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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학교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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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770회 작성일 23-03-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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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학교앞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과 같이 어리신 나이에 애국의 큰뜻을 품으시고 투쟁의 길에 나선 혁명의 지도자는 력사에서 찾아볼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 창덕학교앞에 서있다.

우리 수령님께서 어린시절에 나라찾을 큰뜻을 키우시며 공부하신 창덕학교.

흙매질을 한 바람벽이며 나무살창에 창호지를 바른 나들문, 쪼각쪼각의 작은 돌기와를 서로 맞물려 얹은 키낮은 지붕이며 토방돌.

학교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소박하고 수수한 이 창덕학교에서 우리 수령님의 배움의 한시절이 흘러갔다.

일제와 싸워이기고 나라를 찾으려면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뜻을 받아안고 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보라 사납게 울부짖던 주체12(1923)년 3월 29일, 열두살 어리신 나이에 팔도구를 떠나 단신으로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시여 만경대고향집에 들어서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창덕학교 5학년에 편입되시여 두해동안 공부하시였다.

바로 창덕학교에 다니실 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온통 일본말투성이인 《국어독본》 《일어독본으로 락인하시였다.

그리고 왜놈순사의 탄압에도 견결히 맞서 공연을 진행함으로써 민족의 넋을 지켜주시였으며 학교에 못 다니는 가난한 집 아이들을 방학기간 모여놓고 우리 글과 력사, 지리, 산수, 노래까지 배워주시였다.

동무들을 이끄시고 산세험한 룡악산에도 자주 오르시여 몸과 마음을 더욱 억세게 단련하시며 나라찾을 애국의 큰뜻을 키우시였다.

가지가지의 가슴뜨거운 일화들을 무수히 남기신 창덕학교시절의 우리 수령님은 10대의 어리신 소년시절에 벌써 학생들과 교원들은 물론 만경대린근 사람들모두의 크나큰 기대와 선망을 한몸에 받으신 미래의 찬란한 태양이시였다.

옛 창덕학교옆의 오른쪽에 웅장화려하게 치솟아 배움의 글소리 랑랑히 울려퍼지는 현대적인 창덕학교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고있다.

100여개가 넘는 교실이며 실험실과 강당, 기숙사, 그쯘한 후방시설은 물론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여러차례에 걸쳐 보내주신 학생들의 교육교양에 필요한 수백점의 동식물표본과 실험기구, 각종 악기와 음향설비, 콤퓨터를 비롯하여 교육환경, 교육조건이 최상의 수준에서 갖추어진 창덕학교.

너무나도 엄청나게 대조적으로 안겨오는 창덕학교의 두 교사,

아마도 우리 수령님 저 추녀낮은 창덕학교에서 오늘날 현대적으로 꾸려진 창덕학교의 모습, 온 나라 방방곡곡에 훌륭히 일떠선 배움의 전당들의 모습을 그려보셨으리라.

바로 그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안으시고 저 작은 학교에서 조국해방의 큰뜻을 키우시였으리라.

5천년민족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빛나는 미래가 설계된 옛 창덕학교!

참으로 하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력사의 학교이다.

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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