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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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 회)
제 2 장
왕관없는 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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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대하고도 화려한 화촉지연을 마친 명성황후는 넓다란 신방에서 신랑인 상감마마를 기다리고있었다.
잠자리를 돌보는 큰방상궁이 와룡초대에 불을 밝히고 금침을 깔아놓은지도 오랬다.
이제 남편인 상감마마가 신방에 들어와 자기의 옷고름을 벗기고 금침속으로 끌어들일 생각을 하니 저도 몰래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는 이미 부부사이의 이성관계에 대하여 알고있었고 또 첫날밤을 어떻게 보낸다는것도 알고있었다.
밤은 소리없이 깊어가고있었다. 명성황후는 점차 초조해지고 조급해졌다.
상감께서 술에 취하셨는가. 아니, 이제 15살난 소년상감은 술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문득 합문밖에서 발걸음소리가 났다. 이제야 오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명성황후는 숨결이 딱 멎는듯한 흥분과 감격과 긴장을 느꼈다.
그런데 합문이 소리없이 열리더니 뜻밖에도 녀인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울렸다.
《중전마마.》
명성황후는 흠칫 놀라며 머리를 쳐들었다. 늙은 큰방상궁이 죄송스러운듯 머리를 숙이며 아뢰였다.
《상감마마께서는 아직 년소하시여…》
긴장이 풀린 명성황후는 어깨를 떨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였다.
《상감마마께서는 아직 년소하시여…》하는 상궁의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미쳐왔다. 그래, 상감께서는 아직 년소하시지, 더구나 남자는 녀자보다 철이 늦게 든다지 않는가.
큰방상궁이 다시금 정중히 절을 했다.
《침수 안녕히 드시옵소서.》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뒤걸음으로 조용히 물러가자 명성황후의 가슴속에는 까닭모를 고독감이 엄습했다.
빈방에 홀로 오도카니 앉아있는 명성황후는 아직은 짚어 말할수 없는 그어떤 불길한 예감이 배암처럼 가슴속에 자리잡는것을 느끼였다. 이런 밤이 하루 이틀 끝없이 계속되였다.
그러나 명성황후에게 왕후의 자리가 헐치 않을뿐아니라 슬픈 자리라는것을 깨닫게 한 일이 이때로부터 얼마후에 또 생겼다.
금시 소나기라도 퍼부을듯이 흐린 어느날 명성황후는 조상궁과 함께 비원의 정각에 앉아있었다. 진달래며 개나리, 살구꽃과 같은 때이른 꽃들이 피여난 비원은 이른봄의 정취를 자아냈다.
명성황후는 며칠전에 양오라비 민승호가 구해준 천리경을 눈에 대고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북악산의 바위가 방금 손에 잡힐듯이 가까이 다가섰다. 천리경으로 이번엔 인정전쪽을 바라보던 명성황후는 그만 흠칫 놀라며 천리경을 눈에서 뗐다.
그리고는 곁에 있는 조상궁에게 매몰차게 물었다.
《저게 누구냐?》
《무엇 말씀이오니까?》
영문을 모르는 조상궁은 의아하여 목을 빼들었다. 명성황후는 그에게 천리경을 던지듯 안겨주며 내쏘았다.
《저기 인정전 란간을 보거라.》
조상궁이 천리경을 눈에 대고 조절하더니 그도 못 볼것을 보았을 때처럼 흠칫 놀라는것이였다.
거기서는 지금 임금 고종이 한 궁녀를 껴안고 희롱하고있었는데 고종의 품에 안긴 녀인은 한껏 행복한 표정이였다.
《누구냐?》
명성황후는 야멸차게 물었다.
《저…》
조상궁은 대답을 못하고 쩔쩔매였다.
《이실직고 못할테냐?》
《예. 실은 숙원 리씨이고 특별상궁이온데…》
《몇살이냐?》
《열아홉인줄로 아옵니다.》
《나살 든 년이 어린 상감을 홀리는구나.》
독살스럽게 뇌까린 명성황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자기가 한갖 장식물에 불과하다는것을 깨달았다. 낮에는 이러저러한 의식과 례식에 고종과 나란히 참석하여 문무백관들의 경하를 받지만 밤이 되면 누구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마치도 아이들이 낮에 가지고 놀다가 밤이면 방구석에 던져버리는 장난감과 다를바 없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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