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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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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210회 작성일 23-05-0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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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종소리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천만금도 아끼지 않는것이 우리 당이며 당의 품은 온 나라 아이들의 진정한 보금자리입니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숭고한 후대관을 지니시고 일찍부터 조국땅 한끝에 사는 아이들에게도 배움의 넓은 길을 활짝 열어주신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해방후 우리 나라에는 과거 일제가 실시한 민족문화말살정책과 민족우매화정책의 후과로 하여 궁벽한 산골이나 외진 섬에는 말할것도 없고 도시에도 변변한 학교가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새 민주조선건설의 초행길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지만 무엇보다먼저 아이들의 학교부터 일떠세우도록 하시였으며 학교가 멀어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항상 마음에 걸리시여 분교를 내올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학교가 먼 아이들을 두고 얼마나 심려하시였는가는 주체38(1949)년 10월 6일에 발표하신 불후의 고전적로작 《전반적초등의무교육제를 실시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잘할데 대하여》에서 인민학교(당시)를 덮어놓고 많이 내오지 말고 학생들의 통학거리와 인구수를 참작하여 내와야 한다고, 학생들이 통학거리가 너무 먼데는 분교를 내올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주신것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해방된 조국땅에 인민의 새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어느날 평안남도의 두메산골 양덕군 구지골을 지나실 때의 일이다.

그때 몇명의 아이들이 림시교사로 리용하던 향교(고려와 조선봉건왕조때 각 고을에서 량반의 자식들에게 봉건유교사상과 도덕을 가르치던 교육기관)로부터 집까지 너무 멀고 또 나어린 소년들이 혼자 갈수 없어 다른 애들이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있는 모습을 보게 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이들에게 그 먼데서 계속 통학하는가, 비가 오고 눈이 많이 올 때는 어떻게 다니는가, 학교로 오가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가 하나하나 다정히 물으시였다.

기숙사가 없어 계속 통학한다는것과 장마철과 추운 겨울날에는 며칠씩 남의 집에서 먹고 자면서 다닌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배움의 열망에 불타는 새 조선의 어린이들이 40리나 걸어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것을 두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앞으로 면소재지에는 중학교를 하나씩 내오도록 하며 여기 실정과 같은 모든 곳에 하루빨리 분교를 내오자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가 지난날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천신만고를 다 겪으며 일제놈들과 피흘려 싸워 조국의 해방을 이룩한것도 후대들을 위한것이라고 하시면서 후대교육사업을 위해서는 하나도 아까울것이 없다고 거듭 힘주어 강조하시였다.

아무리 바쁘시여도 아이들을 보시고서는 그냥 스쳐지나지 못하시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53(1964)년 1월 어느 추운날에는 황해북도 연탄군의 한 산골마을을 지나시다가 방학이 되여 얼음판에서 썰매를 타며 즐겁게 노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시였다.

너무 기뻐 발을 동동 구르며 서로마다 안겨드는 아이들을 무랍없이 안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느 학교에 다니며 학교는 어디에 있는가를 다정히 물으시였다.

학교길이 멀다는 아이들의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학교가 있는 쪽에서 마을로 가는 길에 있는 높은 고개길을 한참이나 바라보시다가 여기에 시급히 분교를 세워주자고 하시였다.

이때 한 일군이 난감한 기색으로 마을에는 아이들이 불과 열명도 되나마나하다고 말씀올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라의 장래문제를 어떻게 아이들의 머리수에 비교해서 처리하겠는가고 하시며 우리가 이 추운 겨울날 쉬지 못하고 다니는것도 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한것이라고, 단 한두명의 아이들이 이 마을에 산다 하더라도 우리는 꼭 여기에 분교를 세워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한평생 후대들을 아끼고 돌보시는데서 최대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기에 언제인가는 외진 산골마을의 불과 8명밖에 안되는 학생들을 위해 통학렬차를 보내주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정녕 조국땅 그 어디에 살아도 모두 안아 배움의 나래를 한껏 펼치도록 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사랑의 품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자그마한 그늘도 없이 새 조국건설의 믿음직한 후비대로 씩씩하고 명랑하게 자라날수 있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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