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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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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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혁은 밤새 자반뒤집기를 하며 동요를 이겨냈다. 지난날의 벅찬 체험과 쓰라린 고뇌는 합성직장의 개건을 강건너 불보듯 할수 없게 하는것이였다. 그처럼 바라던 그 시각이 왔는데 그 누가 비난을 한다고해서 한발 뒤로 물러설수 있단 말인가. 절대로 그럴수 없었다.
주승혁은 마음을 굳게 먹고 기술자료조사를 끝내였다.
그는 공장의 카바이드생산능력에 맞게 알데히드생성반응기(류산수은촉매존재하에서 아세틸렌가스와 물이 반응하여 아세트알데히드가 생성되는 합성탑)구조를 개조하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알데히드생산공정현장으로 나갔다.
알데히드생산공정건물안은 개건보수로 부산스러웠다. 숱한 기업소수리공들이 하나하나의 설비들에 달라붙어 분해하였고 한편으로 보수를 진행하고있었다. 문종국을 비롯한 자동화과의 콤퓨터기술자들은 그들대로 수첩들을 들고다니며 로동자들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현장료해를 하고있었다. 한편 건물보수부문에서는 그동안 낡아진 건물들을 까낼건 까내고 벽돌축조를 다시 하기도 했으며 미장할데는 다시 미장을 하면서 저들대로의 공사를 추진시킨다.
현장에서는 합성직장장 김명수의 청높은 목소리가 찌렁찌렁 울리였다. 기업소의 여러 부문과 직장에서 동원된 사람들이 붐비는 합성직장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김명수라고 할수 있었다. 그는 여기저기에서 제기하는 작업조건들을 보장해주어야 했고 또 개건현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름의 의견을 내놓고 관철시키려고 애를 썼다.
《수고스러운대로 이건 다시 까고 미장을 해주어야겠소.》 그는 건물보수를 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한곳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장대한 체격에 이목구비도 큼직큼직한 김명수는 목소리도 틀스러웠다.
키가 작달막한 작업대상책임자가 명수에게 대들면서 신경질적으로 말하였다.
《우린 참모장동지에게서 작업지시를 받았소. 우린 직장장동무의 지시를 받는게 아니란 말이요.》
《우선 직장을 운영하는 우리 맘에 들어야 한단 말이요. 개건참모장동지에겐 내가 말을 하겠소.》
김명수는 손을 홱 내젓고 돌아서다가 건물안으로 들어서는 주승혁을 보았다. 그는 승혁에게 눈인사를 하였다. 승혁은 한동안 명수를 보다가 《나 좀 보기요.》 하고 조용한 곳으로 불러냈다.
명수의 태연한 얼굴을 보노라니 당장에 《도대체 당신들은 날 어떻게 보는거요?》 하고 들이대고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승혁은 자신을 억제하면서 심호흡을 하였다.
그래서는 안된다. 너는 이젠 지난날처럼 직장장이 아니고 합성직장을 도와주러 온 개별적인 연구사일뿐이다. 이전날처럼 성격을 살려서는 안된다. 김명수는 직장장이니 어디까지나 그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승혁은 명수의 의아스러운 눈길을 외면하면서 나직하게 물었다.
《직장장동무, 내가 합성에 온것이 불편스럽소?》
명수는 놀라서 눈이 둥그래졌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를 도와주러 왔는데 달리 생각할게 있겠나요?》
명수의 온화한 말을 들으니 좀 어리둥절해졌다. 혹시 선철이가 잘못들은것이 아닐가? 그래, 좋게 생각하자. 보다 중요한 사업을 먼저 생각하자. 《그럼 좋소. 직장장동무가 불편하든말든 어쨌든 알데히드공정과 빙초산공정을 돌려야 할게 아니겠소. 알데히드와 빙초산이 나오게 되면 내가 구태여 여기 붙어있을 리유가 뭐 있겠소. 실은 나자신이 여기서 돌아가는것이 불편스럽소.》
《직장장동지, 무슨 오해가 있는가봅니다. 달리 생각지 맙시다.》 명수는 당황하여 얼굴이 벌겋게 되였다. 그는 승혁이가 직장에서 도는 뒤소리에 대해 들었다는것을 직감했던것이다.
《이제 다시는 나에게 직장장이란 호칭을 쓰지 말기요.》 승혁은 명수를 보지 않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하였다. 《단둘이 있을 때도 그렇소. 동무가 이전에 내밑에서 일했다는 타성으로부터 그렇게 부를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난 거북하기 짝이 없구만. 그저 날 주아바이라고 부르기요.》
《아바이라구요? 아직 60나이도 되지 않았는데 무슨 아바이라고… 어색합니다.》
《왜? 젊은 사람들은 다 날 아바이라고 부르는데 직장장동무라고 어색할게 있겠소.》 승혁은 비주름히 웃음을 띄웠다. 《이제 2년만 있으면 60이니 그땐 년로보장으로 넘어가게 될거요. 난 벌써 외손자를 본 할아버지란 말이요.》
《그럼 주할아버지라고 부르지요, 어떻습니까?》 명수는 승혁의 기분을 풀어주려는듯 롱조로 말하였다.
《좋도록 하지. 할아버지야 할아버지니까, 허허…》
주승혁은 2층으로 올라갔다. 몸집은 체소하지만 아직도 승혁의 육체에서는 강단이 엿보였고 그 어떤 단호한 의지가 온몸을 뻗쳐주는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의 뒤모습을 보면서 김명수는 한가닥 의혹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명수가 아는 승혁은 바늘 들어갈 틈도 없으리만큼 원칙이 강하고 사심이 없는 사람이였다. 그런데 그가 직장의 전동기들을 타기관에 빌려주고 대가를 받아 처리했다는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명수에게는 하나의 일이 떠올랐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여 기업소 각 직장들의 생산공정들이 하나, 둘 멎어서고 사람들은 먹을것이 없어 굶을 때가 많았다. 다른 직장들은 거의나 죽었으나 합성직장만은 얼마간 더 버티면서 빙초산을 생산하였다. 초산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주승혁직장장은 원칙을 어기고 제 마음대로 인정을 베풀지 않았다. 그는 조카가 비닐방통을 가지고 찾아온것도 돌려보냈다. 조카가 눈물을 뿌리며 삼촌을 욕하는것을 보고 가슴이 아프고 민망스러워진 명수(당시 명수는 책임기사였다.)는 그를 창고장에게 데리고갔다. 그리고 초산 5리터를 해결하여주었다. 조카가 돌아간 후에 이에 대해 알게 된 승혁은 눈이 쑥 나오도록 명수를 질책했다. 그후에 명수는 기업소 생산과로 소환되였다. 그때 명수는 승혁이가 사람이 아니고 목석처럼 생각되였었다.
그런데 승혁의 해임으로까지 번져진 비법적인 사건은 무엇을 말해주는것인가. 결국은 승혁이가 겉과 속이 다르다는것이 아닌가.
명수는 승혁의 진속을 똑똑히 알고싶었다.
주승혁은 알데히드생성반응기 동체앞에서 공책을 펴들고 개조안을 그려보고있었다. 그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생성반응기를 만들자고 머리를 쓰고있었다. 장군님의 개건구상을 받들자면 응당 모든것을 새롭게 일신시켜야 할것이였다.
뒤에서 여러 사람들의 발걸음소리와 함께 무엇이라고 설명하는 김명수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우에서 간부들이 현장에 내려온 모양이였다. 장군님의 현지지도가 있은 후 중앙과 도의 여러 기관, 기업소들에서 2.8비날론련합기업소를 도와주기 위해 찾아오고있었다.
승혁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머리를 돌리였다.
《기업소 공업기술연구소 연구사 주승혁동지입니다.》하고 명수가 손님들에게 말하였다.
《합성생산공정에 정통한분이여서 우리 직장의 개건을 도와주기 위해 나왔습니다.》
승혁이가 손님들에게 건성 인사하는데 그중의 한사람이 반갑게 소리친다.
《주승혁동무, 잘있었소?》
중키에 보기 좋게 몸이 나고 유별나게 얼굴이 훤하고 잘생긴 사람이 웃고있었다. 승혁은 어지간히 놀랐으나 내색을 않고 웃어보이였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박춘섭이였다. 승혁은 춘섭이가 성에서 소환되여 중앙의 주요경제지도기관에서 처장으로 사업하고있다는것을 이미 알고있었다. 이전날 승혁과의 감정마찰은 어쨌든지간에 춘섭은 자신의 본신혁명과업은 원만히 수행한것이였고 따라서 상급으로부터도 일정하게 실무능력을 인정받고있는것 같았다.
《내 승혁동무가 합성직장에 와있다는 소릴 들었소.》 하고 춘섭이 말하였다.
《그렇습니까? 처장동지가 우리 공장에 내려와 수고가 많겠습니다.》
승혁은 깍듯하게 례절을 지켜 말하였다.
《우린 중학교동창지간이요.》 춘섭은 의아해하는 주위사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였다.
승혁은 야릇한 감정을 느끼고있었다. 박춘섭이 내려온것이 반갑기도 하고 어쩐지 이상하기도 했다. 지난날 비날론계통을 없애버리려고 했던 사람들속에 속해있던 춘섭이와 마주섰던 일을 결코 잊을수가 없었다. 물론 그가 상급의 지시를 받고 행동했다는것을 리해는 하고있지만 그때의 감정은 좋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비날론계통생산공정들을 하나하나 되살리는 사업을 지도하려고 내려왔으니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내 지배인동무에게서 듣자니까 승혁동무가 알데히드생성반응기구조를 개조하려고 한다더구만.》 춘섭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카바이드생산능력에 맞게 조절해야 할것 같습니다.》
《모험하는게 아니요? 본래대로 복구해도 괜찮겠는데…》
《아닙니다. 개조하지 않으면 숱한 카바이드를 불필요하게 소모하게 될겁니다.》
《그런가?》 춘섭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듯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너그러운 웃음을 띄웠다.
《어쨌든간에 승혁동무가 심사숙고해서 잘해보오.》
그리고 춘섭은 명수를 비롯한 일행들에게 말하였다.
《자, 우리 가봅시다.》
몇걸음 걸어가다가 춘섭은 다시 승혁에게로 돌아섰다.
《내 한번 집에 찾아가겠소. 영희에게 인사를 전해주오.》
승혁은 일행을 이끌고 걸어가는 춘섭의 위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직책도 자기와 대비도 안되게 높은 사람, 아량이 있으면서도 실력도 있어 아래사람들은 춘섭을 퍽 어렵게 대하고있었다. 춘섭은 승혁이 자기에게도 절대로 큰 간부티를 내지 않는다. 이제 집에서 마주앉으면 더욱 소탈해질것이고 그때는 자기도 그와 너나들이를 할것이다. 《이 사람, 자네 너무 우쭐대지 말라구.》 하고 퉁을 줄수도 있을것이다.
승혁은 문득 이제 막상 춘섭이 집에 찾아온다면 난처해질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안해 백영희와의 관계가 요즘 갑자기 랭랭해졌던것이다. 승혁이가 합성직장에 계속 나간다는것을 알자 백영희는 지금껏 잘 눌러놓고있던 드센 성격을 로골적으로 드러냈다. 영희는 자기가 선포했던대로 승혁의 밥곽 싸주기를 거절했던것이다.
승혁은 승혁이대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기업소식당에서 국수를 먹으면서 연구소에서 잠을 잤다. 그는 안해와 이러쿵저러쿵 다투는것이 질색이였고 또 그런 시시한 일에 정력과 시간을 랑비하고싶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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