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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종》이 전하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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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2,064회 작성일 23-08-1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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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종》이 전하는 사연

 

우리 인민에게 보다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시려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한평생에는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사랑과 믿음의 이야기들이 감동깊이 아로새겨져있다.

아래에 전하는 사연도 온천군의 인민들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소중히 간직되여있는 가슴뜨거운 일화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주체82(1993)년 9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온천군의 한 농장포전을 찾으시여 황금빛세계를 펼친 벼바다를 이윽히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벼가 잘되였다고 하시며 무슨 품종인데 작황이 이리도 좋은가고 물으시였다.

한 연구사가 오랜 세월 연구끝에 새로 육종한 종자라는것을 알게 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시며 설레이는 벼바다에 시선을 주신채 정보당 수확고가 얼마인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그에 대한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새 품종을 연구한 연구사를 찾으시였다. 하지만 그때 연구사는 출장중에 있었다.

시종 환하게 웃음지으시며 못내 기뻐하시는 어버이수령님께 일군이 이 품종에 이름을 달지 못하고 번호만 붙여놓고있는 사실을 말씀드리면서 이름을 지어주시였으면 좋겠다고 무랍없는 청을 드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연구사를 만나보려고 했는데 참 아쉽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연구사도 만나지 못하고 가는데 그가 연구한 새 품종의 이름이라도 지어주고 가자고 하시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연구사의 이름을 되뇌이시며 그 동무의 이름을 따서 《정화종》이라고 하는것이 어떤가고 하시였다.

한 연구사의 남모르는 수고를 헤아려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웅심깊은 사랑과 은정에 일군들은 눈굽이 뜨거워올랐다.

그날 숙소로 돌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을 찾으시여 새 품종의 벼를 연구한 연구사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그 동무가 우리 인민에게 흰쌀밥을 배불리 먹이려는 나의 소원을 풀기 위해 애를 많이 쓴 동무인데 현지까지 왔다가 만나보지 못하고 그냥 가면 그가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고, 자신의 마음도 걸린다고 하시며 그를 불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다음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바쁘신 현지지도의 길을 지체하시며 연구사를 만나주시였다.

그가 올리는 인사를 반갑게 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친자식을 만난듯이 더없이 대견해하시며 그를 넓으신 품에 꼭 안아주시였다.

정말 수고했다고 하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실 때 연구사의 두볼로는 뜨거운것이 샘솟듯 흘러내렸다.

자신의 몸가까이에 연구사를 세워주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신 사랑이 적으신듯 떠나시기 전에는 우리 다시한번 사진을 찍자고 정답게 말씀하시며 또다시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인민들의 먹는 문제해결에 이바지하는 연구성과를 이룩한것이 그리도 기쁘고 대견하시여 귀중한 시간을 지체하시며 하해같은 은총을 거듭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

우리 수령님의 숭고한 혁명실록의 한 갈피에 새겨진 이 이야기는 인민을 위해 한평생을 깡그리 바치신 절세위인의 불멸의 자욱과 더불어 세세년년 길이 전해질것이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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