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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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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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깃을 폈으나 농약직장건설장엔 전등불들을 켜놓아 대낮처럼 환하였다. 건설장에 세워놓은 방송선전차에서는 경쾌한 음악을 내보내고있었다. 사람들은 그 음악곡조에 맞추듯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웃고떠들며 지대정리를 하고있었다.
《영차, 영차.》 하고 힘쓰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여 동무, 왜 자꾸 히들거리는거야. 삔이 빠지지 않았나.》 하고 누군가를 놀리는 소리와 함께 와 웃음소리가 터지기도 한다.
선철은 혜경이와 한조가 되여 맞들이를 쥐고 버럭을 날랐다. 아무리 일을 해도 기운이 온몸에 차고넘치는것만 같았다.
《힘들지 않습니까?》 하고 선철이가 몇번 물었으나 혜경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러다가 《나와 한번 경쟁해보자요, 누가 더 센가? 먼저 지치는 사람이 지는거예요.》 하고 내기를 거는 말을 했다.
《합시다.》 선철은 들뜬 기분으로 웨쳤다.
맞들이를 쥐고 걸으면서 혜경은 말하였다.
《선철선생은 내가 얼마나 힘이 센지 모르지요?》
《녀자가 힘이 세면 얼마나 세겠습니까?》
《정말 모르는군요. 내가 중학교때 얼마나 체육을 잘했는지 알아요? 난 남들에게 지는걸 그렇게 싫어했답니다. 그래서 체육에서도 남들을 이겨보겠다고 밤에 늘 밖에 나가 뜀줄운동을 하고 고저평행봉을 했지요.》
《그래서 다 이겼는가요?》
《글쎄…》
혜경은 까르르 웃고나서 말을 이었다.
《거의나 이겼지요 뭐. 그리고 난 중학교때부터 롱구선수였답니다.》
《대단하구만요.》
선철은 혜경에 대한 선망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였다. 선철은 체육에서는 언제나 남에게 뒤지는 슬픈 추억을 가지고있었다. 그가 축구장에 뛰여들면 뽈은 언제나 그를 피해 달아나는듯 했으며 하여 그는 헛다리질을 하여 가끔 웃음거리가 되였고 롱구장에 뛰여들면 인차 숨이 턱에 닿아 변변히 공을 잡아보지도 못하고 물러나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번은 장거리달리기에 나서 자기의 푼수를 망각하고 기를 쓰고 달리다가 쓰러진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자기의 허약한 체질을 얼마나 한탄하였던가.
이때 경음악을 내보내던 방송선전차에서 방송원이 갑자기 시랑송을 시작하였다.
설계실의 강혜경이 지은 시라고 하는 소개말에 선철은 깜짝 놀라면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저 시 정말 혜경동무가 지은겁니까?》
그것은 혜경이가 장군님께서 올해 2월 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비날론생산공정을 전부 살릴데 대해 가르쳐주신 그 소식에 접하여 혜경이가 격동되여 쓴 시, 언젠가 주승혁의 가슴을 울려준 그 시였다.
비날론지구를 흔들며
온 나라를 격동케 하며
백두의 번개가 쳤다
우리 빨리 그에 화답을 하자
비날론폭포로 화답을 하자
《시인지 뭔지 그저 생각나는걸 써봤는데 자꾸 내보내는군요.》
혜경은 어색해하면서 말하였으나 선철은 너무나 충격이 커서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그는 혜경의 또 하나의 재능을 발견하고서 갑자기 주눅이 들어버린것이였다. 아니다, 결코 재능의 차이도 아니였다. 혜경에게는 선철이 자기가 따르지 못할 높은 열정, 활화산마냥 타오르는 열정이 있었다. 선철은 혜경에 비한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비참하게 여겨졌다.
《난 남들이 하는걸 다 하고싶었댔어요. 다혈질이라고 할가, 뭐 녀자답지야 못하지요 뭐. 그래서 한때는 시를 써본다고 수태 긁적거려 봤지요.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시를 100편정도 쓰면 시인이 될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무작정 자꾸 썼지요. 그런데 끝내 100편을 채우지 못했어요. 70편에서 기권했단 말이예요. 어찌나 골이 아프던지.… 그러니 시인이 될수가 있겠어요? 그런데 그 시를 쓰던 버릇이 붙어서 감정이 끓어오르면 쓰지요. 시라기보다 랑만과 격정, 그저 그뿐이랍니다.》
(아, 이 처녀의 랑만과 격정은 얼마나 고상한것인가.) 하고 선철은 생각하였다. (이런 처녀를 사랑한다는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선철은 자기의 가슴에 그 무엇인가 뜨거운것이 꽉 들어차는것만 같았다. 동시에 그는 오늘 밤 단행하려던 그 《사랑의 고백》이라는것이 참으로 천박하게 여겨지는것이였다.
(혜경이가 얼마나 날 비웃을것인가. 이 처녀의 가슴은 그저 위대한 장군님의 명령대로 비날론을 다시 뽑아내려는 그 하나의 열망으로 끓고있는데… 사랑의 고백이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정말 좋군요.》
선철은 그저 이 한마디를 하고서 얼굴을 붉히였다. 혜경에게 자기의 붉어진 얼굴을 드러내보이지 않는 그밤의 어둠이 다행스러웠다.
서뿔리 자기의 사랑따위를 털어놓지 않도록 다잡아준 혜경의 시가 고맙게도 생각되였다.
(좋은 밤이다.) 하고 선철은 마음속으로 뇌였다.
선철이가 지원로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뜻밖에도 컴컴한 얼굴로 꿀꺽꿀꺽 찬물을 마시고있었다. 그의 곁에 앉은 어머니는 눈물이 그렁해서 아버지를 바라보고있었다. 2년전에 화상을 입었던 흔적이 조금 남은 어머니의 얼굴에 걱정과 우려가 짙게 어리였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위로하듯 말한다.
《너무 속을 썩이지 말아요. 뭐 상관할게 있어요. 선철이 아버지야 제 할일이나 하면 그만이 아니예요.》
《도대체 이 량심이 허락치 않는단 말이요.》 아버지는 주먹으로 제가슴을 두드렸다.
혜경에 대한 생각에 옴하여 꿈속에 잠긴듯 멍해있던 선철이는 이윽해서야 이상한감을 느끼며 끼여들었다.
《무슨 일이예요?》
《넌 알 필요가 없다.》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밀막아버렸다.
《아버지일인데 왜 아들이 알면 안된다는거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네 아버지가》 하고 어머니는 말하였다. 《합성직장의 잔사처리공정을 직장건물안으로 들여가자고 말했다가 그 직장사람들에게서 거부를 당했다누나.》
백영희는 아들에게 약간의 설명을 하였다.
《됐소, 그만하오. 이 애가 잔사처리공정이 뭔지 알게 뭐요?》
그러나 선철의 눈은 덩둘하니 커져있었다. 강혜경이 설계했다는게 바로 그 잔사처리공정건물이 아닌가.
《그럼 잔사처리공정건물이 필요없게 된다는게 아닙니까?》
영희는 아들의 흥분어린 목소리에 이상함을 느끼면서 쳐다보았다.
《넌 갑자기 왜 그러니?》
《왜 그러긴요? 잔사처리공정건물에 대해 알고싶어 그러는거지요.》
《잔사처리공정이 합성직장건물안으로 들어간다면 이미 있던 건물이 없어지는거야 당연한게 아니겠니. 그런데 넌 왜 그런다는거냐?》
선철은 혜경의 잔사처리공정건물설계가, 그렇게도 훌륭해보이던 그 형성안이 위기에 처하였다는것을 깨달았다. 잔사처리공정을 두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아버지가 어떤 놀랄만 한 구상을 내놓았든지간에 그시각 선철의 눈앞에 보이는것은 오직 혜경이의 발랄하고 자신만만한 얼굴뿐이였다.
그 얼굴이 흐려지게 해서는 안된다. 혜경을 도와야 한다.
선철은 저도 모르게 격하여 말하였다.
《난 잔사처리공정이란게 뭔지 알고있습니다. 그 건물설계를 강혜경이가 했으니까요. 강혜경이 심혈을 기울여 그 설계를 했단 말이예요. 나도 봤는데 정말 멋있게 설계했더구만요. 그런 생산건물은 처음 봤어요. 설계실에서도 평이 좋대요. 그런데 아버지때문에 혜경이 애쓴 노력이 헛공사로 된다면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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