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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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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30회 작성일 23-05-29 00:31

본문

(제 7 회)

제 1 장

4

(2)


승혁은 지금도 영빈을 생각하느라면 저절로 눈물이 나군 하였다. 특히 그의 마지막말이 심장을 울리면서 주먹을 틀어쥐게 하는것이였다.

(영빈이, 안됐소. 아직도 비날론생산공정은 돌아가지 못하고있소. 그리고 성복이는 다른 기업소로 가겠다고 한다누만. 정말 내 죄가 크지. 우리 죄가 크지. 제발 용서하오. 내가 제구실을 못한것 같소. 아들애에게 미처 관심을 못 돌렸소.)

승혁은 끝없이 자신을 꾸짖으면서 성복이의 집에 다달았다.

야산기슭에 자리잡은 단층집인데 너무 낡아 지난해에 다시 지었기때문에 별로 깨끗하고 아담해보인다. 집울타리밖에 서니 가슴이 시큰해진다. 소년시절부터 이 집에 얼마나 많이 다녔던가. 특히 최영빈이 세대주가 된 다음부터는 더욱더 제집처럼 허물없이 문을 열고 들어서군 하였다. 그러나 영빈이 저세상사람이 된 후엔 자연히 발걸음이 떠지였다.

(생활이란 어쩔수 없지 않은가.) 승혁은 이러저러한 변명으로 위안거리를 찾으며 울타리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집에는 성복이와 그의 어머니가 있었다.

《아니, 선철이 아버지가 어떻게 오셨어요?》 성복의 어머니가 반기며 맞이한다.

성복은 무슨 책인가 읽다가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하였다.

《왜 이렇게 놀라시오? 내가 오지 못할델 왔소?》 승혁은 성복의 어머니에게 웃어보이며 토방우에 앉았다.

그는 어서 방에 들어오라는 녀인의 말에 밖이 더 좋다면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가정형편도 물어보고 무엇인가 영빈을 추억하는 따뜻한 말을 하고싶은데 성격이 급한 그로서는 목표를 빙 에둘러갈수가 없었다. 그는 담배를 몇번 빨다가 단도직입으로 성복에게 화살을 던지였다.

《성복아, 너 다른 기업소로 간다는게 사실이냐?》

《사실이예요.》 성복은 태연하게 말하였다.

《넌 가면 안돼.》

승혁은 성이 나서 꽥 소리지르고나서 어쩐지 인사불성인것 같아 성복의 어머니에게 얼굴을 돌리고 푸념조로 말하였다.

《내 오늘 해수욕장에 놀러갔다 오는 길에 산업병원에 입원해있는 자동화과장 병문안을 갔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하는 말이 집의 성복이가 공장을 뜬다는게 아니겠습니까. 내 실은 그 소릴 듣고 찾아온거요. 그래 성복이가 그럴수가 있습니까?》

녀인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빛이 어리였다.

《선철이 아버지, 죄송합니다. 처음엔 나도 만류했는데 애가 하도 우기니 손을 들었습니다.》

《성복이 아버지를 생각해서도 그래선 안되지요.》 승혁은 이렇게 말하고싶은것을 꾹 참고 성복에게 침통한 눈길을 보냈다.

성복은 여전히 못 들은척 책을 읽고있었다.

《성복아, 신심을 가져야 해. 비날론공장이 영 죽은게 아니지 않니? 너같은 젊은이들이 공장을 든든히 지켜야 할게 아니야.》

성복은 책을 덮고 머리를 쳐들었다. 그는 잔뜩 짜증기가 어린 찌프린 얼굴로 당돌하게 말하였다.

《됐어요. 난 이젠 어린애가 아니예요. 직장장동지가 나더러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없지 않아요?》

《말 똑똑히 해. 난 이젠 직장장이 아니야.》

승혁은 어쩐지 성복의 말이 야유처럼 들려 큰소리를 치고 담배를 다시 피워물었다.

성복의 아버지의 얼굴이 다시금 떠올랐다. 림종의 시각 그의 얼굴에 떠올랐던 슬픈 미소가 가슴을 허빈다. 그런데 더욱더 슬픈것은 자기가 성복의 아버지에게 위안삼아 했던 말을 지금 다시 그 아들에게 반복하고있다는 그 사실이였다. 그때도 최영빈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소리를 했고 지금 또 그 아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언제까지 희망을 가지라는 소리를 해야 한단 말인가.

승혁은 어쩐지 자신이 품고있는 그 희망과 신심마저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처럼 희미해지는듯 한감을 느끼였다. 그러나 그는 언제까지도 그 희망을 버릴수가 없었다. 죽는다고 해도 신심을 잃지 않을것이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한결 억양을 낮추어 말을 계속했다.

《난 그저 네 아버지의 친구일따름이다. 그리고 비날론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사람이야. 물론 내겐 네 앞길을 막을 권리가 없다. 하지만 네 아버지가 나에게 네가 꼭 비날론을 지켜가게 할것을 당부했었다. 그땐 넌 평양에 올라가있었지.》

《아버진 오늘의 형편을 내다보지 못했어요. 비날론공장은 전망이 없어 국가적으로 내버렸단 말이예요. 실리가 맞지 않는거예요.》

국가적으로 실리가 맞지 않아 내버렸다는 그 말이 승혁의 가슴을 아프게 허비였다. 승혁이가 말을 못하고 멍하니 담배를 피우는데 성복은 어디로 가려는듯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승혁앞에 머리를 숙이였다.

《아저씨, 미안해요. 난 만날 사람이 있어 가보겠어요.》

성복은 단호한 걸음으로 마당을 걸어 울타리밖으로 나가버렸다.

승혁은 분명 성복이가 자기를 피해 달아나려는것임을 알면서도 그를 붙잡을수 없는 자신의 무맥함을 통절히 느끼며 말없이 어둠이 깃을 편 울타리밖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일도 치지 못하면서 괜히 격하여 달려온 자신이 한없이 어리석은 인간으로 느껴졌다.

(강동무의 말이 옳은지도 몰라. 가겠다는 사람 억지로 붙들어놓을수야 없지. 그리고 성복의 그 말도 옳은지 몰라. 나야 이미 그에 대해 체험한 사람이 아닌가. 상급단위의 조치로 비날론생산계통의 귀중한 설비와 장치물들을 많이 뜯어가지 않았는가. 다른 중요한 화학공장을 일떠세운다면서 당당하게 뜯어갔지. 난 그것을 반대하다가 반동으로 몰릴번 했고…)

승혁은 또다시 침통한 생각에 빠져들어갔다.

《애가 너무 버릇이 없이 군걸 용서해요. 날 욕하세요.》

사죄하는 녀인의 말이 이상하게도 자신에 대한 원망처럼 들려오는것이여서 승혁은 온몸이 굳어지는것만 같았다. 다음순간 자기의 몸이 가책이라는 바줄에 꽁꽁 결박되여 환멸의 구렁텅이에로 빠져드는것만 같았다.

너란 인간은 얼마나 랭혹한 놈인가. 네가 지금껏 친구의 아들에 대해 관심을 돌린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너는 성복이가 무슨 고민을 하며 무엇을 바라며 어떻게 살고있는지 언제 한번 따뜻이 알아본적이 있었던가. 그저 제일만 바쁘다고 무사분주하게 돌아쳤다. 그동안에 성복이는 외견상으로만 아버지의 다심한 친구인체 하는 이 차거운 인간을 외면하고 제갈길로 가버린것이였다.

《성복이 어머니, 날 용서하시오. 내가 죽일 놈이요.》 하고 승혁은 말하였다.

《뭘 그런 말씀 다하세요. 선철이 아버지를 우린 은인처럼 생각하는데요.》 녀인은 어리둥절하여 승혁의 침침한 얼굴을 근심스레 바라보았다.

승혁은 담배꽁초를 땅바닥에 내던지고 일어섰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동 끼호떼같은 인간인지도 모르지요. 성복이가 제때에 바람방향을 보고 돛을 다는것일수도 있구요.

성복이가 간다는 기업소야 씽씽 잘 돌아가고 종업원들에 대한 후방공급사업도 잘하니 가정살림에 보탬을 줄수 있을겁니다.》

승혁은 어쩐지 비틀거려지는 걸음으로 성복의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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