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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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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2,261회 작성일 23-10-1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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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제 1 장

갑오년 정월대보름

1

(3)


국왕 리형은 12살에 왕위에 오른 후 30년동안 계속된 이 지루한 놀음에 저으기 지친듯한 기색으로 앉아있었다. 그는 운두가 삐죽한 검은 익선관을 쓰고 가슴과 량어깨 그리고 등에 다섯마리의 룡을 수놓은 붉은 곤룡포를 입고있었다.

비서장격인 도승지가 임금에게 아뢰였다.

《상감마마, 오늘 새벽 전라감사 김문현이로부터 장계가 올라왔소이다.》

얼굴이 둥실한 고종이 심드렁하게 뇌였다.

《읽어라.》

예이.》

도승지가 두루마리장계를 펴들고 읽어내려갔다.

《돈수백배.

전라감사 신 김문현이 삼가 이 글월을 올리옵니다. 금 음력 정월열흘날 새벽 전봉준이를 수괴로 하는 고부백성 천여명이 저마다 참대창을 들고 고부읍에 밀려들어가…》

《가만.》

문득 발뒤에서 명성황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열흘날 새벽에 일어난 일을 왜 이제야 품하는거요?》

《저, 파발이 련 사흘을 달려왔으나 전라도 전주읍이 워낙 멀다 보니…》

《멀긴 뭐가 멀어요? 전보국은 뭘하고있어요? 그 즉시로 알 일을…》

《저, 고장이 생긴 모양이옵니다.》

도승지가 송구스럽게 변명했다.

《우리도 개화하자고 말들은 잘하면서 노는 꼴들이란…》

명성황후의 야멸찬 소리에 문무백관들은 송구스러워 어쩔바를 몰라했다.

《어서 읽으세요.》

명성황후의 분부에 도승지가 장계를 계속해 읽었다.

《삼문을 깨뜨리고 관청을 타고앉은 후에 토지문서와 노비문서 등 공문서를 불살라버렸으며 무기고를 짓부시고 무기를 탈취하는 등 행패를 무수히 한 끝에…》

장계를 읽던 도승지가 흘끔 명성황후와 고종의 기색을 훔쳐보았다.

고종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장계를 읽는 도승지를 내려다보고있었으며 령의정 심순택이며 우의정 조병세들은 모두 기겁한 기색으로 서로 흘끔흘끔 쳐다볼뿐이였다.

도승지가 계속 장계를 읽었다.

《민란이 일어난지 며칠후에는 란민의 수가 무려 1만여명으로 되였삽고 더우기 고부의 이웃고을들인 태인과 금구, 정읍, 부안, 무장 등지의 백성들도 들고일어날 기세를 보여 그 형세가 장히 불온하온데…》 문득 신경질 부리는 고종의 목소리가 장계를 읽던 도승지의 입을 다물게 했다.

성정이 유약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고종은 신경질 곧잘 부렸다.

《듣기에 지루하고 답답하다. 이번 민란의 까닭이 어데 있다더냐?》

도승지가 다시 황송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무도에 있다 하옵니다.》

고종이 격분하여 부르짖었다.

《도적놈, 날도적같은 놈!》

도승지가 다시 아뢰였다.

《이번에 고부백성들이 들고일어난것은 조병갑의 학정때문만은 아니옵니다.》

《그럼 또 무슨 까닭이 있느냐?》

《고부의 동진강에는 줄포, 염소, 동진, 사포 등 포구들이 많사온데 일본상인들이 성냥이며 비누따위 항아물건짝들을 싣고 들어와서는 고부농군들이 뼈빠지게 지은 곡식들을 헐값으로 빼앗아가기에 가뜩이나 어려운 그들의 살림이 더 어렵게 되고있다 하옵니다.》

일본상인?… 그놈들도 순 도둑놈들이다.》

이렇게 내뱉은 고종은 다시 골살을 찌프렸다.

명성황후가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의 기색을 슬쩍 살핀 도승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기에 란민들은 〈척양척왜〉, 〈보국안민〉 기치를 들었사온데 〈왜놈들을 몰아내자!〉는 함성이 드높았다 하옵니다.》

발뒤에 앉은 명성황후의 기색이 신중해졌다.

왜놈들을 몰아내자는 함성이 높았단 말이지… 십이년전 임오군란때에도 폭도들이 일본놈들을 몰아내자고 웨쳐대지 않았는가.

명성황후는 이 시각 지난 임오군란시기를 회억하는듯 옥문 입술에 눈을 간잔지런히 뜨고있었다.

고종이 발뒤의 명성황후를 돌아보았다. 시립한 중신들도 일제히 명성황후쪽에 눈길을 주었다.

발뒤에서 침착하면서도 무게있는 명성황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우리의 내란이 적국의 행운으로 될수 있습니다. 전라도민란으로 하여 렬국들이 우리의 내정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더우기 침략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일본의 독수에 대해 잠시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됩니다.》

고종이 머리를 끄덕이고 중신들도 경건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명성황후의 의사를 따르는것이 국왕 고종의 습관으로 되였고 중신들의 인습으로 된지 오래다. 이것이 이른바 고종 친정의 실태요 실모습이였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습과 부패한 봉건의 질곡으로 하여 우리 나라가 황혼기에 처했던 갑오(1894)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우던 조선은 대국들의 틈바구니속에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있었다.

이 다난하고 격동적인 시기에 삼천리강토와 천여만민중우에 군림하여 이 땅에서 리권쟁탈을 위해 피눈이 되여 날뛰는 유미렬강과 조선반도를 둘러싸고 각축전을 벌리는 일본, 청국, 로씨야를 가냘픈 녀인의 손으로 쥐여흔든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봉건왕조 26대임금 고종의 왕후인 명성황후였다.

《령상, 저 고부민란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고종이 한숨쉬듯 묻는 소리였으나 늙은 령의정 심순택은 눈만 꺼벅거릴뿐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명성황후의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그것은 마치도 어머니에게 구원을 청하는 어린 아이의 모색같았다.

명성황후가 침착하고 오연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고부민란이 더 퍼지기 전에 미연에 눌러버려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선 민란의 장본인인 탐관오리군수 조병갑이를 의금부로 잡아올려야 합니다. 하오면 고부백성들은 원망이 사라지고 흩어져갈것이옵니다.》

그러자 민씨일족의 우두머리인 간사하게 생긴 40대의 병조판서 민영준이가 제꺽 호응해나섰다.

지당합신 하교옵니다.》

이렇게 말한 민영준은 고종의 눈치를 살피며 뒤를 이었다.

《그리고 후임군수로 박명원이를장흥부사 리용태를 안핵사로 파견하여 고부백성들을 위무함이 어떠하올지?…》

민영준의 이 말에 여러 관료들이 입을 비쭉거렸다. 고부에서 란리가 일어난 기회에 제 심복들에게 리득을 주려는 그의 약은꾀가 빤히 들여다보였기때문이였다.

원래 민영준은 살줄 아는 인간이였다. 그가 평안감사로 있을 때 일이다. 그는 부임하여 1년도 안되는 사이에 황금으로 송아지를 빚어 임금 고종에게 진상하였다. 그후로 민영준은 《금송아지대감으로 불리우며 고종과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게 되였다.

그리하도록 합시다.》

임금의 분부에 백관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것으로 오늘의 회임은 끝을 보게 된셈이였다.

하지만 이때 발뒤에서 명성황후의 말소리가 또 울려 안도의 숨을 쉬려는 문무백관들을 다시 긴장하게 만들었다.

《래일은 정월대보름이라 연석(연회)을 차리고 외국인들을 초빙합시다.》

《아니 곤전, 민란으로 나라가 뒤숭숭한 이 위란한 때에?…》

고종이 의아한 표정으로 발쪽을 바라보았다.

《지금 일본이나 렬강들이 우리의 민란을 두고 신경을 도사리고있을텐데 우린 더 태연해야 하옵니다.》

중신들이 명성황후쪽에 찬탄의 눈길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곤전의 결심대로 하시오.》

고종의 말이 떨어지자 명성황후는 곧 도승지에게 각 공사관의 공사부인들과 우리 나라에 와있는 외국녀인들에게 청첩장을 보내도록 하라고 분부했다.

알아모셨소옵니다.》

도승지의 대답을 들은 명성황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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