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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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7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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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밤 주승혁은 자동화과에서 콤퓨터강의를 받고 나오다가 강영식의 방에 들리였다. 강영식은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않고 현장에서 침식을 하고있었다. 승혁이가 영식과 이런저런 말을 나누는데 강혜경이 무엇인가 보자기에 싸들고 들어왔다. 혜경은 건강하고 싱싱해보이는 웃음을 함뿍 뿌리였다. 승혁은 오래간만에 딸이라도 만난듯이 반가움을 느끼였다.
《혜경이가 왔구나. 아버지가 보고싶어 왔니?》
승혁의 말에 혜경은 그저 웃어보이더니 책상우에 밥곽들을 꺼내놓았다.
《어머니가 보내는거예요.》
혜경은 노르스름한 액체가 담긴 수지물병을 가리키면서 계속하였다.
《이건 어머니가 직접 제조한 보약이예요. 식전에 한모금씩 꼭꼭 잡숴야 한대요.》
《그래?》
강영식의 잔주름이 많이 잡혔으나 이목구비가 또렷한 얼굴은 어쩔수없이 피여오르는 정깊은 웃음으로 환해졌다.
《부러운걸. 혜경이 엄마와 같은 녀자와 함께 사니 강동무가 젊어질수밖에 없지.》 하고 승혁은 롱을 하였다.
승혁은 영식이 총각시절에 어떻게 한 처녀를 사랑하였는가를 잘 알고있었다. 당시 영식은 갓 공장대학을 졸업한 평범한 자동화공으로서 함흥시병원 간호원을 하는 미모의 처녀를 마음에 두고있었다. 그 처녀는 의학대학에서 공부하였는데 학습과제를 수행하느라면 주로 수학과 외국어중의 여러 문제를 풀지 못해 애를 먹는 적이 많았다. 처녀가 안타까와하는것을 보고 한 남동무가 자기의 친구를 찾아가면 쉽게 문제를 풀수 있을것이라고 하면서 강영식을 소개해주었다. 하여 영식과 처녀는 서로 사귀게 되였다. 처녀의 학습방조를 하는 과정에 영식의 가슴속에는 사랑이 싹텄고 처녀는 재능있고 다정다감한 청년에게 반하였다. 미구하여 그들사이에는 사랑이 우등불처럼 세차게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처녀의 부모들이 영식의 몸이 약하다고 결혼을 반대해나섰다. 부모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자 처녀는 집을 뛰쳐나갔다. 외동딸을 애지중지하던 처녀의 부모들은 딸의 결심을 흔들수 없다는것을 깨달았고 결국은 결혼을 승낙할수밖에 없었다. 그후 의학대학과정안을 다 마치고 의사가 된 영식의 안해는 남편의 몸보신에 각별히 신경을 썼으며 지금도 마음을 놓을수가 없어 손수 보약을 제조하면서 남편의 건강을 지켜가고있었다.
《혜경아, 너의 엄마가 제일이다.》 승혁은 혜경에게 엄지손가락을 쳐들어보이였다.
《아니, 선철이 엄마가 어떻다고… 난 선철이 엄마가 더 괜찮다고 보는데… 선철이 엄마도 이거요. 이악하거던.》 영식도 엄지손가락을 쳐들어보이며 웃었다.
《아니요, 우리 처는 드살이야. 하하.》 하고 말하면서 승혁은 속으로 (영희만 한 녀자도 쉽지 않지.) 하고 자부하고있었다.
《자, 우리 함께 들기요.》
영식이 음식그릇들에 손을 가져가는데 승혁이가 제지시키였다.
《참, 강동문 아직 혜경이가 나한테 빵을 가지고 찾아왔던걸 모르지? 내가 녀편네에게서 쫓겨나 집에도 못 들어갈 때 나한테 고급빵을 한구럭이나 들고왔단 말이요.》
《아이참, 그 얘긴 왜 꺼내십니까?》
혜경이가 곱게 눈을 흘기는데 영식은 태연하게 웃고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나? 우리 혜경이가 이 아버지보다도 주동무를 더 끔찍이 위한단 소리겠는데…》
영식이 딸에게 눈을 끔쩍이였다. 그는 이미 딸에게서 들어 사연을 알고있었던것이다.
《그때 난 감동됐소. 고맙기도 했고…》
《나야 그저… 난 선철선생이 시켜서…》 혜경의 얼굴이 카바이드로의 돌물빛을 받은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난 그만 가보겠습니다.》
혜경은 서둘러 돌아섰다.
《너 이제 어디 가는 길이냐?》 영식이 물었다.
《가소제직장에 나가요.》 똑바로 서서 대답하는 혜경은 어느새 당황함을 수습하고 침착함을 되찾았다.
처녀는 머리칼들을 목뒤에서 끈으로 잡아묶었는데 몇오리의 앞머리칼이 도두룩한 흰이마에 살풋이 드리웠다. 까만색작업복을 입었는데 화려한 외출복보다도 미끈한 자태에 더 어울려보이였다. 처녀의 얼굴과 온몸에 넘치는것은 아름다움보다도 활력과 자신심인것처럼 승혁에게는 생각되였다. 승혁은 갑자기 아들이 떠올라 혼자소리처럼 말하였다.
《우리 선철이도 가소제직장에서 야간지원활동에 참가한다고 했는데…》
《그럼 거기서 둘이 만나보겠지.》 영식은 알만 한 일이라는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아이참, 난 몰라요.》 혜경은 이 말을 남기고 방에서 뛰여나갔다.
승혁은 새삼스럽게 입을 열었다.
《혜경이가 정말 괜찮소.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후 우리 공장에 탄원했다는걸 봐도 보통처녀가 아니지.》
《뭐 젊었을적의 충동이겠지.》
영식은 딸을 대견해하는 빛이 얼굴에 력연하였으나 그냥 보통어조로 말을 했다.
《어떤 측면에선 보통애가 아니요. 중학교시절에 청년동맹초급단체비서를 했는데 한학급 남자애들도 그 애에게 꼼짝을 못했소. 처녀애가 사내애들을 한손에 쥐고 흔들었다니까.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소. 학급의 처녀애 한명이 어떤 남학생에게서 험한 말을 듣고 울었다질 않소. 그날 우리 혜경인 울었다는 애를 데리고 남학생이 집으로 가는 골목을 지켰다는거요. 그 남학생인즉 축구소조에 다니는데 체격도 크고 주먹도 세다는 녀석이였지. 그런데 혜경이가 갑자기 달려들어 손에 들고있던 비자루로 막 그녀석을 후려갈겼단 말이요. 그녀석은 너무 놀라 비실비실 피해 달아나는데 그냥 따라가면서 해보았다 그거요. 〈너 우리 옥실이를 울렸지? 어디 맞아봐라.〉 하고 말이요. 끝내는 그녀석에게서 사죄를 받고 때리기를 멈추었다나. …》
승혁은 처녀애에게 얻어맞으며 머리를 싸쥐는 체통 큰 사내애를 그려보면서 배를 그러안고 웃어댔다.
《하, 그거 정말 재미있군. 혜경이가 역시 정의감이 강한 애야. 괜찮아.》
《아니야. 우리 혜경이에겐 결함이 많소. 그 애에겐 어쩐지 남보다 자기를 돋보이려고 드는 경향이 있지.》
《그거야 자기의 능력이 그만큼 뛰여나다는걸 말해주는게 아니겠소.》
《아니요. 그 정도를 지나치는거니까. 이제 어떤 남편감을 만나겠는지 보통녀자들처럼 남편이라고 해서 호락호락 굽어들지는 않을거요.》
《자기가 옳은것을 주장하는거야 좋은게 아닐가?》
《아니, 당신은 그저 혜경이 편이로구만. 이상한걸.》 영식은 느물느물 웃고있었다. 《앞으로 두고보오. 그 애가 진짜로 괜찮은지 어떤지는 더 두고봐야 해. 됐소. 여담은 그만두고 우리 식사나 합시다.》
영식이 밥곽뚜껑을 열었다.
그들이 마주앉아 식사를 하고났을 때 박춘섭이 방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지 기분들이 좋았구만.》 춘섭은 잘생긴 얼굴에 호인다운 웃음을 지었다.
《처장동지가 한발 늦었군요. 우린 방금전에 강영식과장동무의 집에서 가져온 별식을 함께 들고난 참인데요.》 승혁이가 인사삼아 말하였다.
춘섭은 개건공사가 진행되는 현장들을 돌아보다가 방에 불이 켜져있어 들렸다고 하였다.
《처장동지, 이 승혁동무 말입니다.》 하고 영식이 말하였다. 《나이 60이 다 되여가지고 콤퓨터를 배우겠다고 접어들었는데 좀 우습지 않습니까.》
《그게 사실이요?》 춘섭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매일 자동화과에 와서 강의를 받고 콤퓨터를 다루지요. 그래서 우리 자동화과 걸음이 잦습니다.》
《그러고보면 승혁동문 아직도 젊었구만. 추세에 뒤떨어지지 않겠다는건데…》
《뭐 추세에 뒤떨어지지 않겠다는것보다 비날론생산공정의 현대화를 해야 하니 접어들어본거지요.》 승혁은 면구스러움을 느끼면서 더 말을 말라는듯 손을 흔들었다. 《그저 욕망뿐이지요. 이젠 머리가 굳어져서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안되겠습니다.》
《어쨌든 탄복하게 되오. 현대과학기술의 발전은 그것을 맡아 수행할 사람들이 그만한 능력을 갖출것을 요구하고있소. 그런데 비날론공장은 그게 좀 허약하거던. 10여년이나 주저앉아있은탓이라고 해야겠지.
그래도 여기 자동화과장동무랑 품을 들여 기술집단을 꾸리고 첨단프로그람을 개발해놓은것은 참으로 기적이라고 할수 있소. 헌데 그걸 도입하자니 운영자들이 걸렸단 말이요. 콤퓨터를 모른다고 무서워들 하고있지.》
승혁은 명수에게서 춘섭이가 콤퓨터화를 시기상조라고 말했다는 소리를 들은 생각이 나서 은근히 감정이 끓어올랐다.
《처장동지는 합성생산공정의 콤퓨터화를 반대하는겁니까?》
《내가 왜 반대하겠소. 단지 성급하게 추진하려들지 말고 점차적인 방법으로 해볼수도 있다고 합성직장장동무에게 한마디 했던적이 있소.》
《점차적으로 시도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영식이 얼굴이 심각해져서 말하였다. 《무조건 내밀어야 합니다.》
《되면야 좋지. 다시말하지만 난 콤퓨터화에 반대를 해본적은 없소. 난 쌍수를 들어 콤퓨터화를 지지하는 사람이요. 그래서 자동화과의 젊은 콤퓨터운영원들을 대견하게 생각하고있는게고… 글쎄 얼마나 기특한가 말이요. 그들이 프로그람을 개발하지 못했더라면 우린 현대화를 위해 어차피 외국에 적지 않은 자금을 주고 프로그람을 사와야 할번 했거던.》 춘섭은 로숙한 간부답게 여유작작한 태도를 취하였다. 《합성직장장동무가 승혁동무와 같이 진취적이였으면 얼마나 좋겠소.》
《그 동무도 물러설 길이 없지요. 그도 이젠 콤퓨터화의 필요성을 인식했거던요.》 영식이 말하였다.
《그건 대단히 좋은 일이요. 역시 2.8비날론로동계급을 간단히 볼게 아니요.》
춘섭은 호탕하게 웃어댔다. 조건과 정황에 맞게 말을 둘러치는 그의 재치는 놀랄만 한것이였다. 아마도 그는 그 어떤 경우에도 당황하지 않을것이며 주도권을 놓치지 않을것이다. 승혁은 왜서인지 춘섭의 인생자체가 둘러맞추는 식으로 흘러온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드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람은 좋다. 그것은 틀림없다.) 승혁은 이렇게 자신의 속단을 돌려세웠다.
《이제는 우리 나라 경제가 전반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소.》 하고 춘섭은 중앙의 위치에서 내려다보면서 우리 나라의 경제실태를 장엄하게 펼쳐보이기 시작하였다.
춘섭은 사람들의 감정을 쥐고 끌어당길줄 아는 웅변술을 소유하고있었다. 승혁과 영식의 눈앞에는 금시 세계에 도전하는 우리 나라의 힘찬 경제발전면모가 화려하게 펼쳐졌다. 승혁은 머리를 끄덕이며 춘섭의 말에 귀를 기울이였다. 외국의 여러 경제중심지에도 다녀왔고 국내 곳곳의 공장, 기업소들을 돌아본 춘섭의 견문은 탄복할만큼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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