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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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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3,896회 작성일 23-06-0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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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 회)

제 2 장

4

(2)


비날론은 소년 승혁의 의식과 생활속에 점점 더 깊이 침투해들어왔다.

분단위원장이였던 승혁은 소학교에서 학업이 끝나면 동무들을 휘동해가지고 비날론공장건설장으로 달려갔다.

잡초들이 무성하던 룡흥벌에 수령님께서 리승기박사를 비롯한 일군들을 데리고 찾아오시여 공장의 터전을 잡아주시였다. 주체섬유 비날론의 생산공정들이 일떠서고있는 건설장에 붙어있는 대형구호 《모든것을 비날론공장건설에로!》가 소년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후날 그들은 그것이 수령님께서 기술이 있는 사람은 기술로, 재간이 있는 사람은 재간을 바쳐 대규모비날론공장건설을 힘있게 다그쳐야 한다고 하시면서 제시하신 구호임을 잘 알게 되였다.

한번은 건설장에서 돌을 나르다가 최영빈이 수령님께서 입으신 옷이 오래되여 낡았다는 소리를 하여 주승혁의 분을 돋구게 한 일이 있었다. 최영빈의 아버지는 이곳의 화학공장 지배인 승용차운전사였다. 영빈은 아버지에게서 들은 소리를 곧잘하여 동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군 하였다. 수령님께서 비날론공장건설장을 찾으시여 화학공업의 발전에 대한 토의를 하군 하시였는데 그 장소에 화학공장 지배인도 참가하였다. 그때 영빈의 아버지가 수령님을 가까이에서 뵈왔다는것이였다.

여느때는 영빈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머리를 끄덕이군 하던 승혁이가 이번에는 영빈에게 퉁을 주었다.

《거짓말 하지 말라. 원수님께서 어떻게 낡은 옷을 입으신단 말이야. 원수님은 보통사람과는 다르시단 말이야.》

승혁의 반박을 받은 영빈은 얼굴이 시뻘겋게 되여 대들었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 우리 아버지가 보았대.》

《아니야, 그럴수가 없어.》

그들은 서로 다투다가 영빈의 아버지를 직접 찾아가 말을 듣기로 했다.

소년들은 건설장에서 곧장 화학공장으로 갔다. 마침 승용차를 정비하는 영빈의 아버지를 만날수 있었다.

영빈의 아버지는 소년들을 대견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용쿠나. 어른들의 일손을 돕는단 말이지.》

이윽고 영빈에게서 급히 찾아오게 된 사연을 들은 그는 크게 웃었다.

《그러니 우리 영빈이가 거짓말쟁이가 되였구나. 내가 영빈에게 허튼소리를 했다는거지?》

소년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는 그의 웃음을 띤 얼굴에 점차 숭엄한 빛이 어린다. 그는 말하였다.

《얘들아, 그건 죄다 사실이다. 원수님께서 입으신 옷이 정말 색이 날았더구나. 어쩐지 내 마음이 좋질 않아서 원수님의 수행성원을 만나 어쩌면 그럴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단다. 그러자 그분이 하는 말이 자기들이 원수님께 좋은 옷을 한벌 해드리자고 청을 드렸다는구나. 그런데 원수님께서 반대하시였다는구나. 그이께서는 이제 비날론공장이 일떠서서 옷감을 꽝꽝 생산하여 인민들에게 많이 차례지게 될 때 자신께서도 그 비날론천으로 옷을 해입으시겠다고 말씀하시였다는구나. 그러시면서 그때까지 새옷을 짓지 말라고, 정 색이 날아보이면 천을 뒤집어서 다시 만들면 된다고 하시였다는구나.》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빈의 아버지의 두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비날론에 깃든 수령님의 사랑이 승혁의 가슴속에 뜨겁게 흘러들었다. 어언간 승혁의 가슴속에는 비날론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귀중하고 가장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새겨지게 되였다.

그후 승혁은 자기가 지켜선 합성직장에 찾아오신 수령님을 몇번이고 가까이에서 뵈왔다. 어느해인가는 수령님께서 어느 한 아프리카나라의 대통령과 함께 찾아오시였다가 자신께서 받으신 꽃다발을 한 뽐프운전공처녀가 수고한다면서 안겨주시던 모습도 목격하였다. 비날론생산에 기여하는 처녀로동자가 얼마나 미덥고 기특하시였으면 꽃다발까지 안겨주시는것이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우리 수령님, 인민을 위해 바치신 그이의 한생의 로고가 어려있는 비날론이였다.

비날론이 쏟아지면서 사람들의 물질생활에서도 전변이 일어났다.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광목으로 만든 옷을 입고다녔지만 이 시기에는 비날론천으로 만든 옷들이 류행되였다. 옷감이나 천만이 풍부해진것이 아니였다. 비날론중간제품들이 쏟아져 인민들의 생활에 기여하게 되였다. 라크, 화학풀, 풀가루, 장판니스, 알콜, 식초 등이 인민들의 생활속에 흘러들었다. 승혁이네를 비롯한 많은 집들에서 멍석이나 돗자리를 걷어버리고 방바닥에 장판을 했다. 사람들은 편리하고 위생적인 장판방에 익숙되게 되였다. 우리 인민들은 비날론을 떠난 자기들의 생활을 생각할수 없게 되였다.

비날론, 그것은 수령님의 비날론이였고 인민의 비날론이였다.

(안된다, 안돼.)

승혁은 속으로 그 누구에겐가 항변을 부르짖으며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한사람이 마주오다가 승혁을 건드렸다.

《여보, 합성직장장,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요?》

승혁이가 정신을 차리고 쳐다보니 자동화과 과장 강영식이였다. 성격이 락천적이여서 언제봐야 밝은 인상이던 강영식의 얼굴이 왜서인지 심각하였다.

《과장동무, 우에서 비날론을 완전히 죽이려드는데 대체 이런 일이 있을수 있소?》 승혁은 마음이 통하는 영식에게 밸풀이하듯이 들이대였다.

《나도 합성, 중합, 섬유, 방사직장들의 설비들을 뜯어간다는 소문을 들었소. 너무 기가 막혀 과연 정확한 소리인가 알고싶어 지배인을 찾아가는 길이요. 그러니 그게 정말이라는 소리요?》

《내 이자 지배인에게서 듣고 나오는 길이요. 합성직장을 뜯어가니 준비하라는거지. 내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승혁은 걸음길에 쭈그리고앉으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영식도 옆에 앉았다.

담배 한대 주오.》 영식이 손을 내밀었다.

승혁은 의아하여 영식을 보다가 담배 한대를 뽑아주었다. 영식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였다. 승혁은 담배불을 붙여무는 영식을 보면서 얼마나 속이 상하면 저러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식이와 승혁은 같은 흥덕구역에서 소년시절을 보냈지만 다닌 학교가 달랐다. 하지만 온 나라를 놀래우는 비날론속도를 창조하며 비날론공장이 일떠서는것을 눈앞에서 보면서 남들보다 비날론의 귀중함을 뼈에 새긴 그 생활처지만은 비슷하였다.

강영식이 못 잊어하는것은 비날론공장준공을 축하하는 경축연회에 소년축하단으로 참가한것이였다. 강영식은 중학교시절 음악에 소질이 있어 음악소조에 다니였는데 당시 그가 다니던 풍덕중학교는 민족기악을 잘하는것으로 전국에 소문이 났었다. 그는 음악소조책임자를 하였다. 비날론공장이 조업하고 섬유직장 하조장에서 수령님을 모시고 경축연회가 진행되였는데 강영식은 수령님을 우러르며 기악병창공연을 하였고 공연이 끝나자 어른들과 함께 연회에도 참가하였던것이다. 그것은 영식이 간직한 크나큰 영광이였고 자랑이였다.

《…글쎄 수령님께선 건설자들과 축배잔을 찧으시더라니까.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만족하시여 이렇게 말씀하시더군. 〈민족의 자랑인 우리의 비날론을 위해 축배를 듭시다.〉

우리 수령님께서 얼마나 비날론이 귀중하시였으면 비날론을 위해 축배를 드시였겠소. 인민들의 옷감문제를 푸시려고 얼마나 마음을 쓰시였으면 비날론에 그렇게 모든 심혈을 기울이시였겠소.

난 축하단동무들과 함께 사이다를 들었소. 술도 있고 맥주도 있었는데 마실줄 알아야지.》 이렇게 영식은 사람들에게 경축연회에 참가했던 추억을 자주 이야기하군 하였었다.

《비날론은 하나의 력사라고 할수 있지.》 하고 영식은 혼자소리처럼 말하였다.

그는 피울줄 모르는 담배를 뻐금뻐금 빨았다.

《이걸 없애버린다? 기가 막히군.》

승혁은 영식의 말을 듣고 담배꽁초를 튕겨버리며 거칠게 말하였다.

《안되오, 합성직장만은 안되오. 내가 지켜내겠소.》


×


설비해체그루빠가 2.8비날론련합기업소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명세에 지적된 직장들을 돌며 장치물들을 뜯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합성직장에만은 들어갈수 없었다. 주승혁이가 직장건물에 그들을 들여놓지 않았던것이다.

《이건 국가에 대한 반항이야. 당신 모가지가 몇개야?》 그들중의 누군가가 승혁에게 삿대질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맘대로 하시오. 날 붙잡아가겠으면 가고…》 승혁은 태연하게 응수하였다.

몸싸움을 벌릴수는 없는것이여서 그들은 일단 물러가 실태를 상급에 보고하였다.

결국 주승혁은 자기의 방에 찾아온 설비해체그루빠책임자인 성 부국장과 마주서게 되였다. 중키에 몸이 다부지고 둥실한 얼굴에 머리칼을 반듯하게 길러 넘기고 두눈섭이 짙고 침착하고 온화한 생김새를 가진 그 사람은 애써 노여움을 누르고 미소를 지어보이였다.

《안됐소. 이렇게 만나게 되기를 바란것은 아니였는데…》

승혁이도 섭섭함이 가득 어린 어조로 말하였다.

《나 역시 그렇소.》

참으로 생활은 단순치 않았고 운명의 조화는 예측할수가 없는것이였다. 승혁은 중학동창생이고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였던 박춘섭이 자기가 그처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 비날론에 칼을 대는 사람으로 나타날줄은 미처 몰랐다. 이전날엔 공장에 지도차로 내려와 비날론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생산을 장성시키도록 로동자들과 일군들을 고무하던 사람이 아니였던가. 그런데 나라의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비날론생산공정이 멎은지 10여년이 가까와오자 서슴없이 없애버리려고 나선것이다. 승혁은 박춘섭의 처지에서 생각해보았다. 이 사람은 그럴수 있다. 이 사람은 비날론공장에 자기의 심장, 귀중한 모든것을 바친 사람이 아닌것이다, 그저 곁에서 지켜본 사람에 불과한것이라고 승혁은 생각하였다.

《일이 바빠서 아직 영희는 만나보지 못했소. 다 잘있겠지?》 춘섭은 앞상과 마주앉으며 물었다.

《잘있지. 여기 왔으면 집에 찾아올노릇이지. 영희가 알면 섭섭해할거요.》

승혁의 안해 백영희는 춘섭이와 친형제와 다름이 없었다. 박춘섭이 전쟁시기 부모들을 다 잃고 고아가 되였는데 장진군에 사는 백영희의 부모들이 그를 키웠다. 박춘섭이 중학교에 다닐 때 고모가 나타나서 그를 자기 가정이 자리잡고사는 흥덕구역으로 데려왔고 그때부터 승혁과 한학급에서 생활했다. 영희가 장진군에서 군돌격대에 망라되여 비날론공장확장공사에 참가하게 된것도, 비날론공장확장공사가 끝나자 공장에 떨어지게 된것도 춘섭의 영향에 의한것이였다.

주승혁과 박춘섭이와의 관계는 백영희가 승혁의 안해가 된것으로 하여 더욱더 운명적으로 얽혀지게 되였다. 그러나 지금 승혁이나 춘섭에게는 영희나 가정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춘섭에게는 공무가 급한것이였고 승혁은 귀중한 설비들을 지켜야 한다는것으로 신경이 선들선들한 칼날처럼 날카롭게 살아올랐다.

《승혁동무, 이젠 우리 서로 말해볼가?》 마침내 춘섭이가 심중한 표정을 짓고 문제의 화제를 끄집어냈다.

《말해보십시오.》 승혁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춘섭에게 경어를 썼다.

춘섭의 얼굴도 엄숙해졌다. 그도 친구의 립장에 서서는 제기된 문제를 풀수가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 직장장동문 어떻게 하겠다는거요?》

《어떻게 할게 있나요. 나야 합성직장설비, 장치물들을 내줄수 없다는거지요.》

《정말 답답하구만. 합성직장장동문 지금 셈판을 모르고 무모하게 행동하고있소.》

춘섭은 해체그루빠성원들에게서 제기된 반영을 이야기하고나서 안타까운 어조로 계속하였다.

《직장장동무 고집을 모르는바가 아니지만 이건 너무하단 말이요. 이게 간단한 문제인줄 아오? 검찰소에선 벌써 동물 걷어넣겠다고 한단 말이요.》

《날 위협하는셈입니까? 난 끄덕하지 않는 사람이요. 고난의 행군시기에 내 굶주리면서도 여기 설비들만은 지켜냈습니다.》

승혁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갈려나왔다. 그의 눈앞에는 얼핏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형은 비날론공장이 조업하게 되면서 청수화학공장에 가있던 실습생들과 함께 공장에 돌아왔었다. 비날론공장의 생산공정들을 처음 돌린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였다. 형은 합성직장에 배치받았다. 형은 합성직장에서 작업반장까지 하다가 고난의 행군시기를 전후하여 설비관리원으로 일하였다. 형은 풀죽으로 끼니를 에우면서도 매일 직장에 출근하여 설비들을 지키였다. 그때는 불수강관을 얼마간 팔아먹어도 적지 않은 수입을 얻을수 있어 쌀과 같은 물건을 흔들며 설비를 지키는 사람들을 유혹하는자들도 있었고 훔치려드는자도 없지 않았다.

형은 어느날 승혁에게 설비들을 인계하고 좀 눈을 붙여야겠다면서 작업반실에 들어갔다가 순직하였다. 허약해진 몸에서 오래동안 앓던 심장이 끝내 견디여내지 못하고 고동을 멈추었던것이다. 《설비들은 다 무사해. 정확히 인계했다.》, 이것이 형이 남긴 마지막말로 되였다.

형이 오늘의 이 실태를 안다면 땅속에서 통곡할것이다.

승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나서 계속 말하였다.

《이제와서 눈뜨고 다 뜯어가게 할수는 없단 말입니다. 박춘섭부국장동무, 성의 높은 자리에 올라앉으니 이젠 의리도 다 줴버렸소? 당신도 알겠지만 이 비날론공장은 어버이수령님의 한생의 로고가 어려있는 공장이요. 이 합성직장에만도 수십여차례나 되는 수령님의 현지지도발자취가 어려있소. 그래, 이걸 다 없애버리자는겁니까.》

흥분한 승혁은 저도 모르게 경어와 반말을 마구 섞어쓰면서 울분을 토로하였다.

《날 정치적으로 걸려 드는군. 하지만 이건 불가피한 조치요. 설비들을 쓸데없이 사장시키기보다는 필요한데 옮겨쓰자는거요. 나라경제를 하루빨리 추켜세워야 할게 아니요. 2.8비날론련합기업소는 비날론을 그만두고 기초화학제품만 생산하는 기업소로 될거요.》

《나도 나라경제의 어려운 형편을 다 리해합니다. 어쩌겠습니까, 간부들도 어떻게든 경제를 활성화시켜보자니 이런 조치도 취했겠지요. 헌데 왜 하필 우리 비날론공장, 또 합성직장 설비들을 뜯겠다는거요? 난 도무지 모르겠소. 그래서 말이요, 그래서…》 승혁은 숨을 한번 몰아쉬고나서 계속하였다.

《간부들의 난처한 처지를 리해한다고 해도 난 허용하지 못하겠단 말이요. 내가 직장장을 하는 한 합성직장만은 뜯어가지 못하오. 우리도 어떻게 하나 공장을 돌려보자고 애쓰고있소. 우린 꼭 공장을 살려내겠소. 우리 로동계급의 마음은 뜨겁게 불타고있습니다. 날 설복할 생각은 말고 해체그루빠를 데리고 여길 떠나오. 난 죽을 각오가 되여있습니다.》

《이거 영 통하지 않는구만. 끝내 해보자고드니 나로서도 어쩔수가 없구만. 직장장동무, 후회하거나 날 원망하진 않겠지?》

《그런 걱정마오.》 승혁은 머리를 숙이고 책상만 내려다보고있었다.

《좋소.》

춘섭은 결이 나서 참을수 없는듯 의자를 요란스럽게 뒤로 제끼며 일어섰다.

《두고보오. 문제가 어떻게 서는가. 영희가 동무 처만 아니였더라도 이미 결단을 내렸을거요.》

승혁이도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영희가 어떻다는거요? 영희가 무슨 상관이 있소. 내가 법적으로 판결을 받아도 당신에겐 그 어떤 책임도 돌아갈게 없소. 사실 혈연으로 이어진 남매관계도 아니니까.》

《깨우쳐주어서 고맙구만.》

춘섭은 문을 차고 나가버렸다. 승혁은 무너지듯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었다. 온몸의 맥이 발끝으로 다 새여나가버린듯 허탈감을 느끼였다.

(될대로 되라지. 어떻게 되는가 보자. 내가 도달할 막바지가 어디까지인지 가보자. 어쨌든 순순히 설비들을 다 뜯어가게 할수는 없다.)

승혁은 채 피우지 않은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끄고 일어섰다. 다시금 온몸에 긴장이 오면서 신경이 날카롭게 살아오른다. 승혁은 이미 고난의 행군시기에 중요한 설비들을 뜯어넣은 창고들을 돌아보고나서 수리반장을 불렀다.

《중요한 과업을 주겠소. 당장 설비창고들의 문짝을 누구도 열수 없게 용접을 하시오.》

리반장은 이미 벌어지는 일들을 알고있는지라 더 묻지 않고 몇명의 용접공들을 데리고 용접기를 끌어냈다. 이윽고 철로 된 창고문들에서 용접불꽃이 일었다.

다음날 승혁은 기사장의 지시로 화학공업발전과 관련한 중요한 협의회에 참가하기 위해 과학원 함흥분원에 가게 되였다. 어쩐지 불안한 심정으로 협의회에 참가하고 부랴부랴 합성직장에 돌아와보니 스텐관들과 일부 합성탑들이 해체되여 뜯기워갔다. 박춘섭은 승혁이가 없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기의 책임을 얼마간이나마 수행했던것이다.

주승혁은 눈물이 나왔다.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던 합성탑들이였던가.

승혁은 비통한 마음을 안고 직장을 돌아보았다. 그래도 아직 보존되여있는 설비들이 많았다. 창고들에 감춘 설비들은 하나도 다치지 못하였다.

그만해도 다행이였다.

승혁의 노력으로 합성직장에는 많은 설비들이 남아있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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