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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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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2,642회 작성일 23-10-16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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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제 1 장

갑오년 정월대보름

4

(2)


이노우에가 습관처럼 낯의 상처자리를 쓸어만지며 입을 열었다.

《에, 우선 조선에 우리의 손발노릇을 할수 있는 친일정부를 시급히 세워야 하네.》

팔짱을 낀 이또는 《음.》하며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으나 무쯔는 대뜸 손을 내저었다.

청국세력이 조선을 지배하고있는 한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조선을 독점하려면 조선에서 청국세력을 결정적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그 길은 전쟁밖에 없습니다. 군부도 지금 청국과의 전쟁구실을 만들려고 애쓰고있습니다. 일청전쟁은 청국뿐만아니라 만주와 조선을 노리는 로씨야의 남하정책을 저지시키고 우리 일본이 동양의 맹주가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치르지 않으면 안될 거사입니다.》

이또가 만족스러운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무쯔 자네더러 〈면도칼대신〉 이라고 하는 말이 우연한 소리가 아니군그래, 허허…》

이노우에도 무쯔의 말을 긍정했다.

《외상의 말이 옳소. 그러자면 지금 우리 정부를 무능하다고 탄핵하고있는 야당이나 국회를 누르고 또 국민여론을 동일시하는것과 함께 유미렬강의 간섭이나 압력을 피해야 하오.》

《그것도 그래, 우리가 동양의 맹주가 되는것을 렬국이 달가와하지 않을테니까.》

단도직입적인 무쯔는 총리의 이 말도 부정해나섰다.

《아무튼 그건 후의 일이고 당장은 어떻게 일청전쟁을 일으키느냐가 문제입니다.》

로회한 이또가 턱을 쓸어만지며 생각에 잠겨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은 이렇네. 조선의 내란이 커져 조선정부자체로써 그것을 수습할수 없게 되면 불피코 임오년의 군인폭동때처럼 청국에 원병을 의뢰하게 될게고 그러면 청국이 출병할거란 말이요. 이때 우리도 〈천진조약〉 등대고 조선에 파병하잔 말이요.》

천진조약》이란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난 이듬해인 1885년 4월 청국의 천진에서 리홍장과 이또 히로부미사이에 체결된 조약으로서 조선에서 내란이 일어나면 일청량군이 동시에 출병하며 내란이 평정된 후에는 량국군이 동시에 철병한다는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적인 조약이였다.

이노우에가 제꺽 찬성했다.

《아주 그럴듯한 묘안이요. 외상, 조선의 내란이 어떻게 될것 같소?》

《두고보아야 알겠습니다.》

《어쨌든 조선의 내란이 커져야 하오.》

한손으로 팔굽을 다독이던 이또가 또 턱을 쳐들었다.

《가만, 도야마 미쯔루의 〈현양사〉가 있지? 언젠가 듣자니까 국수주의단체인 그 〈현양사〉가 일청전쟁을 주장하고 자기들이 일청전쟁의 도화선이 되겠다고 날뛴다던데?》

이노우에가 또다시 이또의 제안에 호응해나섰다.

《옳소. 그 도야마의 〈현양사〉 내세읍시다. 이럴 땐 정부관영의 단체보다 그런 사설단체들이 한몫 해제낄수 있소. 돈만 좀 쥐여주면 죽을둥살둥 모르고 날뛸테니까.》

무쯔는 일본정계의 원로로 자처하며 코대가 높은 이노우에가 이또의 말이라면 덮어놓고 쌍수를 드는것이 가소로와 알릴듯말듯한 비양기어린 웃음을 띠웠다.

《그럼 〈현양사〉 내세워 조선의 내란이 커지도록 부채질하게 합시다.》

이렇게 말하고 무쯔에게 낯을 돌린 이또는 서울공사관을 통해서 조선정부를 장악하기 위한 일에 힘을 넣도록 하라고 지시하고나서 물었다.

《현재 조선의 실권자는 누구요?》

《명성황후이지요.》

무쯔가 시푸녕스럽게 내뱉았다.

《아직도 그 녀자인가?》 이또도 쓰거운 웃음을 흘렸다.《어쩐지 우리 동양은 녀인천하같구만. 청국은 서태후, 조선은 명성황후…》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이제 청국이나 조선이 그 녀인들의 덕을 톡톡히 보게 될거요.》하는 이노우에의 말에 무쯔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조선에서 그 지위나 지모, 수완에 있어서 명성황후를 당할자가 없습니다.》

《인물 또한 절색이라지?》

이또가 흥미있게 물었다.

서양사람들 흉내를 내기 좋아하는 이노우에가 어깨를 으쓱했다.

동남경녀라구 미인이 많다고 하는 우리 경도(도꾜)일대에도 명성황후같은 미녀는 없다고 합데.》

《그렇게 경국지색인가. 한번 보고싶은걸.》

《참게. 이제 조선이 몽땅 우리것이 되면 명성황후도 총리, 자네의것이 될수 있지. 허허…》

이또와 이노우에의 롱담을 듣고있던 무쯔가 자못 신중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명성황후를 녀인이라고 숙보다간 큰코 다칩니다. 더구나 명성황후는 배일적입니다.》

무쯔의 말에 이또는 정색해졌다.

배일적이라?… 그럼 친일적으로 돌려세워야지.》

《쉽사리 돌아설 녀인이 아닙니다.》

그에 대한 무슨 대책이 있는가고 묻는 이또의 물음에 무쯔는 조선대리공사인 스기무라서기관에게 명성황후를 감시하고 장악할 임무도 주었고 또 조선에 가있는 랑인들의 두목인 오까모도가 명성황후의 측근들속에 첩자를 박아넣고있다고 말했다.

《외상, 그런데 조선엔 왜 우리 공사가 없소?》

이또가 무쯔에게 낯을 찌프렸다.

《청국주재공사인 오또리 게이스께가 조선공사를 겸임하고있는데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아무튼 명성황후가 우리 벗이 되면 좋지만 적이 되면…》

이또는 치째질사한 눈에 사무러운 빛을 띠우며 한손을 칼처럼 휙 내리그었다.

《…제껴버려야지.》

이또는 뒤짐을 지고 방복판에 버티고 서더니 정색하여 뇌까렸다.

《서양보다 후진국인 우리 일본이 선진국대렬에 하루빨리 들어서려면 반드시 조선을 정복해야 하오. 조선을 수탈하여 우리 자본의 시초를 축성해야 한단 말이요. 그러니 조선은 우리 일본의 생명선이라고 할수 있소.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앓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민란과 관련하여 오늘 즉시로 대책을 취하도록 한 무쯔외상을 높이 평가하는바요.》

이또의 열기와 광기에 넘친 말을 이노우에와 무쯔는 군인들처럼 차렷자세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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