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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령님과 발벗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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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668회 작성일 22-10-1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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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령님과 발벗은 소년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혁명가적풍모에 있어서나 인간적풍모에 있어서나 그 누구도 견줄수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다.》

조국과 인민을 위한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우리 인민에게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랑의 력사에는 발벗은 소년에 대한 이야기도 새겨져있다.

주체44(1955)년 9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평안북도 창성군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학생들을 만나시였다.

학생들이 올리는 인사를 받으시고 그들의 학습과 생활정형에 대하여 하나하나 료해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문득 학생들속에 신발을 못신은 한 소년을 보시고 그의 손목을 끌어당기시였다.

소년은 수령님께서 먼지묻은 자기의 발을 내려다보시며 안색을 흐리시자 부끄러워 뒤로 주춤 물러서려고 하였다.

그런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머리를 수그리고있는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집에 누가 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이 있다는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아버지에 대하여 다시금 물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거듭되는 물으심에 소년은 겨우 입속말로 아버지는 전쟁때 전사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숙이고있는 소년을 품에 안으시고 잠시 아무 말씀없이 앞산을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거 보오, 이애에게 신발하나 신기지 못했는데 그래도 이애는 나를 보고 인사를 하오라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잠시후 소년의 얼굴에 난 눈물자욱을 자신의 손수건으로 닦아주시고 그의 이름이며 집위치, 가정형편에 대하여 세세히 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학생들과 헤여지시면서 좀 있다가 너희들의 집에 들려보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소년은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알리려고 집으로 쏜살같이 달음박질을 쳤다. 그가 집에 거의 이르렀을 때 문득 뒤에서 경적소리가 울리며 어버이수령님께서 타신 차가 곁에 와서 멎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차문을 여시고 어서 차에 오르라고 손을 내미시자 소년은 먼지투성이인 자기의 발을 내려다보며 머뭇거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제 신발을 사신으면 아무렇지 않다고 하시며 그를 차에 태우시였다. 그러시고 그의 발을 내려다보시며 돌길에 발이 아프지, 발이 상하면 큰일이야, 학교에도 못가고라고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에 소년은 눈물이 불쑥 솟아나 고개를 돌리고말았다.

어느덧 승용차가 소년의 집에 이르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할머니,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신 후 아이들은 상점에 보내고 우리는 그동안 집안에 들어가 이야기나 하자고 하시며 수행일군에게 삼형제를 데리고가서 신발을 사신기고 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수수한 집안에 들어서시여 집주인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할머니에게 아들은 어느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가정생활형편은 어떠한가에 대하여 물으시며 오랜 시간에 걸쳐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한 일군이 어버이수령님께 시간이 너무 지체되였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아무리 시간이 바빠도 아이들이 신발을 사신고 오는것을 보고 가자고 하시며 마당가로 나오시여 그들을 기다리시였다.

퍼그나 시간이 지나 새 신발을 신고 동생들과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그때까지도 마당에 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와락 달려가 안기였다. 옆에 서있던 소년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였다.

몸소 허리를 굽히시고 손수 소년의 신발 앞뒤축을 꼭꼭 눌러보시며 신발이 발에 맞는가를 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제는 됐다고 만족해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떠나가신지 며칠 지나서였다.

한 일군이 자동차에 돼지 한마리와 사료를 싣고와서 부리우며 돼지를 잘 키워 새끼들을 내여 가정살림에 쓰라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말씀을 전달해주었다.

그후 창성군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시면서 그들의 가정에 자주 들리시여 집안의 살림살이를 함께 의논해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제날의 발벗은 소년을 만경대혁명학원에서 공부하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은정으로 그가 만경대혁명학원에서 공부하고있던 주체47(1958)년 12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원아들속에서 그가 보이지 않자 직일근무를 서고있던 그를 데려오도록 하시였다.

기쁨속에 달려와 인사를 드리는 그를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동안 몰라보게 컸다고 만족해하시면서 함께 동행한 일군들에게 이애 아버지는 월비산전투가 가렬할 때 거기서 특무장을 했소, 헐치 않은 일이요, 어려운 전투환경에서 전사들을 위해 모든것을 다 보장해주고, 그러다가 정전을 한달 앞두고 전사했소라고 하시며 우리가 이애들의 부모를 대신하여 그들을 잘 키워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나라일이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현지지도의 길에서 알게 되신 한 전사자가정의 유자녀를 잊지 않으시고 그에게 친어버이정을 기울이신 어버이수령님.

조국을 위하여 싸우다 희생된 이름없는 한 평범한 전사가 남기고간 가정을 육친의 정으로 보살펴주신 이 사랑의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 인민들속에서 길이 전해지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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