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만여명의 조선인민군입대, 복대 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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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만여명의 조선인민군입대, 복대 탄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당의 령도밑에 군대와 인민이 일심동체가 되여 투쟁할 때 무서울것이 없으며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얼마전 우리 공화국에서 전국적으로 140만여명의 청년들이 조선인민군입대, 복대를 탄원한 소식이 전해졌다.
조선청년들의 폭발적인 참군열의는 과연 무엇을 보여주는것인가.
그것은 평범하고 행복한 나날에도 한마음한뜻으로 당을 받들고 만약 또다시 준엄한 결전의 시각이 온다면 혁명의 군복을 입고 조국의 존엄을 지키며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리라는 조선청년들의 불같은 맹세이고 의지이다.
흘러간 력사의 나날들이 돌이켜진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 청년들이 바로 그렇게 살며 싸웠다.
돌이켜보면 18살 꽃나이에 불뿜는 적의 화구를 한몸으로 막아 부대의 진격로를 열어놓은 리수복영웅도, 최후의 순간까지 턱으로 중기압철을 눌러 적들을 무리로 쓸어눕히고 조국의 고지를 사수한 조군실영웅도, 조국해방전쟁이 시작되여 제일먼저 화점을 막은 첫 육탄영웅인 장태화영웅도 민청원이였다.
어찌 이들뿐이랴. 후방의 청년들도 조국을 위하여 용감히 싸웠다.
조국해방전쟁사의 한페지를 빛나게 장식한 어랑천방어전투에 대하여 1950년 11월 20일부 《로동신문》은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전투는 형용할수 없이 가렬처절하였다. 어랑천을 가운데 낀 평화스럽던 봉강벌판은 전투장으로 화하였다. 원쑤들의 비행기는 쉬임없이 하늘에서 떠돌고 총포탄소리는 산천을 뒤흔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투상황은 어려워졌다. 탄약수송과 식사운반이 제일 문제였다.
전선은 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고있었다.
바로 이때 전선지원을 위하여 많은 청년들이 용약 전투현장에 달려왔다.…》
그들은 경성군 어랑면(당시)의 청년들이였다. 사랑하는 고향을 지키려는 불같은 마음을 안고 340여명의 젊은이들이 인민군용사들을 돕기 위하여 한밤사이에 전투협조돌격대를 조직한것이였다.
그들은 직접 소달구지를 몰아 무기와 탄약을 운반하였다. 총탄이 끊임없이 비발치고 치렬한 전투가 눈앞에서 진행되는 엄혹한 환경속에서 밥을 지었고 그것을 안고 5리 또는 10리길을 탄우속을 헤치며 운반하군 했다.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서 식사를 운반했는가 하는것은 전투원들이 받아안은 밥그릇에 총알이 박히고 어떤 그릇은 총알에 맞아 깨여진 사실만 놓고도 충분히 짐작할수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결코 지나온 력사의 한토막이 아니다.
정세가 일순간에 교전직전까지 치달아올랐던 2015년 8월 당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소식이 전해진 하루동안에 100여만명의 청년들이 인민군대에 입대, 복대할것을 열렬히 탄원한 사실도, 이번에 전국적으로 140만여명의 청년들이 조선인민군 입대, 복대를 탄원한 사실도 우리 청년들의 불타는 조국애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있다.
그렇다.
조국수호의 길에서 우리 청년들은 언제나 군대와 어깨겯고 싸웠다.
그것은 인민들과 청년들, 인민군군인들 누구나 조국과 자기 운명을 하나로 합쳤기때문이며 조국이란 곧 우리모두의 삶의 뿌리가 내리고 영원무궁한 미래가 꽃필 위대한 수령의 품이라는것을 한마음한뜻으로 절감하고 살기때문이다.
그렇듯 귀중한 조국이 어찌 침략자들에게 단 한치인들 찬탈당할수 있으며 그러한 조국을 지켜선 군민의 힘이 어찌 무궁무진하지 않을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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