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동지애의 숭고한 서사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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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동지애의 숭고한 서사시 (5)
기념사진에 남기신 믿음의 글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혁명동지들을 자신처럼 믿고 사랑하시였으며 동지들에게 주실수 있는 사랑을 다 안겨주시였습니다.》
조선혁명박물관 《혁명전우관》에는 수많은 영화들의 화면을 통해 우리 인민들과 친숙해진 관록있는 명배우였던 유원준동지에 대한 자료도 전시되여있다.
그가 당의 문예전사로 한생을 값있게 빛내일수 있은것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한없는 동지적사랑과 크나큰 믿음이 있었기때문이다.
주체55(1966)년 1월 어느날이였다.
유원준동지는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가게 되였다.
그무렵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영화부문 사업을 추켜세우시기 위하여 창작가, 예술인들을 찾아 자주 영화촬영소에 나오시여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고계시였다.
문밖에까지 나오시여 그를 반갑게 맞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기다리던 참이라고, 어서 들어가자고 하시며 방으로 이끄시였다.
방안의 한쪽에 있는 책상우에는 여러장의 사진들이 놓여있었다.
그것은 영화촬영소에 나오시였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몇몇 창작가, 예술인들을 찍어주신 사진들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며칠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만들어보았다고 하시며 책상우의 사진들가운데서 몸소 고르신 사진을 한쪽에 따로 놓으시였다. 유원준동지의 독사진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 만났던 기념으로 사진이나 나누어가지자고 하시며 책상서랍에서 자신의 사진을 꺼내여 먼저 주시였다.
유원준동지는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하여 그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친히 안겨주시는 그이의 사진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어쩔줄 몰라하였다.
그저 두손에 받쳐든 사진과 그이의 자애로운 모습을 넋없이 바라보기만 할뿐이였다. 어떤 고마움의 인사이든 올려야겠는데 크나큰 감격에 휩싸여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는 그를 자리에 앉혀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의 독사진을 골라드시고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잠시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기념으로 사진에 글을 남기겠다고 하시며 만년필을 꺼내드시는것이였다.
순간 유원준동지는 저도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온 심혼을 모아 그이께서 써나가시는 글발을 우러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진뒤면에 활달한 필체로 불멸의 글발을 쓰시였다.
《영원히 한길에서 1966. 1. 19일을 기념하여 김정일》
유원준동지는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분명 자기의 사진뒤면에다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친히 글발을 새겨주신것이였다.
이날 감격에 겨워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함께 수령님의 뜻대로 영화예술에서부터 혁명을 일으켜보자고, 이것이 자신의 결심이고 뜻이라고 크나큰 기대를 담아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유원준동지는 목이 꺽 메여올랐다. 한가슴에 받아안기에는 너무도 벅차고 뜨거운 믿음이였기때문이였다.
믿음이면 이보다 더 큰 믿음, 사랑이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이 세상 그 어디에 또 있으랴.
그 순간 유원준동지는 온 우주를 받아안은것만 같은 무한한 행복감에 휩싸여있었다.
그는 자기의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다 바쳐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과 결심을 실현해갈 굳은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뜻깊은 사진을 소중히 품에 간직하고 그이께서 계시는 방을 나서는 평범한 영화배우의 눈앞에 거창한 영화혁명의 화폭이 펼쳐지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기념사진에 남기신 믿음의 글발, 그것은 유원준동지가 끝없는 열정을 안고 우리의 영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불같이 헌신하도록 떠밀어준 삶의 자양분이였고 원동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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