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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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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60회 작성일 23-05-2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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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제 1 장

2


소나무숲의 여기저기서 오락회판이 벌어져 노래소리가 울리고 춤판이 벌어졌다. 사람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겨끔내기로 터져올랐다.

하루를 즐기는 이 사람들속에서 가장 이채로운것은 역시 녀성들이다. 굶주림이 덮쳐들었던 고난의 행군시기 남편을 내세우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가정의 부담을 스스로 걸머지는 과정에 그 강의성을 남김없이 과시한 우리 녀성들은 오락에서도 남성들을 릉가한다. 어느 녀성들의 집단에서 오락회를 펼치였는데 어찌나 재미있게 노는지 숱한 사람들이 어깨성을 쌓고 구경을 하였다.

《역시 우리 녀자들이 제일이야. 남자들은 발뒤축에도 못 따라가겠다니까.》

《난 이미전부터 녀자들에게 깊이 머리를 숙인다네.》

오후에도 사람들은 지칠줄 모르고 해빛과 바다물을 즐기였다. 아침에 유원지를 찾아온 사람들은 기껏 즐기다가 날이 어두워져서야 유원지를 떠나가는것이 보통이였다.

2.8비날론련합기업소 자동화과 공정조종실 콤퓨터운영원인 최성복은 이제는 놀기가 시들해졌다. 그래서 모래불에 퍼더앉아 시름겨운 눈길로 멀거니 바다물을 바라보는데 한사람이 옆에 와앉았다. 자동화과 공정조종실 실장인 문종국이였다.

《이젠 실컷 놀았나?》

문종국은 한손으로 모래를 쥐였다가 슬슬 흘리면서 물었다.

《예, 잘 놀았어요.》

최성복은 왜선지 심각해보이는 문종국의 얼굴을 힐끔 돌아보았다.

나이가 44살에 이른 문종국은 훤칠하게 앞이마가 벗어지기 시작하였지만 흰 얼굴이며 미끈한 체격이며가 다 잘생기고 지성미가 넘치는 사람이다. 그보다 퍽 나이가 아래인 최성복은 언제부터인가 이 문종국실장의 재능과 인간됨에 반하였고 그를 형님처럼 따랐다. 그런데 지금 최성복은 문종국을 이전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기가 미안하게 생각되였다. 그는 비날론공장을 떠나가려고 결심했었고 끝내는 이동수속을 하고있었던것이다.

《그러니 성복이와 해수욕을 하는것도 이젠 마지막이구나.》 하고 문종국이 말하였다.

성복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못내 섭섭해하는 종국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줄수 있단 말인가.

《이제라도 생각을 다시 해보는게 어때?》

종국은 여전히 성복을 포기하고싶지 않은 모양이였다.

《형님, 더 말하지 말라요.》

성복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문종국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문종국이 실장이 되기 전부터 형님이라고 불러왔기에 성복은 《실장동지》라고 부르는것이 어색하였다.

자동화과에는 원래 콤퓨터실이 한개 있었는데 과장 강영식이 지난해에 기업소 책임일군들과의 심중한 토의끝에 콤퓨터실을 해체하고 재능있는 청년들을 더 망라하여 프로그람실과 공정조종실을 내오도록 하였다. 콤퓨터실의 운영원이였던 문종국은 그때 새로 나온 공정조종실의 실장으로 임명되였고 최성복은 문종국이 실장으로 있는 공정조종실에 가려고 자동화과장을 몇번이나 찾아가 만났는지 모른다. 최성복은 비날론공장이 싫어 다른 기업소로 가려고 하면서도 문종국과 헤여지는것은 실뚱하였다.

《형님, 2.8비날론은 전망이 없어요.》

성복은 변명삼아 말하였다.

《비날론을 뽑지 못하는지가 벌써 몇년째예요. 기업소에서 안깐힘을 다해 가성소다공정과 염화비닐공정을 살리긴 했지만 다른 생산공정을 되살린다는건 너무나 힘에 부쳐 일자리를 내지 못하고있지요. 식량공급도 못 받지, 콤퓨터전문가들이 할일이 없어 밤낮 동원만 다니지. 정말 한심하지요. 형님도 차라리 나와 함께 가는게 어때요? 형님의 실력이면…》

《그만해.》

문종국이 조용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성복의 말을 잘랐다.

《네가 오히려 날 설복하려는셈이냐?》

《난 설복하자는게 아니라… 그저 형님과 헤여지기가 싫어서…》

《됐어. 네 심정을 내가 왜 모르겠니? 나도 너와 헤여지는것이 싫어. 하지만 난 너처럼 쉽게 이 공장을 떠날 마음을 품게 되지 않는구나.》

종국은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이 공장이야 우리 아버지들의 한생이 흘러간 곳이지. 내 소년시절도 이 공장과 더불어 흘러갔어. 어렸을 때 아버지를 찾아와서 자동화기구들을 장난질하면서 놀던 기억이 잊혀지질 않아. 너에게도 그런 추억이 있을거야.》

《그거야 그렇지요 뭐.》

《어쨌든 섭섭하다. 과장동지랑 네게 많은 기대를 걸고있었는데… 앞으로 일을 칠 사람은 성복이라고 했댔지.》

종국의 말은 성복이를 설복하려고 하는 겉치레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실이였다.

최성복은 공장대학을 졸업하고 인민대학습당에 가서 강습을 받았는데 콤퓨터분야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이였다. 그가 개발한 《기업소 원가계획작성프로그람》은 기업소의 경영업무사업에 크게 기여하였고 중앙과학기술축전에 참가하여 3등상을 받았다.

《형님이 아무리 욕해도 할수 없어요. 난 이미 걸음을 내짚었어요. 이제 와서 돌아설수는 없는게 아니예요.》

《됐어, 갈 사람이야 가는거지. 다 제 생각이 있고 포부가 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성복이 가는것은 섭섭하다.》

문종국의 진심어린 말이 성복의 가슴을 마구 휘저어놓았다. 갑자기 생긴 의식의 소용돌이속에서 의혹과 가책이 바위마냥 묵직히 솟아올랐다.

(이제라도 생각을 돌려야 하지 않을가?)

성복은 한대 후려맞은 사람처럼 머리가 뗑해졌다.

이때 그들이 앉아있는쪽으로 한 처녀가 걸어오고있었다. 처녀는 샤쯔를 걸치였으나 호리호리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보이였다. 곱살한 그 처녀는 2카바이드직장 수리작업반의 김송희였다.

《송희가 오는구나. 너 찾아오는게 아니야?》

문종국이 송희를 발견하고 성복에게 하는 소리였다.

누구인가를 찾는듯 송희의 까만 두눈이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린다.

《송희, 어디 가는거야?》

성복이가 반가운 웃음을 짓고 소리쳤다.

송희가 성복을 발견하고 살짝 웃으며 걸음을 다그쳐왔다.

문종국과 최성복은 도에서 진행된 여러 건설대상들에 동원다니면서 김송희를 알게 되였다. 각 직장에서 모여온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일하면서 한가마밥을 먹는 생활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고 그들의 우정을 두텁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송희는 인물이 고운데다 식사보장을 잘하여 동원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가 호감을 가지고 대한것은 문종국과 최성복이였다. 송희는 서른살이 넘어선 로총각이라고 할수 있는 최성복을 각별히 따랐었다.

《여기 앉아서 뭐 하는거예요?》

송희의 발그레한 얼굴에 웃음발이 활짝 피여났다.

《뭘 하긴… 송희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지.》

문종국이 롱을 하였다.

《피- 콤퓨터에 대한 얘기를 하겠지요 뭐. 프로그람이 어떻소, 하드웨어가 어드렇소 하면서…》

《송희가 제법인데…》

종국과 성복이 서로 마주보며 웃어댔다.

《그런데 송희는 누구를 찾는거야?》

성복이가 물었다.

《우리 반장동지가 심부름을 시켰어요.》

《무슨 심부름?》

《그건 저…》

송희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눈을 내리깔면서 손톱여물을 썰었다.

《바쁘지 않으면 좀 앉지그래.》

성복의 말에 송희는 좀 머뭇거리였다.

《빨리 가야 하는데…》

송희는 이렇게 혼자말처럼 웅얼거리면서 옆에 앉았다.

《송희가 한다는 심부름이야 뻔하지.》

종국은 시물시물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가야겠군.》

《형님, 왜 가는거예요?》

《송희가 성복이한테 왔으니 가야지 별수가 있어.》 종국은 성이 난듯 짐짓 얼굴을 찌프리고 말하였다. 그리고 웃으면서 덧붙이였다.

《난 가서 해수욕이나 한번 더 해야겠다. 또 땀이 나는군.》

종국이가 가버리자 성복의 갱핏한 얼굴에 웃음이 실리였다. 성복은 키가 중키보다 약간 작을사 하고 몸은 좀 약해보이였다. 얼굴의 눈섭이 진하고 눈이 예리하고 입술이 얄팍하였다. 그는 자신에 대한 우월감이 강한 청년이여서 웬간한 사람은 우습게 보았다. 처녀들을 보는 눈도 그러해서인지 몇번 선을 보다가 그만두고 아예 독신으로 살 태세로 나이를 먹어가고있었다. 그는 자기를 따르는 송희를 누이동생처럼 다정하게 대하였다. 마음씨도 곱고 기업소예술소조에 다니면서 노래도 잘하는 송희가 귀엽게 생각되였다.

《종국동진 언제나 사람을 잘 놀려요.》

송희가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종국의 뒤에 대고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건 송희가 고와서 그러는거야. 종국동지야 좋은 사람이지.》

성복은 송희가 뭐라 반대의 생각을 할가봐 겁나기라도 하듯 다시한번 강조했다.

《그래,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성복은 이제는 종국이나 다른 친근한 사람들과 헤여져야 하리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기분이 울적해졌다.

《송희, 하나 물어보자. 너 내가 비날론공장을 떠나겠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니?》

《아니, 그럼 성복동진 어디 딴데 가는거예요?》

송희의 올롱해진 두눈에 놀람과 겁기가 어리였다.

성복은 말없이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이 맞붙은 수평선을 바라보고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보이였다. 이윽고 성복은 입을 열었다.

《뭐 송희에게 숨길것도 없지. 난 다른 기업소로 가려고 해. 꽝꽝 생산이 진행되는 기업소야.》

성복은 그 기업소의 이름을 말하였다.

함흥시에선 손꼽히는 기업소여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기업소종업원들을 부러워하고있었다.

송희는 왜선지 가슴이 아파왔고 성복이에게 무엇인가 항변의 말을 하고싶었다. 그러나 성복이의 기분을 거슬려놓을가봐 겁이 나서 머리를 숙이고 모래장난질을 하였다. 만약 성복이가 공장을 뜬다면 그를 만나기가 어려울것이라는 그 사실이 너무나 싫었다.

송희는 좀 특이한데가 엿보이는 사람들을 동경하고있었다. 그자신이 남들보다 특출한 존재로 되고싶었으나 생활은 그가 평범한 처녀임을 증명해주었다. 중학시절 그의 희망은 이름난 가수가 되여 중앙의 무대에서 공연하는것이였다. 그는 학교예술소조에 다니며 열심히 성악을 배웠으나 별로 재능이 나타나지 않아 예술전문의 대학에 갈수가 없었고 결국은 비날론공장에 입직하여 기업소예술소조에 참가하는데 만족하는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건대 이 허울좋은 비날론련합기업소야말로 종업원들이 아무런 빛도 나지 않는 한심한 곳이였다. 종업원들은 별로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한생을 허비할것이였다. 아버지 김명수도 합성직장의 직장장이라지만 지금은 숨죽은 설비들이나 지키면서 기업소적으로 제기되는 작업동원에만 불리워다니지 않는가. 녀자는 어쩔수 없다 쳐도 남자들이야 세상에 이름을 날려야 남자답다고 할수 있지 않을가.

이와 같은 관념에 사로잡힌 송희는 처녀의 호기심으로 공장의 총각들을 휘둘러보았으나 모두 평범하기짝이 없었다. 그래도 자동화과에서 콤퓨터를 다루는 청년들이 돋보이였다. 송희는 콤퓨터를 배운다고 자주 자동화과에 가군 하였다. 갈 때는 무엇인가 먹을것을 주머니에 넣고가서 슬쩍 최성복에게 주군 하였다. 송희는 로총각인 최성복에게 자기도 모르게 끌리우고있었다.

송희는 자기자신을 이겨내고 성복에게 힘을 주리라고 생각하였다. 송희는 여느 사람들과는 곧잘 부끄럼을 느끼면서 말을 잘하지 않았지만 성복이처럼 따르는 사람과는 허물이 없이, 또 어느 정도 응석도 부리면서 거침없이 말하는 처녀였다.

《난 성복동지가 결심을 잘한것 같아요. 씽씽 돌아가는 기업소에 가야 큰일을 할수 있지 않겠어요. 우리 공장처럼 한절반 숨이 죽은 공장에서야 아무리 희망과 포부가 커도 무슨 빛이 나겠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그렇지 않구요. 거기서 받겠다면 가는게 좋을것 같아요. 아까운 재간을 썩이기보다는…》

《허, 이거 송희가 대단한데…네가 그래도 내 심정을 알아주는구나.》 성복은 싱그레 웃음을 띄웠다.

성복은 마침내 최종적으로 비날론공장을 뜰것을 결심했다.

송희는 성복이가 바라던 그 말을 했던것이니 성복은 누군가 강하게 자신을 지지해주기를 기다렸던것이다. 성복은 송희가 많은 사람들의 심중에 고패치는 그 고민과 환멸을 숨김없이 터놓았다고 믿었다.

(더는 동요할 필요가 없다. 남자가 이것저것 잴게 무엇인가.)

《가더라도 공장에 자주 놀러와야 해요.》 하고 송희가 말하였다.

성복이가 쳐다보자 송희는 붉어지는 얼굴을 숙이였다.

(이 앤 그저 쩍하면 얼굴이 빨개진다니까.)

성복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하였다.

《아무래도 송희가 보고싶어 공장에 자주 와야 할것 같애.》

《정말이예요?》

《정말이야.》

성복은 송희를 향해 웃어보이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개운치 못하였다. 아무리 자신의 처사에 대한 정당성을 찾고 누구보다도 자신이 현명함을 스스로 납득시킨다고 하여도 연기처럼 소리없이 스며드는 불만감은 어찌할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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