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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처음으로 되는 력사적인 민족적회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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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359회 작성일 22-04-1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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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4월 19일
 

해방후 처음으로 되는 력사적인 민족적회합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의 앞길에 장애가 조성될 때마다 민족자주정신으로부터 출발한 대범하고 합리적인 제안들을 제시하시여 난국을 타개하시였으며 열렬한 민족애와 고결한 덕망으로 민족의 통일의지를 비상히 높여주고 거족적통일운동의 전성기를 펼쳐주시였습니다.》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영원한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고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민족의 화합과 단결, 조국통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으며 민족의 대단결위업, 조국통일위업에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다함없는 경모의 정이 강산에 차넘치고있는 화창한 4월의 봄계절에 우리 겨레는 조국통일운동사의 첫페지를 빛나게 장식한 남북련석회의를 류다른 감회속에 추억하고있다.

바로 그 회의가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발기와 지도에 의하여 소집되고 성과적으로 진행된 해방후 처음으로 되는 그리고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력사적인 민족적회합이였기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74년전인 주체37(1948)년 4월 평양에서는 사상과 리념이 서로 다른 북과 남의 각당, 각파, 각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분렬의 위기를 타개하고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기 위하여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4월남북련석회의)가 소집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북련석회의를 발기하시게 된것은 당시 조성된 정세가 참으로 엄혹하였기때문이였다. 패망한 일제를 대신하여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의 횡포한 책동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에는 국토와 민족분렬의 위기가 조성되게 되였고 우리 민족은 통일이냐, 분렬이냐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였던것이다.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으로 조성된 엄중한 정치정세와 민족의 요구를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6(1947)년 10월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단회의에서 하신 력사적인 연설 《남북협상방안에 대하여》에서 민족분렬의 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서 남북의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의 련석회의를 소집할데 대한 방안을 내놓으시였다.

이 방침은 북과 남의 애국력량의 단합된 힘으로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민족분렬책동을 단호히 저지파탄시키고 나라의 완전독립을 실현하려는 온 민족의 지향과 념원을 반영한것으로 하여 북과 남 각계층 인민들의 폭풍같은 지지와 찬동을 받았다. 그러나 주의주장이 다르고 과거경력도 각이한 각계층의 인사들, 특히 《반공》을 필생의 리념으로 삼고 살아온 김구를 비롯한 우익민족주의자들은 저들의 떳떳치 못한 과거에 대한 위구심으로 하여 반신반의하면서 련석회의참가를 주저하고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심중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특별초청장도 보내주시였으며 주체37(1948)년 3월에는 바쁘신 시간을 내시여 김구와 김규식의 련락원들을 몸소 만나주시고 과거불문의 원칙에서 《반공》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일은 다 백지화한다고, 이것은 우리가 일제를 반대하여 산에서 싸울 때나 오늘에나 변함이 없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련석회의참가를 지지한다는것을 명백히 하시였다.

설사 그가 지난날 조국과 인민앞에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의 길에 나선다면 과거를 묻지 않고 손잡고나가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 위대한 민족대단결사상, 한없이 크나큰 도량과 포옹력에 이끌려 김구와 김규식은 물론이고 중간, 우익계렬의 많은 대표들도 저저마다 평양으로 달려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그때를 회상하시며 만일 우리가 감정에 사로잡혀 처신을 극단적으로 하면서 민족주의자들을 적대시하는 방향으로 나갔더라면 통일전선은 지상공론으로만 남아있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조국통일운동사에 민족대단결로 통일적인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웅대한 설계도를 펼친 민족적대회합으로 빛을 뿌리고있는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는 이렇게 열리게 되였다.

주체37(1948)년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평양에서는 북과 남의 56개 정당, 사회단체를 대표하여 695명의 대표들이 참가한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가 소집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의에서 하신 보고와 담화들에 어린 민족중시의 립장과 애국애족의 리념, 온 겨레를 한품에 안으시는 한없이 넓은 도량과 정치지도력은 회의참가자모두를 매혹시키였다. 남북련석회의에서는 남조선에서의 《단독정부》조작을 반대하는 동시에 전조선적인 통일적정부를 수립할데 대한 구국방안이 만장의 일치로 합의를 보고 채택되였다.

해방후 리념대립과 당파싸움이 성행하고 애국과 반역이 심각하게 대결하던 그 복잡다단한 정치정세속에서 완고한 민족주의자들을 포함한 남조선의 거의 모든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을 통일애국의 기치아래 묶어세우신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대단결업적은 우리 조국과 민족의 만년재보이며 온 민족의 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위한 튼튼하고도 귀중한 밑천으로 되고있다.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를 몸소 발기하시고 성과적인 진행에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님의 업적은 겨레의 통일운동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지며 높이 칭송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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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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