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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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6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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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혁은 움쩍 몸을 일으켰다. 운전공들이 기대가 어린 눈으로 이 합성생산공정의 《귀신》아바이를 쳐다보았다. 량볼이 처녀애들의 볼처럼 발그레한 애젊은 운전공 한명이 엉거주춤 따라일어섰다. 그는 매사에 주승혁을 본받으려고 애쓰는 청년으로서 꼭 승혁의 기술수준에 도달하겠다는 야심에 넘쳐있었다.
《아바이, 우린 뭘 해야 합니까?》
승혁은 방문쪽으로 걸어가다가 돌아서서 늘 자기를 졸졸 따르는 청년에게 느슨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냥 앉아들 있으라구. 콤퓨터화면감시를 잘해야 돼.》
승혁은 수십개의 설비, 장치물들의 자동변들을 하나하나 점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산소공급용자동발브가 동작하지 않는것을 보고 후둑 가슴이 뛰였다.
(여기가 잘못된게 아닐가?)
그는 대기하고있던 수리공을 소리쳐불렀다.
《이 자동발브를 해체하시오.》
두명의 수리공들이 달라붙어 부랴부랴 자동발브를 해체하였다. 그다음 승혁이도 수리공들도 깜짝 놀랐다. 자동조절변이 쇠쪼각들로 꽉 막혀져있었다. 그러니 산소가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였던것이다.
이윽고 사람들이 와 몰려들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누가 이걸 발견했나?》
《누군 누구겠나, 〈귀신〉아바이지.》
《누가 이런짓을 했을가?》
《〈귀신〉아바이에게 물어보라구. 혹시 아바이가 그것도 밝혀낼는지 알겠나.》
사람들은 놀라서 수군거리면서 승혁에게 경탄과 호기심의 눈길을 보내였다.
뒤늦게 달려온 김명수가 갑자기 큰소리로 웨치였다.
《여 〈꼬마〉, 당장 가서 보안원을 불러오오. 이건 분명 반동놈의 작간이요.》
승혁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직장장동무, 진정하오. 나쁜 놈은 무슨 나쁜 놈이 있겠소?》
《아니, 그럼 이게 저절로 이안에 들어갔겠습니까?》
명수가 쇠쪼각 한개를 쥐고 흔들며 주위의 사람들을 휘둘러보았다.
《꼬마》라는 수리공이 금시 보안원을 찾아 달려갈 태세인데 승혁이가 제지시키였다.
《난 우리 사람들을 믿소. 이건 아마 배관속에 있던 오물들이 산소의 힘에 밀려 여기까지 왔을거요.》
개건공사를 하면서 일부 산소배관들을 새로 제작하고 설치하였었다. 용접공들이 작업하던 과정에 얼마간의 오물들이 배관안에 떨어지게 되였을것이라고 승혁은 판단하였던것이다.
하지만 명수는 여전히 승이 돋아 기염을 토하였다.
《아바인 그렇게 생각하겠으면 하오. 하지만 난 언제든지 혁명적경각성을 높여야 한다는걸 주장하겠소. 미국놈들, 남조선괴뢰들과 같은 원쑤놈들은 우리의 비날론공업이 다시 일떠서는걸 결코 바라지 않는단 말이요.》
명수는 승혁의 계급적자각이 투철한가를 가늠하듯 다시한번 승혁에게 눈길을 주었다가 다시금 소리쳤다.
《〈꼬마〉, 들었니, 먹었니? 보안원을 불러오라지 않아.》
명수는 기어코 반동놈이나 해독분자를 붙잡아낼 심산인지 고집스럽게 보안원의 출두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의 심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 특히 자기 직장 성원들이 지켜보는데서 승혁의 말에 곱게 수긍하고싶지 않다는, 자기를 훈시하려드는 승혁에게 반발하고싶은 자존심의 충동이 더 강한것이였다. 명수의 손에선 여전히 애기손만 한 쇠쪼각이 불빛을 받아 번뜩이고있었다.
《꼬마》가 종주먹을 부르쥐고 달려가는데 승혁은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직장장동문 마치 내가 계급투쟁을 거부하는것처럼 말하는군. 나도 우리가 사회주의기치를 높이 들고나가는 한 계급투쟁의 무기를 순간도 놓지 말아야 한다는것쯤은 알고있소.》 하고 승혁은 명수에게 쏘아주고싶었으나 될수록 명수의 감정을 거슬려놓고싶지 않아 꾹 참았다. 그의 머리속에는 다시금 순환액관교체문제를 놓고 명수와 충돌했던 그 일이 떠올랐고 불안이 잠자리마냥 살그머니 의식의 흔들리는 가지에 내려앉았다.
이윽고 정복을 입고 근엄한 표정을 지은 보안원이 숨이 차서 달려왔다. 그러나 반동놈이 어디 숨었는지 발견해낼수가 없었다.
마침내 초산이 생산되여 저장조에 차올랐다. 검사결과 기술지표에 도달되였다. 운전조작실에서 시운전그루빠성원들이 기쁨에 겨워 싱글벙글하는데 별스레 환하게 웃으며 승혁에게 악수를 청하는 사람이 있었다.
《주아바이, 수고많았수다.》
승혁은 그 사람의 손을 꽉 잡으며 역시 환하게 웃었다.
《수고야 직장장동무가 했지.》
승혁의 손을 잡은 사람은 바로 명수였다. 그는 아무런 거칠것이 없다는듯 그처럼 소탈하고 자연스런 태도를 취하고있었다. 승혁은 알데히드와 초산생산공정이 제대로 돌면서 생산물을 내는 그 시각에 스스럼없이 다가와 친근하게 손을 내미는 명수가 반가와 가슴이 뻐근해지는것이였다. 하여 승혁은 태연하게 롱말을 던졌다.
《아무때나 주인의 고심이 큰게 아니요, 나와 같은 손님이야 이젠 물러나야지. 가는 나그네 뒤꼭지가 예쁘다는 속담이 있지 않소, 하하…》
《하, 이 아바이 슬그머니 날 공격하려드는구만.》 명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승혁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철썩 때렸다.
성공의 희열이라는것은 어쩌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알콜과 같은 성분이 다분한것이여서 그것을 들이키는 사람은 대체로 너그러워지고 대범해지는 모양이라고 승혁은 생각하였다. 하기야 자기나 명수는 알데히드와 초산생산공정이라는 숨이 졌던 나무를 되살리는 과정에 좀 다툼을 했다고 할지라도 피차간에 서로의 성의를 다 바쳤고 지금은 싱싱하게 살아난 그 나무에서 함께 열매를 따들이는 동업자의 관계에 있다고 볼수 있지 않겠는가. 운전조작실에 들어와있던 일군들은 그들대로 들떠있었다. 신명욱은 담배갑을 꺼내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담배를 권하였고 정준학은 오늘 구내식당에서 뭘 좀 내겠다고 선포하였다. 한명산은 느긋하게 웃으며 콤퓨터화면을 자꾸 번져보았으며 강영식은 문종국에게 고무의 말을 하고있었다. 준학이 제때에 자기를 다잡고 정색한 어조로 크게 말하였다.
《다음목표가 기다리고있소. 이젠 가소제생산공정을 돌려야지요. 오후 3시부터 가소제직장에서 협의회를 하겠으니 기사장동무가 관계되는 일군들을 다 참가하도록 조직사업을 하시오.》
운전조작실에 차고넘치던 흥분의 물결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아직은 또 하나의 공정을 돌려 성공시켜야 할 책임감이 일군들의 가슴을 묵직이 내리눌렀다.
정준학, 한명산, 강영식을 비롯한 일군들은 서둘러 운전조작실을 나섰다.
승혁은 그냥 편안한 자세로 콤퓨터를 마주한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는 꿈속에 잠긴 사람처럼 조용히 앉아 운전조작실밖에서 들려오는 합성탑과 설비들의 동음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마치도 유쾌하게 웃으며 뛰노는 자식들을 눈앞에 그려보듯 그의 퍼그나 살이 빠져 광대뼈가 두드러진 얼굴에는 미소가 어리였다.
《승혁동무는 빨리 병원에 가봐야겠소. 안해가 얼마나 기다리겠소. 그동안 선철 엄마 치료사업에서도 성과가 컸다고 하오.》
이렇게 말하는 명욱책임비서의 목소리에 승혁은 펀뜻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승혁은 자신이 안해에 대해 잊고있었다는것을 깨닫고 가책을 느끼였다.
(여보, 그러니 당신도 이겨냈구려. 나도 끝내 해냈소. 기뻐해주오. 난 자신의 열정과 힘을 다해서 위대한 장군님의 지시를 관철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게 되였소. 참으로 오래간만에 우린 인민군대와 인민들에게 식초를 정상적으로 공급할수 있게 되였소.)
이날 승혁은 기꺼운 심정으로 퇴근길에 올랐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병원으로 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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