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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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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67회 작성일 23-05-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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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 1 장

3

(1)


황혼녘이 되여 마전유원지에서 떠나오는 뻐스안에는 여전히 즐거움이 차넘친다. 해수욕장을 충만시켰던 웃음과 랑만과 노래를 그대로 싣고 뻐스는 집으로, 공장으로 달린다.

주승혁은 겨끔내기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시뭇이 웃었다. 생활에 대한 사랑과 미래에 대한 신념이 없다면 어찌 저렇게 지칠줄 모르고 웃으며 노래를 부를수 있단 말인가.

바다물에 씻기고 부드럽게 안마를 받고난 육체는 한결 거뿐해진듯싶다. 승혁은 달콤한 피로를 느끼였다.

그런데 즐거운 해수욕도 마음의 울적함은 가셔버리지 못하여 승혁의 거밋하게 탄 얼굴에는 한가닥 그늘이 비껴있었다. 그 울적함을 풀려면 가까운 친구를 만나 말 속을 터놓는것이 좋다는것을 승혁은 잘 알고있다. 하여 승혁은 이윽하여 비날론지구에 도착한 뻐스에서 내리는 길로 집이 아니라 친구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언제 해수욕을 했더냐싶게 땀이 돋는다.

(젠장, 선기가 나려면 아직도 열흘은 더 있어야겠구나.)

승혁은 손수건으로 목덜미의 땀을 닦았다. 그는 매대에 들려 얼마간의 식료품을 사들고 산업병원으로 들어갔다. 2.8비날론련합기업소 자동화과 과장인 강영식이 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있었다.

주승혁과 동갑나이로 정열적인 일군인 강영식은 얼마전에 염화비닐직장에 갔다가 갑자기 증기관이 터지는 바람에 화상을 입었다.

승혁은 외과의 한 입원실로 다가가면서 영식의 반가와하는 얼굴을 그려보았고 그에게 던질 롱말을 생각하고는 슬며시 미소를 띄웠다.

《아직도 침대에서 딩굴어대는걸 보면 당신 팔자가 꽤 늘어졌군그래.》 하고 시까슬러대면 영식은 《이 사람이 불행한 사람을 놀려대는군. 거 고약스럽기도 하다.》 하고 짐짓 눈을 흘길것이다.

승혁이가 입원실에 들어서니 영식은 침대우에 앉아 빙그레 웃는 얼굴로 젊은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한 처녀가 차대에서 사이다병을 꺼내들고있었다. 젊은 의사와 처녀가 승혁을 보고 인사를 하는 바람에 승혁은 영식을 놀려댈 말을 미처 꺼내지 못하였다.

영식이가 먼저 승혁에게 말을 던지였다.

《주선생, 해수욕장에 가서 실컷 헤염을 쳤소?》

《실컷 놀았소. 당신 생각이 나더구만.》 하고 승혁은 비죽이 웃어보였다. 《해수욕장에 함께 갔더라면 내 바다물을 기껏 먹여줄 작정이였는데…》

젊은 의사가 승혁에게 물었다.

《아버지, 잘 놀았나요?》

젊은 의사는 승혁의 아들 주선철이였는데 영식을 담당하여 치료하고있었다.

승혁은 건성 대답하고 처녀에게 눈길을 던지였다. 아버지인 영식을 닮아 얼굴이 자그마하고 늘씬한 체격의 처녀는 다시한번 다소곳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고운 처녀가 누군가 했더니 혜경이로구만. 오래간만이다.》

승혁은 처녀에게 단물병이며 도마도들이 들어있는 비닐구럭을 넘겨주었다.

언젠가 강영식의 집에 가서 보았을 때는 처녀가 그저 쓸쓸해보였는데 오늘은 별로 곱게 보이였다. 키도 맞춤하며 몸이 건강해보이며 얼굴이나 행동거지가 활달해보인다.

혜경이가 승혁에게 사이다 한고뿌를 따라 권하였다.

《더운데 한고뿌 드십시오.》

《고맙다.》

승혁은 시원하게 한고뿌 쭉 마시였다.

《목이 좀 말랐댔는데 잘 마셨다.》

혜경은 과일칼을 들고 날랜 솜씨로 사과껍질을 벗겨 승혁에게 내밀었다.

《어서 사과를 드십시오.》

《됐다.》 승혁은 거절의 뜻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혜경은 사과를 두손으로 받쳐들고 더 바투 내밀었다.

《그러지 말고 어서 드십시오.》

혜경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자기의 성의를 무조건 받아들일것을 요구하는것이였다. 승혁은 어쩐지 이 처녀가 마음이 고우면서도 강한 성격의 소유자일것이라고 생각되면서 몹시도 정이 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허허… 이건 막 강요하는 판이군. 어쨌든 고맙다. 잘 먹겠다.》

승혁은 혜경에게서 사과를 받아들고 먹기 시작했다.

《미리 그랬어야지.》 영식이 껄껄 웃어댔다. 《우리 애가 요구하면 군말없이 따라야 하오.》

느긋하게 웃고있던 선철이가 말하였다.

《아버지, 난 가보겠어요.》

뒤따라 혜경이도 가겠다고 인사를 한다.

《아니, 좀더 있다가 가지.》

《둬두오.》 강영식이 말하였다. 《온지 오래 됐어.》

이윽고 주승혁은 침대곁에 의자를 놓고앉아 강영식의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어떤가? 내 보기엔 많이 좋아진것 같은데…》

《좋아졌겠지. 치료를 열성껏 받았으니까.》

영식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카바이드로가 다 돌아가는걸 보고서야 죽든지, 년로보장을 받든지 해야지. 그렇지 않소?》

영식의 말에 승혁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기업소에서는 가성소다공정과 염화비닐생산공정을 살리면서 1카바이드직장의 전기로를 한기 살리였다. 두개의 카바이드직장에 있는 전기로들이 언제 가면 다 살아나겠는지 아직은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꼭 살려내야 한다는건 분명하다.

《그래.》 하고 승혁은 말하였다. 《지금은 어렵지만 힘껏 노력해야지. 나도 비날론이 다시 쏟아지는걸 볼 때까지 강심을 먹고 살자는거요.》

《우리 수령님께서 그처럼 심혈을 기울이신 비날론공업인데… 어느때든 돌아가겠지. 우리 공장 전기로 굴뚝들에서 다 연기가 나는걸 보기 전엔…》

영식은 여윈 체격이나 보기 딱하지는 않았고 얼굴에 잔주름살이 가득하고 안경을 걸쳤으나 곱살하고 영민한 빛이 두드러져보이는 사람이다. 그는 대체로 웃는 인상이였고 지금도 미소를 짓고 말하고있었으나 그 미소속에는 비통함이 희미하게 어려있었다. 그의 언동에는 흘러가는 세월을 멈춰세우지 못하는 한탄이 깃들어있었다.

주승혁의 머리속에는 문득 지난날의 일이 떠올랐다.

…승혁은 함흥시에서 태여났으나 유년시절은 함주에 있는 할아버지의 집에서 보냈다. 각종 향기롭고 쌉쌀한 약초냄새가 배인 집이였다. 집처마에도 약초들이 매달려있었고 창고에도 온통 약초단들이였다. 사이방 한쪽에는 약궤가 놓여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제조한 고려약들이 자그마한 서랍들속에 들어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체로 배워 마을에서 고려의사노릇을 하였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가 심하게 장난을 쳐 애를 먹일 때면 굵직한 침대를 꺼내들고 찌르겠다고 위협하였다.

《이녀석, 당장 침을 놓아주고말리라.》

소년은 할아버지가 뽑아든 침대가 금시 몸을 찌르는것만 같아 발버둥치며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안 그럴게. 다신 안 그럴게.》

그러면 할아버지는 느슨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자를 그러안는다.

《그래그래. 우리 승혁이가 말을 잘 들으면 할아버지가 목마를 태워주지.》

할아버지는 승혁을 목마태우고 마당을 덩실덩실 돌았고 할머니는 승혁의 손에 누런 색갈의 암닭이 금방 낳은 따끈따끈한 닭알을 쥐여주었다. 그리고 적기의 폭격이 있을 때면 누구보다 먼저 어린 승혁이를 찾아업고 큰 강의 동뚝밑에 자리잡은 방공호로 뛰여가군 했다.

전시의 어려움속에서도 승혁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서 애지중지 자랐으나 한가지 불만스러운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른 애들처럼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지 못하는것이였다. 아버지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고 어머니는 가끔 찾아와서 승혁을 껴안고 하루밤을 자고는 떠나가군 하였다.

승혁은 아버지의 얼굴을 사진을 통해서만 알고있었다. 방의 벽에 안경을 쓰고 말을 탄 사람의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그가 아버지라고 말해주었다.

아버지가 어디 갔느냐고 물으면 할아버지는 먼데 갔다고 대답하였다. 왜 오지 않느냐고 물으면 너무 멀어서 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 대한 말을 할 때면 왜서인지 할머니의 두눈에는 눈물이 고이군 하였다.

후날에야 승혁은 아버지가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 희생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말을 타고 찍은 사진은 아버지가 함흥시 철도보안서에 복무할 때 찍은것이였다. 어머니는 미국놈들이 공화국북반부지역에서 쫓겨간 후에 화학공장에 들어가 전시생산보장을 위해 헌신하고있었다.

승혁은 그때 당시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곁에 없는 어머니가 그리워 울군 하였다. 어쩌다 어머니가 오면 《엄마는 왜 나와 함께 살지 않나요?》하고 물었고 어머니는 이제 좀 크면 같이 살자고 대답하군 하였다.

승혁은 그시그시 어머니의 달콤한 말에 속아넘어가군 하였다. 승혁은 한살이 나던 해 아버지가 피살된 후로 어머니의 품을 떠나 줄곧 할아버지네와 함께 살았던것이다. 어머니는 승혁이보다 10살이나 우인 형과 살았다. 승혁은 엄마가 자기보다 형을 더 고와한다고 여기고 곧잘 투정을 부렸다.

어느날 형이 그를 찾아 할아버지의 집으로 왔다. 형의 입에서 이제는 엄마랑 다같이 모여살자는 말이 나왔을 때 승혁은 너무 기뻐 깡충깡충 뛰였다.

승혁은 형의 손을 잡고 정든 할아버지의 집을 떠났다.

《자주 놀러들 오너라.》 하고 할아버지는 대범하게 말하였으나 할머니의 두볼로는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어머니에게로 가는 길은 멀기도 하였다. 달구지를 얻어타고 가기도 했고 형의 등에 업히기도 했다. 키높은 굴뚝들이 서있는 공장이 저앞에 보였을 때 형은 말하였다.

《이젠 다 왔다. 저기 보이는 공장이 바로 엄마가 일하는 화학공장이란다. 연기가 나오는 굴뚝이 보이지? 저건 엄마가 일하는 카바이드직장의 굴뚝들이란다.》

그 공장이 비날론공장의 전신인 화학공장이였다. 당시 카바이드를 비롯해서 몇가지 화학제품들을 생산하고있었다.

높이 솟은 굴뚝 4개중에서 두개의 굴뚝들에서만 연기가 나오고있었다. 승혁은 호기심을 금치 못해 물었다.

《형, 저 두개의 굴뚝들에선 왜 연기가 나오지 않나?》

《미국놈들이 공장을 파괴한걸 다 복구하지 못했기때문이야. 이제 저 4개의 굴뚝들에서 연기가 다 나오게 되면 미국놈들은 남조선에서 쫓겨나고 우리 나라는 통일되게 된다. 알겠지?》

《응, 그러니 저건 정말 멋진 굴뚝이구나.》

철없는 승혁의 눈에 굴뚝들이 자못 신비스럽게 안겨왔다.

《엄마가 일하는 공장굴뚝… 나 저기에 올라가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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