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전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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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전호의 노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의 전쟁로병들은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결사수호한 민족의 장한 영웅들이며 진정한 애국자들입니다.》
며칠전 화성지구 2단계 1만세대 살림집건설장에 지원물자를 가지고갔을 때였다.
전설장에서는 기동예술선동대들의 공연이 한창이였다.
그날 공연에서 《전호속의 나의 노래》는 군인건설자들의 합창으로 고조를 이루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어느덧 전승의 그날로부터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허나 이 노래가 오늘도 계승자들의 가슴을 세차게 끓게 하는것은 과연 무엇때문이던가.
이 노래가 창작된 경위가 다시금 되새겨졌다.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는 1211고지에서 창작된 노래이다.
당시 창작가들은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탄속에서 하루에도 수십차례씩 달려드는 적들을 불사조마냥 용감히 쳐물리치는 인민군용사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위훈이 얼마나 값비싼것인가를 깊이 절감하게 되였다.
그들의 충격은 결코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치렬한 싸움이 끝난 뒤에 고지에 넘쳐나는 웃음과 랑만은 창작가들의 마음을 더욱 후덥게 하여주었다.
전사들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신 땅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리던 일이며 사랑하는 처자와 함께 밭갈이하던 기쁨, 부모들의 환송을 받으며 총을 메고 집을 떠나오던 일들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뿐이 아니였다. 소중히 간직한 훈장을 꺼내보는 병사들도 있었고 고향에 보낼 편지를 쓰는 병사들도 있었다.
병사들이 지닌 고향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승리에 대한 확신은 창작가들로 하여금 그들의 모습과 감정을 노래에 담아야 한다는 창작적충동을 불러일으켰다. 하여 창작가들은 화약내배인 창작수첩과 오선지에 시어를 골라썼으며 선률을 창작하였다.
병사들의 마음이 그대로 가사가 되고 선률이 된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는 이렇게 불타는 전호에서 창작되였다.
노래는 고지에서 병사들에 의하여 제일먼저 울리게 되였다.
…
빛난 훈장 가슴팍에 내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부모처자 두팔로써 안기리
사랑하는 부모처자 두팔로써 안기리라
…
조국과 고향을 지켜 공세우고 돌아오라는 당부를 하던 혈육들의 정든 모습을 그려보는 병사들의 가슴속에 끓어번진것은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사랑이였다.
그 불같은 사랑을 피끓는 가슴마다에 소중히 간직했기에 우리 인민군전사들은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적의 화점과 적땅크를 향해 맞받아나갈수 있었고 단 4문의 포로 적의 5만대군과 맞서싸운 월미도방어전투와 4척의 어뢰정으로 미제의 중순양함함선집단을 격파한 주문진해전 등 세계전쟁사가 알지 못하는 기적의 전승신화들이 련이어 창조될수 있은것 아니던가.
수령님의 품, 후손들의 삶의 터전인 이 땅을 누구보다 사랑하였기에 그들은 조국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치는것을 가장 고귀한 생명, 아름다운 희망, 위대한 행복으로 간주하였다.
전승세대의 그 숭고한 넋은 오늘도 새 세대 수호자들의 가슴마다에 그대로 살아 높뛰고있다.
그래서 노래는 군인들의 심금을 그리도 뜨겁게 울려주는것이리라.
나의 가슴속에는 세상에 우리 병사들처럼 세대와 세대를 이어 전호에 대한 사랑과 위훈의 고결한 감정을 안고사는 병사들이 또 있으랴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러느라니 우리 병사들이 지켜선 전호들마다에서 힘차게 울려퍼지는 또 한편의 노래소리도 귀가에 쟁쟁히 울려오는듯싶었다.
우리 병사들 누구나 사랑하며 즐겨부르는 노래 《우리의 전호》가.
…
전쟁의 포화에도 굴할줄 몰랐던
우리의 전호에는 영웅들의 넋이 스몄네
비록 한치의 땅이라 해도
피로 지켜낸 조국이기에
우리 어이 헛눈을 팔며 물러설 자리를 찾으랴
한치인들 내주랴
…
진정 그날은 나로 하여금 조국수호의 전호를 병사들과 함께 지킨다는 숭고한 자각으로 원군길에 티없이 맑고 깨끗한 량심을 바쳐갈 맹세를 더욱 굳게 가다듬게 한 잊지 못할 날이였다.
김 순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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