저축해온 돈을 겨레를 위한 일에 아낌없이 바치였다.

당시 평양의 신시가지에는 부립공회당이 하나 있었다. 그 사용권이 왜놈들에게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백선행은 분개하여 조선민족을 위한 공회당건설을 발기하고 공사부담을 혼자서 걸머졌으며 수만원의 돈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이러한 그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민족의 계몽과 발전을 위해 금전을 아끼지 않은 인덕이 높은 애국자로 평가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애국의 뜻을 이어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4(2005)년 7월 어느날 일군들에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사라져가고있던 백선행의 애국적소행을 잊지 않으시고 그의 지성이 깃든 건물을 원상대로 잘 꾸리고 보존할데 대한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후 그이께서는 몸소 여러 차례에 걸쳐 기념관원상복구형성안준비정형과 기념관내부를 본래의 건물형식으로 꾸리는 문제와 거기에 필요한 비품보장문제까지 일일이 관심해주시였다.

그리고 다음해 6월에는 백선행기념비와 비설명문판을 백선행기념관의 구내에 세우도록 은정어린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하여 백선행기념관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바지한 사람들의 소행을 귀중히 여기시며 그들을 높이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뜨거운 은정속에 자기의 모습을 되찾게 되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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