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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들이 뭐라고 하겠는가고 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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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461회 작성일 22-10-1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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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들이 뭐라고 하겠는가고 하시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에게 있어서 인민대중은 언제나 스승이였고 자신은 인민의 충직한 아들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투쟁에 나서신 첫날부터 인민을 혁명의 주체로, 이 세상 모든것의 주인으로 보시였으며 자신의 위대한 스승으로 간주하시는 고결한 풍모를 보여주시였다.

어느해 여름 창성군 약수리 료양소가까이에 한채의 건물이 일떠서고있었다.

산촌의 아름다운 전경에 어울리게 설계를 잘한 건물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 건물이 일떠서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을 겪고난 우리 인민의 생활이 말할수 없이 어려웠던 그 시기 창성군과 삭주군인민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두시였다.

그러시면서 창성군, 삭주군의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그것을 전국의 모든 산간군들에 일반화하실 구상을 안으시고 해마다 이곳을 찾으시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현지의 일군들은 물론 중앙이나 도의 일군들을 부르시여 자주 회의를 여시였다.

그런데 당시 그이를 모실만 한 변변한 회의실이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숙소 앞마당에 전등불을 켜달고 한여름날 회의를 지도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창성군이나 삭주군에서 쓰고있는 건물을 리용하기도 하시였다. 그래서 일군들이 회의실문제를 말씀드리면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돈을 한푼이라도 아껴 인민생활에 돌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승낙하지 않으시였다.

그렇게 50년대를 보내고 60년대도 지나갔다.

더는 그렇게 할수 없다고 생각한 일군들은 주체59(1970)년 가을부터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한창 공사가 벌어지고있는 건물을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짐작이 가시는듯 한 일군에게 무슨 건물인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엄한 음성으로 무엇때문에 이런 산골에 회의실을 저렇게 크고 요란하게 짓는가고 하시며 큰 회의라야 1년에 한두번 하나마나한데 저렇게 크고 요란하게 지으면 되겠는가고 말씀하시였다.

일군이 회의실이 꼭 있어야 되겠다고 다시금 말씀드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는가고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하나의 건물을 놓고도 인민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풍모에 일군은 머리가 숙어졌다.

그날 저녁 일군을 또다시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왕 짓고있는 집이니 빨리 완성하자고, 그러나 회의실로는 하지 말고 료양소에서 사용하도록 넘겨주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회의실을 크고 요란하게 지어놓으면 인민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항상 인민의 통제를 받을줄 알아야 한다고, 인민이 우리의 엄격한 스승이고 참다운 통제자이라고 하시면서 이것을 명심하는 사람은 사업에서 실수가 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과오를 범하게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정녕 어버이수령님은 우리 인민은 물론 온 인류가 위대한 수령으로, 자애로운 스승으로 받들어모시고 따르지만 자신을 언제나 다른 사람과 조금도 다름없는 평민처럼 생각하시며 오히려 인민을 엄격한 스승으로 간주하신 절세의 위인이시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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