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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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3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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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혁은 지배인방문을 두드리려다가 잠시 망설이였다. 귀전에는 김명수가 《내 제발 사정하는데…》 하고 부탁하는 식으로 하던 그 말이 다시 울리는것만 같았다. 그 말은 어제 들었던 당시보다 간절하게, 어쩐지 애원조의 소리로 울리고있었다. 승혁은 명수가 지금껏 그런 식으로 말했던적이 없었다고 생각하였다.
명수는 진정으로 안타까와 잔사처리공정을 자기들에게 맡겨달라는 부탁을 한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명수와 엇서나가지 않으면 안되는것인가.
승혁은 다시한번 명수의 심리를 분석해보았다.
명수는 지금 속도의 현훈증에 사로잡혀있다. 그렇다, 그는 무작정 앞으로 내달리려고만 한다. 그것은 도로를 건설하면서 이미 그어놓은 로선대로 나가는것이 가장 빠르고 합리적인것이라고 무턱대고 믿으면서 전후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대는것과 비슷하다. 그런 사람은 이미 있던 낡은 도로보다 더 빠르고 훌륭하게 도로를 새로 건설할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서둘러대는 걸음을 멈춰세우는 모든것을 시끄럽고 성가신 골치거리로 치부해버리기가 일쑤이다. 그래 그런 사람의 체면을 보아 더 좋은 도로를 낼수 있는 안을 집어던져야 하겠는가, 스스로 눈을 감고 소경흉내를 내야 하겠는가. 아니다, 그럴수 없다.
승혁은 마음을 다잡고 지배인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명수가 언제인가 자기에게 충고를 주면서 한 말, 열번 재고 한번 가위질하라는 경구를 떠올렸다.
(동무가 그 말 하나만은 잘했소. 그런데 그 말을 남에게 하기보다는 자기자신에게도 많이 들려주는것이 좋겠소.)
승혁이가 지배인방에 들어가니 정준학지배인은 박춘섭이와 한창 무슨 사업토론을 벌리고있던중이였다. 두사람이 다 승혁을 반기였다.
《서해안에 가서 수고많았겠소. 내 다 얘길 들었소. 그동안 앓지는 않았소?》
지배인은 이렇게 인사말을 했고 춘섭은 환한 웃음속에 모든것을 다 알고있다는듯 한 표정을 짓고 머리를 끄덕했다.
《무슨 일로 왔소?》 하고 정준학지배인이 물었다.
승혁이가 잔사처리공정을 합성직장건물안으로 옮기는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자 지배인의 이마에는 대뜸 주름살이 잡히였다.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겠소? 합성직장장은 원래대로 하자고 주장하고있는데… 잔사처리공정건물은 이미 보수공사에 들어간게 아니요?》
승혁이가 열이 올라 잔사처리공정에 대해 력설을 하는데 뜻밖에도 박춘섭이 끼여들었다.
《승혁동무, 내 좀 알아보았는데 잔사처리공정은 이미 있던 그대로 되살리는게 좋을것 같더구만. 물론 승혁동무가 더 잘해보자는 의도는 높이 사야 하겠지만 그게 긁어 부스럼을 만들수 있단 말이요.》
승혁은 아연해져서 춘섭을 보았다.
《처장동무가 잔사처리공정에 대해 뭘 아는게 있습니까?》 하는 말이 튀여나가려는것을 꾹 참았다.
옆에서 지지해주지는 못할망정 이번에도 부당한 론거로 자기를 훈시하려든다고 생각하니 속이 메슥메슥해지는것만 같았다.
(이게 우정이라는건가?)
승혁은 뒤틀리는 밸을 누르고 혼자말처럼 나직이 말하였다.
《그러니 내가 어리석은 생각을 한다는건데… 다들 그렇게 본다는거지요?》
그 말은 승혁이자신도 민망할 정도로 구슬프게 울리였다.
정준학지배인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박춘섭이 앞질렀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승혁동무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지만 말이요.》
춘섭은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는데 승혁이가 괴롭게 여기는 그 말이 튀여나왔다.
《나도 승혁동무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시오.》
그러니 승혁의 기분은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격으로 되여버리고말았다.
《됐습니다. 날 특별하게 생각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춘섭을 외면한 승혁은 마치 시시껄렁한 론의에 허비하는 시간이 아깝다는듯 머리를 수그리고 무슨 문건을 들여다보고있는 지배인을 불렀다.
《지배인동지.》
정준학지배인은 다시 승혁에게 피로가 짙게 실린 낯을 돌리였다.
《난 지배인동지가 다시한번 심사숙고해주기를 바랍니다.》
이때 행정일군들이 줄레줄레 들어왔다. 지배인이 회의를 소집한것이였다.
《그게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되면 문건으로 제출해주시오. 지금은 내 바빠서 그러니 후에 다시 만납시다.》 하고 준학이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승혁은 어깨가 처져서 지배인방에서 나왔다.
그래도 지배인은 자기를 지지해주리라고 단정하고 찾아왔건만 그 역시 명수와 견해를 같이하고있는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이쪽에서도 뺨을 맞고 저쪽에 가서도 뺨을 맞는 꼴이 되여버리고말았다.
(아, 얼마나 가련한가.)
물론 승혁은 지금 지배인이 몹시 긴장하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비날론계통생산공정의 개건공사를 추진하면서 생산도 파동없이 내밀고 농약생산공정과 현대적인 분산물감생산공정도 새로 일떠세우고있었다. 그러니 자기의 제기에 정신을 돌릴 여유가 부족할수도 있을것이고 혹은 주승혁이라는 존재를 성가시게 여길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지배인의 뜨아한 태도보다 더욱더 거슬리는것은 박춘섭의 존재였다. 춘섭이와 지난날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춘섭은 그에 대해 심심히 반성하는 거동을 보였고 또 매사에 넘쳐나는 우정을 과시하여왔었다. 그런데 그 우정이란것이 어쩐지 자기의 마음을 불쾌하게 자극하고 정신과 육체의 활동을 구속하는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많았다. 이번에도 그렇지 않는가. 춘섭은 그 과잉우정으로 자기의 팔과 다리를 옴짝 못하게 포옹해버리는것이 아닌가.
승혁은 춘섭이가 실상 좋은 사람이라고 아무리 자기자신에게 납득시키려고 해도 괘씸한 감정만이 굴뚝처럼 일어섰다.
장군님께서 바라시는대로 개건방향을 세워야 하겠는데 책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박춘섭이, 넌 마치 날 위하는척 하면서 날 구속하려드니 어쩌자는건가.
《도대체 너의 속심이 뭐냐?》
승혁은 부아가 치밀어 춘섭에게 이렇게 따져묻고싶었다.
별안간 지난날 춘섭이가 합성직장의 설비들을 뜯으러 왔던 일이 떠올랐다.
(넌 아직까지도 개변되지 못했구나. 그래가지고서야 우리가 어떻게 우정을 계속 유지해나갈수 있단 말인가. 너와 나는 기필코 갈라지고말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승혁은 인차 격분으로 쫓겨갔던 리성을 불러들여 자신의 과격한 판단을 타매하였다.
(뭐 박춘섭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일수가 있겠는가. 그럴수가 없다. 아직 기술문제에서 무엇인가 납득하지 못하는게 있을수도 있지 않겠는가.)
대체로 락관주의자라고 할수 있는 승혁은 안깐힘을 다하여 상상의 붓에 너그러움의 색감을 발라 춘섭이와의 우정의 하늘을 아름답게 채색해보았으나 기분은 여전히 바닥을 핥고있었다.
승혁은 침울하여 터벌터벌 걸어가다가 누군가 찾는 바람에 머리를 쳐들었다. 약한 몸에 사색의 빛이 어려 어쩐지 고민하는듯 한 얼굴의 청년이 서있었다. 그는 최성복이였다.
최성복은 지난해 7월에 비날론공장에 입직하였다. 그는 자동화과 콤퓨터실에서 다시 일하게 되였다. 문종국을 비롯한 기술자들은 어제날의 동무를 뜨겁게 맞아주었다. 성복은 지금 초산비닐생산공정 콤퓨터화조에 망라되여있었다.
《어디 아픈게 아닙니까?》 성복이가 걱정어린 어조로 물어왔다.
《아니다.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이냐?》
《합성직장에 갑니다. 초산비닐생산공정에 맞는 프로그람을 작성하기 위해 준비작업을 하고있습니다.》
《그래 어떻게 하자는거니?》
알데히드생산공정을 살릴 때 콤퓨터에 대해 열성적으로 배웠기때문인지 이제는 콤퓨터기술자들과도 어지간히 말이 통하게 된 승혁이였다.
《어떻게 할게 있습니까? 알데히드생산공정과 초산생산공정 콤퓨터화에 리용된 프로그람을 그대로 쓰면서 달라진 현장조건에 맞게 약간 변경시키는겁니다.》
《넌 젊었는데 남들이 한대로 답습해서는 안돼. 혁신해야 한다. 알데히드나 초산생산공정에 도입된 콤퓨터화수준을 훨씬 릉가하는 프로그람을 새로 만들수는 없단 말이냐? 완성된 프로그람이 없다고 하지 않느냐.》
성복이가 머리를 기웃거리자 승혁은 말하였다.
《생각해봐라. 난 비록 콤퓨터에 대해서는 잘 모르긴 하지만 비날론을 위대한 장군님의 명령대로 다시 뽑아내야 하는 우리의 요구가 얼마나 높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똑똑히 알고있다. 이전 방식에 구속되면 안되는거야. 장군님께선 늘 최첨단을 돌파하라고 가르쳐주시지. 아니, 그저 첨단이 아니고 최첨단을 돌파해야 한다고 하시거던.》
승혁은 성복이에게 말하였지만 그것은 그가 지배인이나 김명수를 비롯한 모든 종업원들에게 그리고 변함없는 우정을 간직하고 자기를 구속하려드는 박춘섭에게 웨치고싶은 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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