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32회 > 소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소설

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32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3,209회 작성일 23-07-08 09:37

본문

(제 32 회)

제 3 장

5

(2)


달빛을 받은 성복의 얼굴엔 추억의 빛이 푸르게 비껴있었다. 송희는 감동이 어린 눈빛으로 홀린듯이 성복을 쳐다보고있었다.

아,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주승혁아바이도 좋은 사람이지만 그를 잊지 못하고 생각하는 성복동지도 참 좋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한생 사랑해도 손해없을거야. 송희는 뜨겁게 달아오른 마음을 숨기느라 애쓰며 말하였다.

《승혁동지는 정말 좋은분이군요.》

《그래 난 승혁동지를 잊을수 없어. 승혁동지 아주머님도 우리가 집을 지을 때 찾아와서 도와주었어. 고마운분들이야.》

송희는 성복이와 함께 야간매대앞에 섰을 때에야 자기가 사탕가루를 사려고 했던 일이 생각났다.

(래일 엄마한테 사정을 말하고 사탕가루를 얻어내는 수밖에 없지.)

성복은 송희가 돈을 꺼내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너 무슨 돈을 이렇게 가지고다니니?》

《사실은…》 하고 송희가 사연을 설명하자 성복은 한사코 송희의 돈을 밀어버렸다.

《됐어. 내게도 돈이 있는데 뭐. 면회가는건 이만큼 사자.》

《그래도 내 몫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송희가 한사코 고집하여 적지 않은 량의 식료품을 사서 자전거바구니에 실었다.

《좌우간 우리 송희가 마음씨 곱다는건 말할수가 없다니까. 괜찮거던.》

성복이가 하는 말이 사탕가루를 사려고 한 그 마음을 두고 하는 말인지, 주승혁의 안해의 병문안을 위한 식료품을 사는데 아낌없이 돈을 낸 그 일을 두고 하는 말인지 명백치는 않았으나 송희는 그의 칭찬이 싫지 않았다.

최성복과 김송희의 병문안은 알데히드생산공정에서 일어난 사고로 하여 침울해있던 주승혁의 기분을 대번에 전환시키였다. 그만큼 승혁에게는 성복의 방문이 뜻밖이여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웁고 마치 멀리 떠나가서 속을 태우던 아들이 돌아온것만치나 기쁘게도 생각되는것이였다. 백영희도 성복이와 송희가 찾아온것이 반가와 어쩔줄 몰라하였다.

《난 일없어. 그런데 너희들이 올줄은 몰랐는데… 아직 저녁식사전이겠는데 배고프겠구만. 어서 뭘 좀 먹으라구.》

영희는 젊은 남녀들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했으면 좋을지 몰라한다.

승혁은 성복이와 송희에게 무엇을 더 먹이지 못해 안이 달았다. 그는 그들의 손에 꽈배기를 한개씩 쥐여주고는 과일칼로 사과껍질을 깎았다. 그는 성복에게 이렇게 정을 줄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것이 너무도 기껍게 생각되였다.

《너희들이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줄은 몰랐는걸.》 승혁은 애정을 담아 말했다.

《가깝긴요. 그저 우연히 만나 함께 오게 되였는걸요.》 하고 성복이가 뒤더수기를 긁적이고 송희가 《맞아요. 순전히 우연이예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우연이면 우연이고… 하지만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더라.》

잠시후 승혁은 진지한 눈길로 성복을 보며 물었다.

《성복이는 요새 어떻게 생활하고있니?》

《그저 그렇게 살고있지요 뭐.》 성복은 시무룩해서 구체적인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난 네가 비날론공장에 다시 왔으면 한다. 너야 비날론공장에서 배우고 콤퓨터기술자가 되지 않았니.》

승혁은 지금껏 합성직장개건을 위한 일에 분투하면서 또 콤퓨터화를 끝내 성공시키는 기술자들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성복이의 모습을 떠올렸던가.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뇌이던 그런 말을 직접 본인 당사자에게 하느라니 가슴이 시큰거리였다.

《나와 너의 아버지는 당시 화학공장 지배인차 운전사였던 너의 할아버지에게서 비날론에 깃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고 후에는 함께 합성직장에서 일하게 되였었지. 네 아버지는 너무나 성실하여 꼭자라는 별명을 듣던 사람이였지. 우린 고난의 행군시기 죽물을 먹으면서 출근하여 설비들을 지키였어. 그러면서 비날론이 꼭 다시 나온다는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어. 그러나 네 아버지는 끝내 그날을 보지 못하고 희생되였지. 동지들을 구원하고 희생되는 값높은 삶을 살았어. 아버지가 하지 못한 일을 네가 해야 할게 아니냐. 난 네가 비날론공장을 외면할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성복아, 공장에 돌아오너라.》

《누가 날 다시 받아주겠습니까.》 성복은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말하였다.

《성복이가 다시 오겠다면 다 환영할게다.》

《그만두겠습니다. 남자가 한번 택한 길을 다시 바꾸겠습니까.》

《그게 네 진심이냐?》

《그렇습니다.》

승혁은 성복의 마음속을 투시해보듯 지그시 그를 바라보았다. 성복의 몸은 허약해보이였고 얄팍한 얼굴피부밑에는 고뇌가 감추어져있는듯이 느껴졌다. 승혁은 어쩐지 성복이가 측은하게 여겨졌다. (그래 넌 아직도 방황하고있느냐?)

《엇드레질은 그만둬라. 내 더 말은 않겠다만 잘 생각해봐라.》 승혁은 괴로운 한숨을 쉬면서 눈길을 돌리였다.

《가보겠습니다. 괜히 내가 아저씨를 노엽게 하는것 같습니다.》 성복은 승혁과 영희에게 머리숙여 인사를 하였다.


성복은 송희와 나란히 걸었다. 성복이가 밀고가는 자전거의 전조등이 껌벅거리면서 캄캄한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군 했다.

《성복동지, 내가 밉지요?》 송희가 조용히 속살거리였다.

《왜?》

《내가 성복동지더러 비날론공장에 그냥 있기보다 다른 기업소에 가는게 낫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만둬. 내가 뭐 네 말 하나로 움직이는 사람인줄 아니.》

《그래도 난 마음이 괴로워요. 주승혁아바이의 말대로 공장에 다시 오는게 좋지 않겠어요?》

《됐어. 남자가 이랬다저랬다해서야 어디 쓰겠니. 난 나대로의 길을 가는거야.》

《이제라도 공장에 다시 오라요.》

성복은 대꾸가 없었다. 송희는 성복의 마음을 상하게 할가봐 더 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꼭 성복이를 공장에 오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하였다.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은 그때에 가면 깨끗이 사라져버릴수 있을것이고 자기는 더욱더 떳떳하게 성복을 사랑할수 있을것만 같았다. 송희는 한숨을 내쉬였다.

《그래도 성복동진 아직도 비날론공장을 좋아하는것 같애요.》

《그거야 좋아할수밖에 없지. 송희도 있고… 또 좋은 사람들이 일하고있는 공장이니까.》 성복은 히죽이 웃으면서 힐끔 송희를 곁눈질 하였다.

성복은 언제부터인지 송희와 함께 있으면 즐거움을 느끼군 하였다. 어쩐지 송희가 사랑스럽고 위해주고싶은 심정도 함께 느끼였다. 그러나 그저 그뿐이고 송희와 결혼한다는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그는 지난날 몇명의 처녀들과 선을 보았는데 다 환멸감을 자아냈었다. 어떤 처녀는 제쪽에서 성복이가 싫다고 차버렸고 어떤 처녀는 그를 잘 리해하지 못하였고 어떤 처녀는 지내 경박스러워서인지 이내 싫증을 느끼였다. 일정하게 나이가 먹자 장가가는것이 시들하게 생각되였다. 하여 32살의 나이에 이르렀는데 대상자를 보는 눈만 더 높아지는것 같았다. 얼굴도 곱게 생기고 일정한 지식수준이 있어야 하는데 적어도 자기와 언어가 통해야 한다고 정해놓고있었다.

송희는 대학졸업생이 아니여서 성복이가 바라는 대상기준에서 벗어나고있었다. 따라서 성복은 송희를 단지 귀여운 동생처럼 여겨왔었다. 또 나이차이가 8살이나 되니까 더 그렇게 생각되는것인지도 모른다.

《성복동진 이제 꼭 우리 비날론공장으로 다시 올거예요.》

《내가? 어처구니가 없군. 송희가 언제부터 예언자가 되였는가?》

《성복동지를 안 때부터… 호호.》

《송희가 정말 놀라운데, 철학적인 말을 할줄 알거던.》

《그저 날 놀리는 말만 하는군요. 성복동진 날 어린애처럼 보지요?》

《무슨 어린애같은 소릴 다 해. 난 그저 송희를 동생처럼 생각하는거야. 나이도 나보다 한참 아래가 아니야?》

《그러니 날 동생처럼 생각한다? 그거 참 고마운 일이군요.》 송희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송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물었다.

《성복동진 사랑해본 처녀가 있어요?》

《그건 잘 모르겠어. 그래 송희는 사랑해본 남자가 있나?》

《지금 사랑하고있어요. 난 이래뵈도 좀 소박하거던요. 그래서 아주 소박한 사람을 좋아해요.》

《어떤 사람이게?》

《음, 누구같은가 하면… 성복동지와 좀 비슷한데가 있어요. 제대군인도 아니고 아직 입당도 못했지만… 머리는 비상하고…》

《네가 날 놀리는구나. 한번 혼나보겠니.》

드디여 송희의 집이 있는 아빠트현관까지 다 왔다. 송희에게는 자기들이 사는 이 흥덕구역이 너무나 좁은것저럽 생각되였다. 도무지 손바닥만 하여 짧은 시간이면 몇번을 왔다갔다할수 있으니 재미가 없다. 이제는 헤여져야 하였다.

《가겠어, 잘있어.》 하고 성복이가 말하고 자전거를 돌려세웠다.

《성복동지.》 송희가 불러세웠다.

《왜 그래?》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가 하는 비밀을 알려줄가요?》

《응.》

송희는 우물쭈물하다가 깔깔 웃었다.

《자체로 생각해보라요. 그럼 안녕히!》

송희는 현관으로 들어가버렸다. 성복은 히죽 웃고나서 자전거를 달리였다. 현관안에서 송희가 다시 얼굴을 내밀고 말없이 자기를 바래고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성복은 혼자 집으로 향하면서 공장으로 돌아오라던 주승혁의 말을 되새겨보고있었다.

(내가 다시 비날론공장에 입직하겠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웃을것인가.)

성복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다음순간 왜서인지 송희의 의미심장한 말과 타는듯 한 눈빛이 떠오르는것이였다.

(혹시 송희가 날 사랑하는것이 아닐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