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4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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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 회)
제 4 장
6
(1)
주승혁은 합성직장 초산비닐생산공정 설비, 장치물들의 보수에 대한 기술지도를 하는 속에서도 잔사처리공정건물에 신경이 씌여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아무리 사방이 벽으로 둘러막힌 합성직장 생산건물속에 있어도 그의 정신과 눈은 길 건너편에 위치한 잔사처리공정건물을 보았다. 아직 페허처럼 골조만 남은 그 건물의 앞에는 혜경이가 그린 건축형성안이 사람들의 호평을 받으며 붙어있다. 승혁이도 그 건축형성안을 보고 감탄하였다. 정말 품을 들여 사색하여 잘 그리였다.
혜경은 역시 경탄할만 한 처녀였다. 그런 혜경이의 기를 꺾어놓거나 내닫는 열정을 잠시나마 좌절시킨다는것은 차마 못할짓이라고 승혁은 거듭거듭 자기자신에게 뇌이고있었다.
언제인가부터 혜경에게 깊은 정을 느끼면서 그를 귀중히 아껴주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부르짖은적이 몇번이였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자기가 그 애를 후려갈기는 몽둥이를 준비하고있다고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더우기 아들이 혜경이와 서로 사랑하고있다고 한 말은 그를 더욱더 괴롭게 하였다. 사실 혜경이가 며느리로 집에 들어온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비날론공장의 미래라고 부르고싶은 혜경이가 자기 집 사람으로 된다면 참으로 자랑스러울것이다.
그런데 그 혜경이가 시아버지가 될 사람이 자기의 발등을 아프게 밟았다는것을 안다면 어찌 마음이 편할수 있겠는가. 그 상태에서 선철이나 혜경의 사랑이 순조롭게 꽃펴날수 있을것인가.
명수와의 불가피한 대결도, 춘섭의 지긋지긋한 우정도 다 견디여낼수가 있다. 그러나 혜경이만은… 아, 혜경이, 너만은 나를 견딜수 없게 하는구나.
승혁은 고통을 못이겨 소리라도 지르고싶었다.
내 어찌 차마 너에게 피해를 줄수가 있단 말인가.
지금 보수분사업소 로동자들은 블로크로 잔사처리공정건물의 허물어진 벽체를 쌓고있었다.
(미련을 버리라. 너는 지금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있다.) 하고 승혁은 자기자신에게 말하였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친다. 돌아보니 박춘섭이 웃고있었다.
《한대 피우자구.》 춘섭이가 그를 조용한 곳으로 이끌었다.
《어떻게 왔소?》 승혁은 우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가 괴로워할것 같아 찾아왔지.》
《또 날 설복하려고 왔소?》
《아직도 잔사처리공정을 옮길 생각을 버리지 못했나?》
《그래 날 아예 짓눌러버리자고 왔소?》
《이젠 매사에 저만 제일이라고 하는 그 독선적인 관념을 버릴 때가 된것 같은데…》
《당신 말대로 하면 그건 소총명이라고도 할수 있는거지.》
《비양은 그만하라구. 군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줄도 알아야 해. 중뿔나게 행동해서는 안돼.》
《그래 누가 군중을 대표하고있소?》 승혁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이였다. 《합성직장장이 군중을 대표하고있소? 또 지배인이면 우리 공장종업원들을 대표하고있다는거요?》
《원, 사람두. 그렇게 화를 낼거야 있나. 난 자넬 생각해서 조언을 주려 했는데…》
춘섭의 《다심한 우정》은 여전히 승혁을 옴짝 못하게 포옹해버리였다. 승혁은 그 숨막히는 포옹에서 벗어나려고 안깐힘을 썼다.
《그런 조언은 필요없소. 나도 철부지어린애는 아니니까.》
《됐소, 됐소.》 춘섭은 너그럽게 웃었다. 《난 오늘 촉매생산에 필요한 담체를 구입하기 위해 출장을 가야 해.》
승혁은 불시에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초산비닐을 생산하자면 촉매가 있어야 하고 촉매생산에는 담체가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촉매생산에까지 관심을 돌리니 중앙지도소조일군들의 선견지명은 놀랄만 하지 않는가.
《중앙지도소조에서 많은걸 맡아안고 뛴다는 말을 듣고있소. 헌데 촉매생산용담체에까지 신경을 쓸줄은 몰랐구만. 정말 고마운 일이요.
소조책임자동지랑 보통 열정가가 아니거던. 서해안에 가서 책임자동지의 일본새에서 배운바가 많소. 소조의 주명선동무도 보통이 아니더구만. 주명선동무는 아직도 서해안에서 사업하겠지?》
《그 동무야 설비전문가가 아니요. 다 나보다 난 사람들이지. 난 그저 뒤전에서 어물거리는 존재요. 우리 소조의 최동무는 성진내화물공장에 나가 로동자들을 발동시키고있소. 1카바이드직장개건에 필요한 마그크롬벽돌을 비롯한 내화물을 해결하자고 솔선 나섰단 말이요.》
《정말 중앙의 간부들이 다르거던. 헌데… 촉매용담체를 해결할 가능성은 있는거요? 그걸 생산하는 연구소에서 여러가지로 걸린게 많다고 하던데…》 승혁은 초산비닐촉매생산도 남의 일이라고 할수 없기에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소조책임자동지가 추진시켜보라고 하기에 힘들게 걸음을 하고있는데… 사실 전망은 시원치 않소.》
《그럼 어쩐다는거요?》
《해보느라면 될수도 있고 또 안되면 다른 방도도 나지는거요. 사람은 폭넓게 사고할줄 알아야 해. 한가지에만 매달려 그게 안되면 무슨 큰일이나 생길것처럼 집착하면 안된단 말이요.》
승혁은 갑자기 입이 쓰거워졌다. 그는 춘섭의 어정쩡한 태도가 못마땅하였다. 결국 춘섭은 그 무엇을 한다고 뛰고는 있지만 적극성은 부족한것이였다. 매사에 다 이런 식이면 어찌한단 말인가. 혹시 잔사처리공정에 대한 나의 제기를 막아보자고 변죽을 쳐서 복판을 울린다는 식으로 우정 이런 말을 하는것일가?
승혁의 복잡한 심중은 알바가 아니라는듯, 그가 자기의 뜻대로 움직이리라는것을 다 내다보고있다는듯 춘섭은 태연하면서 정이 흐르는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짓고서 말하는것이였다.
《그럼 수고하오. 말썽이 없게 하라구.》
춘섭의 마지막말은 다시한번 승혁의 감정을 들쑤셔놓았다.
(말썽이 없게 하라는건 내가 말썽을 일으킨다는것인데…)
승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였다. 그는 초산비닐생산공정건물을 나서서 걸어갔다. 저앞에 알데히드생산공정건물이 보인다. 알데히드생산공정이 돌아가는 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온다. 합성직장에서는 알데히드와 초산생산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초산비닐생산공정개건공사를 밀고나가고있었다.
이윽고 승혁의 발걸음은 수령님께서 비날론공장의 준공테프를 끊으신 표식비앞에서 멈추어섰다. 지난해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알데히드생산공정을 돌아보신 후 이 표식비앞에 서시여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고 한다. 아마도 장군님께서는 비날론공업을 창설하시고 그를 강화발전시키기 위해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로고에 대해 생각하시였을것이며 수령님의 념원이 깃든 비날론공장을 온 세상이 보란듯이 다시 일떠세우실 결심을 더욱 굳게 하시였을것이다.
승혁이가 머리를 수굿하고 서있는데 누군가 곁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있소?》
흠칫 놀라 쳐다보니 신명욱책임비서였다.
《예, 그저 좀 고민거리가 생겨서요.》
《무슨 고민거리요? 내가 좀 알면 안되겠소?》
《뭐, 그저…》 승혁은 머뭇거리였다.
《뭐, 그저라니? 그래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요?》 명욱은 승혁의 신상에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라도 생긴듯싶어 지꿎게 캐고든다.
《그런건 아니고… 내가 좀 별난 생각을 했단 말입니다.》 승혁은 짓적게 웃으면서 입을 다시였다.
《그게 뭡니까?》 명욱은 바짝 호기심이 동하였다.
승혁은 마지못해 잔사처리공정때문에 벌어진 일을 추려서 말하였다. 강혜경이나 박춘섭의 말은 올리지 않고 단지 김명수나 지배인의 반대에 부딪쳤다는 정도로 이야기하고 덧붙이였다.
《아마 내가 정말 중뿔난 생각을 한것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자꾸 신경이 씌여진단 말입니다.》
명욱은 심각해진 얼굴로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만.》
명욱은 생각에 잠겨 잔사처리공정건물쪽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래 어떻게 할 결심이요?》
《포기하겠습니다. 뭐 괜히 복잡하게 굴게 없지요.》 하고 말하면서 승혁은 땅이 꺼질듯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제 입으로 포기한다는 말을 하려니 가슴이 미여지는듯 아팠고 한바탕 몸부림이 일것만 같았다.
(그래 포기한다는 말을 하니 이젠 시원한가?) 하고 그는 자기자신에게 물었다. (그게 네 진심이란 말이냐? 똑똑히 말해라. 너절한 놈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아.)
그는 온갖 악담을 다 자기에게 퍼부었다. 그러고서도 어찌나 자기자신이 미웠던지 땅바닥에 마구 머리를 짓쫏고싶었다.
《그렇소?》 명욱은 고통을 씹어삼키는듯 앙다문 입술을 떨고있는 승혁을 이윽히 쳐다보다가 동을 이었다.
《물론 난 기술적인 문제를 놓고 그 어떤 결론을 내릴 권한이 없소. 아무리 책임비서래도 그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거요. 그러나 한가지만은 똑똑히 알고있소. 그건 비날론생산공정을 위대한 장군님께서 바라시는대로 최첨단으로 일떠세워야 한다는 그것이요.》
승혁의 심장이 쿵쿵 흉벽을 들이쳤다. 책임비서는 신통히도 승혁이가 생각하고있던 그런 말을 하고있는것이였다. 승혁은 저도 모르게 고마운 심정이 되여 책임비서를 쳐다보았다.
《알데히드생산공정콤퓨터화문제로 론난이 벌어졌을 때 주승혁동무도 그런 주장을 했댔지요?》 하고 명욱책임비서가 지그시 승혁을 여겨보며 말하였다. 《내 그때 승혁동무에게서 큰 힘을 받았댔소.》
《뭘요. 난 그저 콤퓨터화를 해야 한다고 보았길래…》
《지금도 원칙은 그렇게 세워야 하는게 아닙니까.
난 올해 2월 우리 기업소를 찾아주신 위대한 장군님을 생각하면 정말 가책되는것이 많소. 난 지금껏 제딴엔 비날론을 위해 마음을 썼다고는 하지만 장군님의 그 사랑의 세계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단 말이요. 1년안에 비날론생산공정을 전부 살린다, 누가 이런걸 생각이나 했겠소. 오직 우리 인민들에게 한시바삐 비날론의 혜택을 다시 베풀고싶어하시는 우리 장군님만이 내리실수 있는 용단이 아니겠소.》
명욱책임비서의 말은 절절하게 승혁의 가슴속에 침투되여 들어왔다.
《승혁동무, 우리 언제나 장군님만을 생각하기요. 그 무엇을 해도 장군님을 닮으려고 노력하잔 말이요. 내가 승혁동무에게 할 말은 이것뿐이요.》
승혁은 눈물이 글썽하여 명욱책임비서를 쳐다보았다.
아, 얼마나 훌륭한 일군인가. 제때에 내 종아리를 후려치지 않는가.
《고맙습니다. 책임비서동지.》
책임비서는 힘을 주듯 가볍게 승혁의 팔굽을 쥐였다놓고나서 그 자리를 떴다.
승혁은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모질게 자기자신을 꾸짖었다.
내가 과연 비날론을 사랑한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맞긴 맞는가. 아니다, 나의 비날론사랑은 얄팍하고 열이 부족한것이였다. 그래서 잔사처리공정문제에서도 동요한것이 아니였던가. 장군님만을 생각하면서 내달렸어야 하였다.
아, 누가 경애하는 장군님처럼 비날론을 사랑할수 있단 말인가.
그이가 아니시였다면 비날론을 뽑아내는 일은 아직도 몇년후의 일로 남아있을것이다. 그이의 명령을 받아안기 전 나자신의 생각이나 타산이 바로 그러하지 않았던가. 장군님처럼 모든것을 비날론을 위해 복종시키고 비날론을 위해 다 바쳐야 한다.
봄바람이 불어오면서 그의 옷자락을 날리였다. 바람을 맞은 두그루의 파수병수삼나무가 설레이였다. 수삼나무들의 설레임소리는 승혁에게 그 어떤 숭고한 의무감을 깨우쳐주는듯싶었다.
승혁은 주먹을 꽉 틀어쥐였다. 그는 연구소로 가서 《잔사처리공정을 합성직장건물안으로 옮길데 대한 의견서》를 구체적으로 쓰기 시작하였다.
글을 쓰면서 혜경의 앞날이 보다 창창하기를 바랐고 아들과 혜경의 사랑이 시련을 이겨내면서 더욱 활짝 꽃피기를 희망하였으며 명수에게는 리해를 빌었고 춘섭의 우정에 반발하였다. 그리고 지배인에 대해서는 믿었다. 지배인이 지금 파악이 부족해서 뜨아해하지만 반드시 자기의 안을 지지해나서리라고 굳게 믿었다.
승혁은 잔사처리공정이 생겨나게 된 과정을 쓰고 그 공정을 합성직장건물안으로 옮김으로써 얻게 되는 경제적유익성을 수자적으로 정확히 밝히였으며 그 공정을 직장건물안에 어떻게 앉힐것인가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다. 그리고 냄새가 난다고 하는 의견이 제기되는것과 관련한 의견도 첨부하였는데 거기에는 냄새가 나게 된 원인과 그 극복대책이 밝혀져있었다. 그는 그 문건을 기사장에게 가져다주면서 말하였다.
《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어디 판단해주시오.》
한명산기사장은 심중한 얼굴로 승혁이가 제출한 문건을 들여다보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일리가 있습니다. 내 지배인동지와 토론하겠습니다.》
《빨리 대책을 취해야 합니다.》 승혁은 오금을 박듯이 말하였다.
정준학은 자기 방에서 한명산이 가져다준 《잔사처리공정을 합성직장건물안으로 옮길데 대한 의견서》를 몇번이고 다시 읽었다. 큰 기업소의 지배인, 생산과 방대한 개건공사를 안고 눈코뜰새 없는 지배인인 그로서는 놓치는 점도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하지만 기사장이 시급히 빨리 보고 토론해보자고 하는 이 문건은 주의해서 읽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것은 자자구구 주승혁의 심혈이 깃들어있는 문건, 현대적인 비날론공장을 지향하는 한 인간의 순결한 마음이 슴배여있는 의견서였다. 준학은 자기가 며칠전 승혁이가 제기한 그 의견을 시끄럽게 여기며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던것을 뼈아프게 자책하였다. 승혁이가 쓴 의견서는 그대로 자신에 대한 비판인것처럼 생각되였다.
정준학은 송수화기를 들고 한명산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정준학과 한명산은 잔사처리공정문제를 두고 토론하였다.
《주승혁동무의 의견이 정당하오. 잔사처리공정을 현재 비여있는 합성직장건물의 공간에 설치하면 경제적으로도 그래, 합성직장운영에서도 유익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요.》
정준학의 말에 한명산이 적극적으로 찬동을 표시하였다.
《내 생각도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잔사처리공정건물을 아예 없애버리면 그 숱한 배관을 설치하지 않게 되겠으니 보기에도 좋고 그 건물자리를 곁의 중합직장에서 유리하게 리용할수 있을것입니다.》
《내 합성직장 사람들이 잔사처리공정에서 냄새가 나서 직장건물안으로 끌어들이면 안된다고 하기에 원래대로 하기로 했댔는데 내 생각이 짧았댔소. 승혁동무가 얼마나 깊이 연구하여 냄새를 제거하는 방도를 찾아냈는가 보오. 참 머리를 숙이게 되거던. 승혁동무에게 내가 미안하게 됐소.》
준학은 아량이 큰 일군이였다. 그는 자기의 실책을 시인할줄도 알았고 그만큼 일처리도 신속하게 하는 사람이였다.
《잔사처리공정건물보수공사는 중지해야겠소. 아니, 당장 그 건물을 까버리시오. 물론 볼로크를 비롯한 자재들을 다 회수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내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명산도 만족하여 웃었다.
《아니, 내 직접 개건려단 참모장에게 전화를 하지.》
준학은 전화로 개건지휘부 참모장 류강필을 찾았다.
다음날부터 로동자들이 잔사처리공정건물안에 남아있던 설비, 장치물들을 해체하여 합성직장건물안으로 옮기는 작업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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