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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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평양에는 예로부터 이름난 명승지가 많습니다.》
수도 평양에 자리잡은 모란봉은 경치도 아름답지만 력사유적이 많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모란봉에서 이채를 띠는것은 성돌들을 정교하게 다듬어 거의 수직으로 재치있게 쌓아올린 약 11m의 깎아지른듯한 축대우에 세워진 합각식루정인 을밀대이다.
올려다보면 건듯 들린 합각지붕은 모란봉의 싱그러운 숲의 향기를 가득 싣고 창공높이 날아가는듯 하고 내려다보면 높다란 축대가 그대로 배전이 되여 《숲의 바다》를 헤가르는것만 같다.
을밀대는 6세기중엽에 고구려가 평양성 내성을 쌓으면서 그 북쪽 장대(군사지휘처)로 세운 건물로서 우리 선조들의 창조적지혜와 재능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축유산이다.
평양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둘러볼수 있는 을밀대는 예로부터 평양8경의 하나인 《을밀대의 봄맞이》(을밀상춘)로도 유명하다.
을밀대란 이름은 《웃미르덕(웃밀이언덕)》에서 유래되였다고 한다.
을밀대를 일명 《사허정》이라고도 부른것은 이 루정이 사방이 탁 트인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있기때문이다. 을밀대에 오르면 사방의 경치가 한눈에 안겨와 누구나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하기에 먼 옛날 모란봉의 경치에 반하여 《을밀》선녀가 하늘에서 자주 내려와 이곳에서 놀았다는 전설도 있다.
을밀대에는 고구려인민들의 애국적위훈을 전해주는 《을밀장수》에 대한 전설도 깃들어있다.
고구려시기 모란봉기슭에는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싸움에서 언제나 커다란 군공을 세워 평양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을밀이라는 장수가 살고있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을밀장수의 머리에도 흰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평양으로 밀려드는 외적들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수가 없기에 을밀장수는 백발을 날리며 성을 지키는 싸움에 분연히 나섰다.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말에 올라 장검을 뽑아들고 적진으로 돌입하여 외적을 삼대베듯 쓸어눕히는 을밀장수의 기개는 싸움에 나선 평양성사람들을 크게 고무해주었다.
그러던중 을밀장수가 그만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게 되였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외적들은 더욱 악착스럽게 기여들었다. 제 한몸보다 나라의 운명을 먼저 생각한 을밀장수였기에 병상에서 일어나 북장대에 올라 군사들을 지휘하였다. 장대에 을밀장수가 다시 나타나자 평양성사람들은 더욱 힘을 얻었고 외적들은 기가 꺾이였다.
치렬한 싸움으로 밤이 가고 날이 밝던 어느날 을밀장수는 적의 악착스러운 공격에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였다. 하지만 장수지휘처에는 여전히 을밀장수가 서있었으며 장수기가 나붓기였다.
외적을 쳐물리치고 고구려군사들과 인민들이 장대로 왔을 때에는 이미 을밀장수가 세상을 하직한지 이틀이 지난 뒤였다. 을밀장수가 눈을 감으면서 침략자들을 쫓아낼 때까지 자기를 지휘처에 그냥 서있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였던것이다.
그때부터 을밀장수가 서있던 지휘처를 《을밀대》로 부르게 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져내려오고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의 야수적폭격에 의하여 심하게 파괴되였던 을밀대는 우리 당의 민족유산보호정책에 의하여 옛 모습그대로 복구되여 소중히 보존되고있다.
오늘 을밀대는 수도 평양의 웅장한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전망대로서 모란봉의 운치를 돋구어주는 우리 인민의 즐거운 문화휴식터로,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더해주는 장소의 하나로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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