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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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징검다리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무슨 일을 하나 하여도 자기 대에는 비록 덕을 보지 못하더라도 먼 후날에 가서 후대들이 그 덕을 볼수 있게 가장 훌륭하게, 완전무결하게 하여야 한다는것이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였으며 늘 하시는 간곡한 당부였습니다.》
어느해 겨울날이였다.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산골길을 지나시다가 문득 차를 세우시였다.
징검다리를 건너 학교로 가는 어린 학생들을 보시였던것이다.
차에서 내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곁으로 부르시였다.
아이들은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면서 달려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느 학교에 다니며 몇학년인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아이들이 올리는 대답을 들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름철에 물이 불어날 때에는 어떻게 건너다니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아이들이 아버지, 어머니와 오빠, 언니들이 업어서 건네준다고 저마끔 자랑삼아 대답올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이들의 어깨우에 쌓인 눈을 손수 털어주시며 그럼 이제는 학교에 가보라고, 눈이 쌓여 돌이 미끄럽겠는데 조심해서 건너다니라고 친부모의 정을 담아 따뜻이 이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 인사를 올린 아이들은 웃고떠들며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갔다.
그러나 그애들을 바라보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안색은 밝지 못하였다.
이윽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고장 형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어린 학생들이 불편없이 학교에 다닐수 있도록 이곳에 다리를 놓아주자고 하시였다.
일군들은 저으기 놀라와하였다.
(이런 외진 산골에 몇몇 아이들을 위해 다리를 새로 건설하다니!)
그 고장으로 말하면 지난날 가난한 사람들이 숯이나 구워팔면서 살아가던 산구석이라고 하여 구석몰이라고 불리워온 구월산기슭의 자그마한 산골마을이였다.
그런 외진 곳이여서 마을사람들은 물론 일군들도 징검다리를 두고 산골마을에서 흔히 볼수 있는것으로 여기여왔고 한켠으로는 내물을 건너간 징검다리가 산골풍경에 이채로운 정서를 돋구어준다고만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징검다리를 단순히 산촌의 정서로 대하지 않으시였다.
하기에 한 일군이 이곳에서 학교로 오가는 아이들은 여라문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씀올리였을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신것이였다.
학생이 여라문명이 아니라 한두명이라도 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 학생들은 나라의 귀중한 보배들인것만큼 그들을 위하여서는 아무것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시면서 이곳에 다리를 넓고 환하게 잘 놓아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깊은 산골마을에 훌륭한 콩크리트다리가 새로 건설되게 되였다.
지금은 이 고장에서 수십년전 그날의 징검다리가 놓였던 자리를 흔적조차 찾아볼수 없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다고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
그날의 물이끼 오른 징검다리는 오늘도 이 고장 사람들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넓고 환한 콩크리트다리를 지나 즐거운 학교길을 오가는 산골마을아이들의 밝은 웃음이 무엇에 받들려 세세년년 꽃펴나는가를 깊이깊이 새겨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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