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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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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118회 작성일 23-05-2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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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제 1 장

1

(2)


12시가 가까이 되여오자 출출해진 사람들이 소나무숲그늘에 끼리끼리 둘러앉아 음식들을 펴놓았다. 사람들은 마시고 먹다가는 해수욕장으로 달려간다.
주승혁이네 공업기술연구소 사람들도 모여앉아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따라온 가족들도 사이사이에 끼여앉았다. 대체로 가족들도 함께 와서 즐기는것이지만 승혁은 오늘 혼자 왔다. 안해가 몸이 불편하다면서 따라오기를 거절한것이다. 그러나 실상 안해는 해임된 남편으로 하여 수치감을 느끼면서 기업소의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것을 피하려 하는것이다.
승혁이가 음식을 들고있을 때 김준선이 찾아왔다.
《아바이, 우리한테 가십시다.》
《내가 왜 거기 간단 말인가? 난 여기가 좋아.》 승혁은 손을 홱홱 저었다.
준선은 무작정 승혁의 팔을 잡아끌었다. 《우리한테 좋은게 있어요. 가서 잠간 앉았다가란 말이예요.》
《나도 맛있는걸 싸왔는데 반장도 여기 앉아 함께 들자구.》 승혁은 준선에게 맥주 한고뿌를 권하였다.
《고맙습니다.》 준선은 맥주 한고뿌를 쭉 들이키고 료리 몇점을 집어먹더니 다시 승혁을 잡아끌었다. 《이젠 우리한테 가셔야지요.》
옆에서 연구사들이 웃으면서 추기였다.
《아니, 좋은게 있다는데 가보지 그래요.》
《승혁동지대신 내가 가서 먹어준다? 반장동무, 그 좋은거라는게 대체 뭐요?》
《노루가 생겨 불고기를 하는 판입니다.》 준선이 너스레를 떨었다.
연구사들이 웃음을 터치였다.
《그럼 우리모두가 다 가서 먹어주어야겠구만.》
《노루는 무슨 노루, 기껏해야 염소 한마리겠지.》
《염소면 괜찮은거지. 토끼 두마리일거요.》
연구사들은 대체로 승혁보다 나이가 아래였다. 승혁과 한연구실에 있는 젊은 연구사가 승혁의 몸을 붙들어 일으켜 등을 밀었다.
《그러지 말고 일어나시라요. 우정 찾아온 준선반장의 체면을 봐주어야지요.》
승혁은 못이기는체 하고 준선이와 함께 걸어갔다.
《실은 작업반에서 염소 한마리를 잡았어요. 반원들이 아바이를 데려와서 함께 먹자고 하더군요.》
준선이가 활기차게 걸어가면서 하는 말이였다. 승혁은 어느새 샤쯔를 걸쳤는데 준선은 울근불근한 근육투성이의 다부진 웃몸을 드러내놓았다. 준선이가 가느스름한 두눈으로 치떠볼 때면 량미간에 깊은 주름살이 잡히면서 어쩐지 까다롭고 신경질이 많아보이나 웃을 때면 귀밑까지 째지게 입귀가 벌어지는데 어쩐지 호방스러워보인다.
얼핏 보매 혈기방장하고 진중감은 부족해보이지만 대단히 침착하고 웅심이 깊었다. 그는 5년전에 반장으로 임명되였는데 일하는 잡도리가 남달랐다. 그는 작업반원들을 동원하여 작업반휴계실을 새로 꾸렸으며 무엇보다 작업반원들의 생활을 돌보는데 각별한 힘을 돌리였다. 그리고 작업반에서 토끼를 수십마리나 길러 반원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지금은 염소들을 기르고있었다. 그는 작업반휴계실곁에 염소우리를 지어놓았다. 그가 염소를 기르자고 애를 쓸 때 그것을 안 승혁이가 도와주었었다. 승혁은 준선이네가 달구지바퀴나 농기구 같은것을 만들어 농촌에 보내고 그대신 염소를 싸게 구입할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던것이다.
아마 그것을 잊지 못해 준선이네가 염소를 잡아 불고기를 하면서 자기를 초청해가는것이라고 승혁은 짐작하였다.
염소도 염소이지만 준선은 승혁을 깊이 존경하였다. 김준선이 총각시절에 1카바이드직장 교대부직장장의 딸과 련애할 때 처녀의 부모들이 결혼을 승낙하지 않아 적지 않게 고민하였었는데 승혁이가 결혼이 성사되도록 나서주었다. 승혁이가 처녀의 아버지와 무척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던것이다. 그때부터 준선은 승혁을 따르고있었다.
승혁이가 준선이와 함께 나타나자 불고기판을 몇개 걸어놓고 둘러앉아있던 사람들이 반기였다.
나이지숙한 두명의 반원은 따뜻한 눈인사를 하였고 준선과 나이가 비슷한 김성철은 짐짓 투덜거리였다.
《왜 이제야 옵니까? 기다리기가 베차군요.》
준선의 안해 박성미가 인사를 하였다. 성미를 비롯한 녀자들은 어느새 수영복을 벗고 체육복들을 입었다.
《우린 아저씨가 오는가 안 오는가 내기를 하댔어요. 난 온다고 하고 성철동무는 안 온다는거예요. 내가 이겼으니 귀잡고 절을 하라요.》
《해야지, 나야 한다면 하는 사람이 아니요.》
이전에 성미와 한직장에서 일할 때부터 허물없는 사이인 성철이가 성미앞에 넙적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한바탕 웃고나서 준선이가 말하였다.
《안 오겠다는걸 내가 억지로 끌고왔소.》
《그러게 내가 꼭 반장동무가 가야 한다고 말한게 아니요.》 작업반 고급기능공으로 제노라 하는 사람인 박건일이 기를 돋구었다.
《고맙소. 변변치 못한 사람을 찾아주어서…》 승혁은 모두거리로 인사를 하였다.
《우리 작업반 염소들에 승혁아바이 몫도 당당히 있지요. 그렇지 않소?》 준선이가 말하자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며 찬성하는 소리를 웨치였다.
《옳수다.》
《옳은 말이지.》
《여기 누가 그걸 모를 사람이 있소.》
이윽고 모닥불이 타오르고 불고기판에서 양념에 재운 염소고기점들이 칙칙 소리를 내며 익기 시작하였다. 한쪽에서는 녀인들이 식기들에 음식을 담았고 어떤 녀인은 김치그릇을 들고와서 남편들곁에 끼여앉는다.
《자리를 좀 내라요.》 하는 녀인의 목소리가 자못 경쾌하게 울린다.
어른들과는 관계없이 저들끼리 뛰여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한군데 모여앉아 주패놀이를 벌렸다.
하늘에서 불볕이 내리쪼이는데 소나무숲의 그늘은 시원하기만 하다.
《준선반장이 할줄 알거던. 이렇게 자체로 길러 적당한 기회에 반원들에게 푸짐히 먹이니 좀 좋은가.》
승혁이가 불고기를 먹으며 칭찬의 말을 하자 준선이 씩 웃으며 대꾸하였다.
《그저 작업반자체로 살아나가야 해요. 공장이 제대로 돌지 못하는 판인데…》
《언제면 공장이 살아나서 생산물이 꽝꽝 쏟아져나오겠는지…》 누군가 탄식의 말을 하였다.
순간 승혁은 가슴을 찌르는듯 한 아픔을 느끼였다.
비날론을 마지막으로 만져본것이 언제였던가. 성에 있던 박춘섭이라는 중학동창생이 지도차로 공장에 내려왔을 때 함께 섬유직장에 가서 산더미처럼 쌓인 비날론솜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던적이 있었다. 그때 춘섭은 웃으면서 말하였었다. 《비날론이 멋있는 배경이지. 비날론이야말로 우리 조선사람들의 자랑이 아니겠나.》
그것이 마지막으로 본 비날론이였던가? 이제는 10여년이 퍽 지난것 같다. 그후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두개의 방사직장, 섬유직장이 다 숨이 죽었던것이다.
그래도 공장에서 제일 오래 버티면서 초산과 같은 생산물을 냈던 직장은 승혁이가 직장장으로 사업하던 합성직장이였다. 마지막초산을 뽑고 멎어버린 설비들을 손으로 쓸면서 저도 모르게 눈굽이 축축해졌었다. (일시적인 시련일거야. 반드시 살아날거야.)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로부터 손을 꼽아 헤여보면 11년째가 되는것 같다.
새 세기에 들어와 기업소에서는 종업원들이 개건공사에 달라붙어 우선 가성소다생산공정을 살리였고 그다음에는 염화비닐생산공정을 다시 일떠세웠다. 그러나 그외의 다른 생산공정들은 돌아가지 못하고있었다. 준선의 수리작업반이 소속되여있는 2카바이드직장도 돌아가지 못하였다. 지금은 1카바이드직장에서 1개의 전기로가 돌아가고있을뿐이였다.
(언제건 다시 살아날 때가 오겠지.) 주승혁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하였다.
이 말을 중얼거리면서 살아온 그 세월이 무정하였지만 지금도 승혁은 다시금 그 생각을 곱씹는다.
지금 전국 각지에서 공장, 기업소들의 현대화가 힘있게 추진되고 새로운 공장들도 많이 일떠서고있다. 우리 비날론공장도 빨리 일어서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승혁은 가슴이 미여지는것만 같아 술을 들이켰다. 푹 취하여 주정이라도 하고싶었다. 그러나 애주가이면서 주량도 어지간한 그인지라 쉽사리 취기가 오지 않았다.
《합성직장이면 어떻단 말이야?》
별안간 옆 불고기판에서 박건일이 목소리를 높이였다.
그러자 작업반의 유일한 처녀인 김송희의 얼굴이 잘 익은 딸기처럼 새빨개진다. 송희는 눈을 내리깔고 태연한척 했으나 누구나 처녀가 몹시 긴장해졌음을 쉽게 알아챌수 있었다. 김성철이 송희를 슬쩍 건너다보면서 싱그레 웃음을 띄운채 건일에게 못마땅한 투로 말했다.
《건일동문 왜 합성직장과 해보지 못해 그래?》
《그치들 으쓱해하는걸 눈뜨고 못 보겠단 말이야. 합성이면 합성이지 꼭 큰 대자를 앞에 붙이지를 않나, 돌아가지도 않는 직장을 놓고 제법 대합성이래.》
건일은 방금전에 배구경기에서 합성직장에 진 분풀이를 하는것 같았다. 그는 배구선수로 경기에 출전했던것이였다.
《그건 큰길에서 뺨맞고 골목에서 큰소리치는 격이야. 동무가 허튼 소릴 하니 송희동무가 울상이 되지 않았나.》
성철이 하는 말에 송희는 당황해하면서 애써 웃어보이였다.
《아, 아니예요.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송희는 합성직장장 김명수의 딸이였다. 사실 그는 남들이 합성직장에 대해 욕을 하면 마치 직장장인 자기 아버지를 욕하는것만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얌전하고 내성적인 성미인 그는 조만해서는 자기 감정을 드러내놓지 않는다.
《그렇지 않구. 무엇보다도 우리 송희동무는 2카바이드직장 수리작업반 성원이 아니요.》 준선이가 송희에게 눈을 끔벅이면서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준선은 승혁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지금이야 뭐 합성직장이라고 대단할게 없지요.》
승혁은 준선이가 합성직장장직에서 물러난 자기를 위안하느라 합성직장을 눈아래로 보는 소리를 막 하고있다고 느끼였다.
《그거야 그렇지.》 하고 승혁은 준선의 말을 받았다. 《합성직장이든 2카바이드직장이든 다 멎어서서 동원을 다니는 처지인데…》
다른 불고기판에서는 심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비웃듯 록음기를 켜놓고 노래를 불러대고 춤들을 춘다.
《좋구나, 좋아.》 누군가 내지르는 소리가 자극적이다.
승혁은 짐짓 쾌활하게 웃으며 큰소리로 말하였다.
《이젠 화제를 바꾸기요. 수리작업반의 휘황한 전망에 대한 소리를 하기요.》
《휘황한 전망이라니, 그건 무슨 소리예요?》 김성철이 퉁명스럽게 말한다.
《아니, 왜? 이제 염소를 많이 길러 불구면 고기문제가 완전히 풀리는게 아닌가? 그리고 뭐 작업반휴계실우에 온실도 건설하겠다고 한다면서? 작업반앞의 공지에서 짓는 콩농사도 좋은 수확을 거둘것이고…》 승혁의 말을 들으면서 모두 하하 웃어댔다.
자기 작업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그런 칭찬의 말을 듣는것이 모두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는 모양이였다. 그런데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사람만이 웃지 않고 시무룩해있었다. 얼굴이 길죽하고 입이 크며 피부가 거칠어보이는 그는 리정삼이라고 주승혁과 한인민반에 사는, 최근 10년새에 무척 정을 느끼게 된 청년이였다. 정삼이를 볼 때면 그가 격하여 내지르던 목소리가 자주 승혁의 머리속에 떠오르군 한다.
《난 갈수 없어요. 비날론공장을 버리고갈수 없단 말이예요.》
한 7~8년전에 극도로 흥분한 청년이 그렇게 열띤 어조로 부르짖었었다. 승혁은 지금 정삼의 기분이 왜 우울한지 짐작할수 있었다. 정삼은 원래 알럼덤직장 수리공이였다. 그런데 기업소에서 일부 영 전망이 없는 직장들을 해산하는 조치를 취하였는데 그에 따라 알럼덤직장은 없어지고 그 대다수 성원들은 2카바이드직장에 소속되게 되였다. 알럼덤직장 수리작업반에서는 정삼이도 포함하여 두명이 준선의 작업반으로 오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몇달이 흘러갔지만 정삼은 아직도 안착되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얼마간 불고기를 축낸 사람들이 또 해수욕을 한다고 달려간다. 승혁은 정삼을 곁으로 불렀다.
《왜 앓는 사람처럼 그 모양인가?》 승혁은 핀잔조로 말하였다.
정삼은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암만해도 이 작업반에 마음이 붙질 않는군요. 아저씨, 날 다른 직장으로 보내달라요.》
정삼은 승혁을 삼촌처럼 따르고있었다.
《내가 무슨 로동과장이냐?》 하고 승혁은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아저씨야 오래동안 합성직장장을 했으니 공장에 안면이 넓지 않아요.》
《그만해라, 내가 무슨 체면에… 그리고 여기 준선이네 작업반이 괜찮아. 어디 한번 지내보라니까.》
《글쎄 난 모르겠어요. 염화비닐직장에 가면 좋겠는데…》
《염화비닐생산공정이야 이젠 제대로 돌아가니 좋기야 하겠지. 하지만 공장종업원들이 다 가성소다나 염화비닐직장으로 갈수야 없지 않니.》
정삼은 말없이 불고기점을 집어먹다가 조용히 물었다.
《언제부터 한번 묻고싶었댔는데… 아저씨가 정말 비사회주의를 했어요?》
승혁은 정삼이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잘 알고있었다.
지금 공장안에서는 그가 합성직장장을 하면서 직장창고에 보관해두었던 전동기들을 기업소 책임일군들이나 설비과와의 토론이 없이 후방과나 타기관에 빌려주고 그 대가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고있었다. 그때문에 주승혁은 보안서의 취급을 받게 되였고 결국은 직장장직에서 해임되였다는것이다.
주승혁은 정삼에게 이러저러하게 긴말을 하고싶지 않았다.
(제 맘대로 말을 하라지. 사람이 자기만 청백하면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그래, 난 과오를 범한 사람이다.》 하고 승혁은 나직이 말하였다.
정삼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못미더워하는 눈으로 승혁을 쳐다보았다.
이때 김준선이가 수자식사진기를 들고왔다.
《자, 사진을 찍자요.》
《먼저 우리 두사람을 찍소.》 승혁은 정삼이의 어깨를 껴안았다.
《웃으면서 찍어야지. 두명이 활짝 웃는 순간에 샤타를 눌러야 해.》
승혁은 짐짓 환하게 웃어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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