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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국기를 떠올린 승리의 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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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140회 작성일 23-02-0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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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국기를 떠올린 승리의 군기

 

2월 8일!

총대이자 운명, 총대이자 조국임을 간직하고 사는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더없이 소중한 건군절이다.

무적강군에 대한 긍지와 자부에 넘쳐있는 인민들의 모습들을 보느라면 조선인민군의 1세대 군인으로서, 련대군기를 호위하여 불타는 락동강을 넘어온 전쟁로병으로서 류다른 감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과연 우리 국가의 자주권과 존엄수호의 상징으로 펄럭이는 군기가 없었다면 강대한 우리 조국의 오늘을 상상이나 할수 있겠는가.

이것은 군기와 끊을수 없는 인연을 맺고사는 총쥔 군인들만이 아닌 이 나라 인민의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의 가렬한 불길속에서 우리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이 발휘한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조국수호정신, 대중적영웅주의는 조국의 부강번영과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한 우리의 투쟁에서 더없이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부로 됩니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는 한폭의 색날은 군기가 있다.

바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근위 서울제3보병사단 8보병련대의 군기이다.

오늘도 전화의 그날처럼 군기를 우러러보느라면 그 기폭속에 나의 전우들의 옛 모습이 우렷이 떠오른다.

항일혁명투사였던 련대장 김증동동지, 운수중대 문화부중대장 주병화동지, 세포위원장 김응봉동지, 특무장 서춘홍, 련대군기수 중사 심윤익…

군기를 위해 목숨도 청춘도 아낌없이 바친 이들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나와 만나 군기에 얼굴을 묻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최고사령부까지 군기를 호송하던 못 잊을 그날들을 뜨겁게 회억할것이다.

그때가 바로 우리 인민군대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 올랐던 주체39(1950)년 9월하순 어느날이라고 기억된다.

그날 나는 김증동련대장으로부터 운수중대 문화부중대장 주병화동지와 함께 련대의 군기를 최고사령부까지 호송할데 대한 임무를 받게 되였다.

련대는 사단의 후퇴를 보장하기 위하여 수암산에서 마지막결사전을 벌리고있었다.

군기와 군기소대의 위치가 표시되여있는 지도를 넘겨주면서 우리들의 손을 억세게 잡아주던 련대장동지의 포연서린 투박한 두손의 따스한 온기가 아직도 느껴지는것만 같다.

《련대장동지, 기어이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련대는 못가도 군기만은 최고사령부에 무조건 가닿아야 하오.》

우리는 련대장동지의 당부를 련대장병들의 기대와 믿음으로 새겨안으며 떠났다.

발밑엔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다고 쓴 삐라가 락엽처럼 흩날리고 머리우로 가증스럽게 맴도는 적직승기에서 투항하면 살려준다는 지껄임소리가 그칠새없이 흘러나왔다.

후퇴라는 말은 아무리 멋있게 채색한다고 하여도 군인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힘겨운 시련이 아닐수 없었다.

더우기 우리 일행은 이제부터 부대와 멀리 떨어져 련대의 생명이고 존엄인 군기의 운명을 걸머지고 단독결심과 행동으로 총검의 숲을 헤쳐나가야 하는것이였다.

북으로 행군을 시작한지 얼마후에 군기를 호송하는 우리를 따라 소속도 병종도 서로 다른 70여명의 군인들이 합류하여 따라나섰다.

그들모두에게 있어서 군기는 근위 서울제3보병사단 8보병련대의 전투적상징이기 전에 성스러운 조선인민군의 군기였다.

하기에 가다가 숨지는 한이 있어도 최고사령부를 찾아가겠다면서 부상병들과 간호원도 군기를 따라나섰고 고향을 지척에 둔 의용군병사들도 군기와 운명을 함께 할것을 결심하고 군기를 옹위하였다.

군기를 호위하여 최고사령부를 찾아가는 그 길에서 우리가 무슨 고생인들 못겪었고 죽음의 고비는 얼마나 넘었던가.

지금도 태백산줄기를 따라 행군길을 다그치던 어느날 적들의 사면포위에 들었을 때의 일을 잊을수 없다.

우리들은 포위를 뚫고나갈 비장한 마음을 안고 군기를 세우고 격식없는 군무자회의를 열었다.

토의안건은 《성스러운 군기를 목숨바쳐 호위하여 최고사령부를 찾아갈데 대하여》였다.

문화부중대장 주병화동지가 토론을 하였다.

《동무들!

이렇게 결사전을 각오한 자리에 서고보니 항일혁명투사였던 련대장동지가 군기호송임무를 주며 하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련대장동지는 나에게 첫 군기가 태여나던 때의 일을 이야기해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군기도안창작에서 애를 먹고있는 일군들과 창작가들에게 군기도안을 만드는데서 공화국의 국장과 국기도안을 참고하여야 하겠다고, 우리 군대의 군기는 공화국기를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 국장을 그려넣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소. 나는 지금도 그 말씀에 담겨진 의미를 생각해보군 하오.〉

동무들! 군기를 보십시오.

이 기발이 단순히 8련대의 존엄과 생명으로만 되는가.》

주병화동지의 토론을 들으며 우리는 다시금 군기를 바라보았다.

붉은색과 푸른색, 흰색을 바탕으로 한 공화국의 국기도안에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싸운 항일혁명선렬들을 비롯한 조선의 진정한 애국자들이 흘린 피가 스며있고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창조한 조선민족의 슬기와 부강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우리 인민의 념원이 반영되여있다. 그리고 국장도안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와 로농동맹에 기초한 광범한 근로인민대중의 통일단결된 힘으로 현대적인 공업과 선진적인 농업을 건설하며 우리 나라를 세상에서 제일 으뜸가는 나라로 발전시키려는 우리 인민의 의지와 지향이 담겨져있다.

그러니 국기를 바탕으로 하고 국장이 새겨진 우리의 군기는 곧 인민군대가 진정한 인민의 군대, 참다운 인민의 나라를 지키는 정규무력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주는것으로 되지 않는가.

참으로 우리 인민군대를 영원히 인민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켜나가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에 받들려 탄생한 조선인민군의 군기였다.

군기를 바라보며 나는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온 민족이 신음하던 지난날도 돌이켜보았다.

약 한첩 살 돈이 없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워 지주집 꼴머슴으로 팔려가지 않으면 안되였던 소년,

지주놈의 개화장에 매를 맞아 퉁퉁 부어오른 다리를 끌고 진종일 나무하러 숲속을 헤매다가 소여물콩으로 배고픔을 달래며 외양간에서 새우잠을 자던 노예가 바로 나였다. 아니 이것은 나 하나만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지켜줄 진정한 군기가 없어 망국노의 설음을 강요당해야 하였던 조선민족의 모습이였다.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안겨주신 진정한 인민의 군기가 있다.

김일성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의 손길이 어려있는 인민의 군기!

이 기발을 잃는다면 살아도 죽은 목숨이고 우리모두가 또다시 피눈물나는 노예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기발을 지키지 못한다면 오곡백과 무르익는 우리의 땅, 만선의 기쁨이 출렁이는 우리의 바다, 웃음소리 끝없이 퍼져가는 우리의 하늘을 빼앗길것이 아닌가.

그렇다. 군기는 단순히 기발이 아니였다.

군기는 우리의 삶이였고 그 삶이 꽃펴나고 담보되는 조국이였다.

우리의 가슴속에서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어이 군기를 지켜낼 비장한 결심이 끓고있었다.

《군기소대를 보위하기 위하여 전원 날따라 앞으로, 군기소대는 통로가 개척될 때까지 안전을 위하여 뒤로!》

주병화동지의 명령에 생사를 가늠할수 없는 결전을 앞에 두고 마지막탄알마저 군기호위병들에게 넘겨주며 전우들은 적진을 향해 돌격하였다. 그들은 군기를 부탁한다고 하면서 적들이 자기들에게 몰려들면 그때 우리를 생각지 말고 거기에 수류탄을 던지라고 하였다.

특무장이였던 서춘홍동지는 마지막숨을 몰아쉬는 속에서도 군기배낭을 찾았고 피에 젖은 가슴에 군기배낭을 꼭 품어안은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렇듯 많은 전우들의 희생정신으로 하여 우리는 적의 산병선을 뚫고나갈수 있게 되였으며 락동강계선을 떠난 때로부터 76일 되던 날 적후 2 000여리를 헤쳐 군기와 함께 최고사령부로 들어서게 되였다.

76일과 목숨을 바꾼 전우들의 영웅적인 휘생으로 지켜진 군기를 가슴에 안으며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김증동련대장과 련대군인들의 모습이 오늘도 눈에 삼삼히 떠오른다.

그 시각 최고사령부로는 우리 부대의 군기만이 아니라 락동강계선까지 진출했던 부대들의 군기들이 하나둘 무사히 도착하였다.

최고사령부를 찾아들어온 그들의 행군로정은 서로 달랐어도 그 군기들에는 우리의 군기는 곧 조국이고 인민이라는 하나와 같은 신념이 비껴있었다.

정녕 군기는 우리모두에게 있어서 모진 고난과 시련을 뚫고 승리에로 인도한 강렬한 힘이였다.

해빛에 찬연히 빛나는 군기를 우러르는 부대군인들의 눈앞에는 군기를 호위하여 생사를 같이하다가 장렬하게 희생된 락동강의 전우들이 밝게 웃으며 안겨왔다.

억대우같은 부대장들이 사나이의 값비싼 눈물을 머금고 힘찬 구령을 주었다.

《련대 차렷, 군기를 향하여 우로 영접들어 총!》

피와 땀에 젖고 포연과 비바람에 색이 바랜 군기를 우러러 전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총대를 높이 쳐들었다. 군기수들이 군기를 들고 보무당당히 대오앞으로 나아갔다.

가슴을 흔드는 군악대의 장중한 군악소리는 없었어도 전사들은 선서를 다지던 그날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영접들어총자세를 취하였고 우렁찬 만세소리높이 군기를 따라 새로운 전구를 향한 힘찬 행진을 시작하였다.

군기를 지키는것은 곧 조국과 인민의 운명인 최고사령부를 사수하는 길,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전사로 영생하는 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군의 존엄과 영예를 목숨으로 사수한 우리 련대의 군기를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전시하도록 해주시고 군기와 더불어 용감히 싸운 인민군전투원들의 위훈을 예술영화 《군기》로 길이 전하도록 해주시였으며 전승 40돐을 맞으며 전국로병대회에 참가한 군기소대 전투원들과의 상봉모임까지 마련해주시였다.

대오앞에 휘날리는 우리의 군기.

자랑스러운 영웅적조선인민군의 군기아래 미제를 괴수로 하는 15개 추종국가의 군기가 패배자의 몰골로 딩굴었으며 위대한 전승의 력사, 영웅조선, 영웅인민의 탄생과 더불어 자주와 정의의 국기, 인민의 국기가 창공높이 휘날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군기에 숭고한 경의를 드린다. 온 나라 인민이 영광, 영광을 드린다.

전쟁로병 최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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