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주석은 세상에 둘도 없는 위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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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석은 세상에 둘도 없는 위인이시다!》
위인칭송의 찬가는 위인에게 진정으로 매혹될 때만이 터칠수 있는 심장의 언어이다.
주체96(2007)년 4월 풍치수려한 대동강반에 자리잡은 평양대극장에서는 80고령의 한 녀가수의 노래가 울려나왔다.
그가 바로 제25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한 일조음악예술교류회 회장 오가사와라 미쯔꼬였다.
해마다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여 위인칭송의 찬가를 부르고 또 부른 오가사와라 미쯔꼬,
과연 그 무엇이 인생의 로년기에 이른 그를 위인칭송의 무대에 나서게 하였는가.
이에 대해 미쯔꼬는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나의 예술생활은 내가 1940년에 전속가수로 된 때로부터 시작되였다. 그때 나는 20살이였다. 14년간에 걸친 나의 전속가수생활은 성악가수로서 음악에 대한 연구생활인 동시에 나자신에 대한 몸부림이기도 하였다.
음악에 대한 연구를 깊이 할수록 나는 가수로서의 허무감을 느끼게 되였다. 많은 경우 저속한 인간들의 련정이나 력사밖으로 밀려난 거품같은 인간들의 말세기적인 유흥을 위한 노래나 부르는 자신이 혐오스럽기만 하였다.
나는 인간을 참된 길로 불러일으키고 사회의 진보에 이바지하고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더우기 제2차 세계대전시기 조선인민에 대한 일본군의 잔인한 행위를 직접 목격한 나로서는 일본인으로서 조선인민에게 속죄의 감정도 없지 않았다.…》
하여 그는 일본인으로서 1977년부터 일조친선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는 재일조선인들의 민족적권리를 옹호하고 일본당국의 조선인차별정책을 반대하는 정의의 목소리에 자기의 노래를 합치였다.
재일조선인들의 조국인 조선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대하면서 그는 전세계 진보적인류가 태양으로 칭송하는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만나뵙고싶은 충동을 억누를길 없었다.
주체67(1978)년 늦은 가을 미쯔꼬는 오매불망 그리던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시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일본 오사까 부인의 회》대표단 성원으로 조선을 처음으로 방문한 그를 만나주시고 오랜 시간 다정하게 이야기도 나누시고 뜻깊은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다.
별로 한 일도 없는 자기들의 자그마한 성과도 치하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겸허하고 소박한 풍모와 뜨거운 인정미는 미쯔꼬의 마음을 완전히 틀어잡았다.
그날에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속절없이 살아온 그에게 삶의 목적과 가수로서의 사명을 깨닫게 하여주었다. 그는 왜 조선인민이 위대한 수령님을 어버이이시라고 부르며 따르고있는가에 대해 잘 알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그는 세상에 다시 태여난듯 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진정 김일성주석은 세상에 둘도 없는 위인이시다.)
그후 미쯔꼬는 위대한 수령님을 생명의 은인으로 따르고 그이의 위인상을 선전하기로 결심하였다.
1980년 그는 오사까시의 음악계 인사들로 일조음악예술교류회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사업하면서 수령님의 위대성과 자애로운 풍모,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에 대해 일본사람들에게 널리 선전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이 나날 그가 일본에서 벌린 음악회만 하여도 수십차례에 달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평양에서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그는 너무 기뻐 만세라도 부르고싶은 심정이였다. 인생의 참된 길을 가리켜주신 생명의 은인이신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의 진심을 바치려던 간절한 소망이 드디여 풀릴수 있게 된것이였다.
그는 조선노래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를 안고 평양으로 달려왔다. 잠시라도 편히 쉬실것을 바라는 인민들의 간절한 소원이 담긴 이 노래야말로 탄생 70돐을 맞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조선인민만이 아니라 자기도 꼭 아뢰고싶은 말이였고 드리고싶은 인사였다.
해마다 일조음악예술교류회예술단을 이끌고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한 오가사와라 미쯔꼬는 그 나날에 영광의 절정에 오르게 되였다. 련환공연에 여러번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꽃바구니를 드리는 영광도 지니였다.
그는 80고령의 나이에도 심장이 멎을 때까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주석님을 인류의 태양으로 모시고 따르려는 가수로서의 나의 맹세는 변함이 없다. 나는 심장이 뛰는 한 태양의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를것이다.》
그는 20여차례에 걸쳐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여 위인칭송의 무대를 펼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열렬히 흠모하며 위인칭송의 노래를 부르고부른 일본의 녀가수, 이제는 그의 모습을 다시 볼수 없다.
하지만 평양을 마음의 고향이라고 부르며 흠모의 노래를 안고 평양을 찾군 하던 그의 열정적인 모습을 우리 인민은 오늘도 잊지 않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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