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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성기로 북한 비난하고 삐라 뿌려봐야 아무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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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이엘
댓글 0건 조회 2,738회 작성일 10-10-1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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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의 정세토크] 붕괴론 환상 유포하는 보수 논객들에 고함


최근 북한의 대남·대미 유화 제스처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대남 차원에서는 수해 물자 지원을 요청한 후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더니, 거기에 더해서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연계시키려는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어요.

북한은 또한 10월 들어서는 6자회담 재개를 원한다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12일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베이징에 가서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사무 담당 특별 대표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들은 6자회담에 나갈 준비가 됐다는 말을 했습니다.

북한의 이런 행보는 김정은 후계 체제를 조기에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될 국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북한의 그런 움직임에 대한 대한민국 보수층의 시각입니다. 김정은 후계 체제를 정착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에 소위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쪽이 있는가 하면, 북한의 3대 세습은 규범적·도덕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에 후계 체제를 정착시키려는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따라서 대화 제의에 응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어떤 학자는 북한이 김정은 후계 체제를 속성으로 진행시키는 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아주 악화됐기 때문이고, 그러니까 북한의 붕괴가 얼마 남지 않은 증거라는 희망적인 관측을 하는 강연을 얼마 전에 했다고 합니다.

김정은 말에 공손해지는 74세 노장 김영춘을 보았는가?

북한의 최근 유화 제스처는 후계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거니까,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면 후계 체제가 자리를 못 잡고, 북한 체제는 어려움을 겪게 되고 결국 붕괴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이 문제를 좀 따져봐야 합니다.

북한 체제의 붕괴를 촉진하는 요인이라든지, 붕괴가 불가피한 현상들은 물론 보입니다. 눈에 띄어요. 그러나 모든 체제는 붕괴와 위기를 촉진하는 요인이 있는가 하면, 사람의 몸에 저항력이란 게 있듯이 그걸 억지하고 유지하는 요인도 있습니다. 북한 체제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21세기 개명된 대명천지에 말이 안 되는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망조가 들었다고 볼 수도 있고,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지만, 북한은 체제 유지 문제와 관련해서 내부적으로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폐쇄적인 체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습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언론 매체를 통해, 또는 삐라를 뿌려서 3대 세습을 비난해도 북한 인민들이 모두 그걸 보고 '맞아. 잘못 됐어'라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아닙니다. 혹 북한 내부 일각에서 외부의 비난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거기에 동조한다 하더라도, 그런 외부의 시각을 남들한테 전하기도 어렵고, 옮긴다 해도 퍼져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또한 북한은 김정일 세습 체제를 완성시킬 때 이미 이론적으로 3대, 4대까지 세습이 가능하도록 교육을 시켰습니다. 문화 자체를 그렇게 바꿨어요. '혁명적 수령론'이란 게 대표적입니다. 노동당과 공화국을 끌고 나가는 사람이 수령인데, 수령은 반드시 혁명 가계의 혈통을 타고 나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도 있어요. 사람한테는 생물학적 생명과 사회정치적 생명이 있는데, 생물학적 생명은 부모가 주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은 수령이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회정치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은 죽어도 죽은 게 아니고, 사회정치적으로 역할을 못한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더라도 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수령에게 한없이 충직한 전사만이 수령으로부터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받게 되며, 그런 사람만이 생물학적 생명과 무관하게 영생한다고 합니다. 영생론까지 나오면 이건 종교예요.

또 '사회주의 대가정론'이란 것도 있습니다. 북한을 하나의 커다란 가정이라고 성격을 규정했어요. 수령이 대가정의 가장이지요. 부모·자식으로 구성된 작은 단위의 가정이 모여서 '우리식 사회주의'를 신념으로 삼고 수령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복종하는 대가정이 형성된다는 겁니다. 수령은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2400만 북한 인민들을 지도하는데, 그냥 정치지도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가장으로서 지도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어버이 수령'이란 말을 자주 쓰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김정일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혁명적 수령론,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사회주의 대가정론으로 20~30년 사상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김정은도 능력 여하에 관계없이 혁명을 완수해나갈 3대 수령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도 안 되는 행위지요. 일본, 영국, 스웨덴, 태국도 왕위가 세습되지만 그 나라들의 왕은 군림할 뿐 통치하지 않는, 권력과 권위가 분리된 자리이기 때문에 시빗거리가 안 돼요. 권위와 권력을 겸비하고 있는 또 다른 나라가 싱가포르입니다. 2대 세습으로 갔는데, 싱가포르는 우리와 이해관계도 크게 없고, 게다가 잘사는 나라니까 그 점에 대해서 누구도 거론하지 않아요. 그러나 북한에 대해서는 정서상 비난을 하게 되는데, 365일 시청 앞에 모여서 확성기에 대고 세습 비난하고 삐라 뿌려봐야 세습 체제를 취소하지는 않을 겁니다.

또 일부는 마치 중국이 세습 체제를 인정했기 때문에 북한이 굴러간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그건 북한 인민들한테 내면화된 정치 문화에요. 김정일 세습 때는 사실 좀 힘들었어요. 그러나 북한 사회가 한 번 그렇게 훈련이 됐기 때문에 이제는 김일성 김정일 혈통이면 27살이 아니라 17살이라도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조선시대에도 나이 어린 임금들이 등극하면 수염 허옇게 난 대신들이 상감마마라고 받들어 섬겼어요. 지금 북한의 정치 문화는 바로 그런 정도가 된 겁니다.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했던 김정은이 김영춘 인민무력부장한테 무슨 말을 한 마디 하니까 김영춘이 공손하게 대꾸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74세의 김영춘은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 과정에서 군 후배인 68세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한테 밀린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불만을 품지 않고 김정은한테 깍듯하게 공손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면서, 저건 조선조 시대 나이 어린 동궁을 모시는 노대신의 자세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궁은 임금이 죽으면 그대로 왕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신들이 극진히 모셨어요. 조선 시대처럼 74세 노대신 김영춘이 27세 동궁 김정은을 깍듯하게 모시는 장면을 보면서, '밖에서 별 소리를 다 해봤자 소용없다. 중국 때문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김정은 오른쪽 옆에서 박수치고 있는 이가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뉴시스

북한 붕괴론 환상 가진 보수 논객들이 문제다

그렇게 볼 때 북한의 최근 유화 제스처에 진정성이 있느니 없느니, 전략적인 것이니 아니니 따지고, 진정성이 없으니까 협조해선 안 되며 협조 안 해야 후계 체제와 북한 체제가 붕괴한다고 생각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남쪽이 협조를 안 하면 후계 체제 정착이 조금 늦어질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남쪽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국이 북한의 6자회담 재개 신호에 계속 한국의 눈치나 보면서 '북한은 비핵화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라'는 말만 계속 할 것인가?

11월 2일 미국의 중간선거가 있습니다. 선거 결과 여하에 따라 미국의 대외정책이 영향을 받긴 받을 거예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이미 지난 9월 초 한국에 왔을 때 '이제 천안함 페이지를 넘기고 6자회담으로 넘어가자'고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 우리 정부는 북한의 사과가 없으면 6자회담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반응했지만, 최근 외교부는 천안함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 표명이 선행돼야 하는 건 아니라는 태도를 조금씩 비췄어요. 더구나 6자회담 전문가인 천영우 씨가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비서관이 됐어요. 그건 어쩌면 6자회담 재개에 대비하기 위한 이 정부의 포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간선거 이후 미국의 6자회담 행보가 빨라질 걸 예상하고 외교·안보 수석 인사를 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감을 잡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 제 얘기는 정부에다 대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정부 밖에서, 6자회담에 나가는 것은 후계 체제의 정착을 도와주는 거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간 회담에 끌려가는 것도 후계 체제를 도와주는 거니까 천안함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줄기차게 얘기하고 있는 보수 논객들. 그 사람들이 지금 잘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북한은 천안함과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했어요. 그런 마당에 북한이 사과를 해야 6자회담을 열 수 있다는 말이 과연 통할 것 같습니까? 사과 안 해요. 천안함 사고에서는 46명이 사망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인원이 희생되었던 KAL-김현희 사건, 또 국가적으로는 치욕에 가까운 아웅산 사건 때도 사과 안 했어요. 아웅산 사건은 버마 정부에 의해 북한의 소행이라고 확인됐는데도 사과 안 했어요.

그런데, 지난 9월 7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여론조사에서 밝혀졌듯이, 우리 국민의 70% 가까이가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사과하겠습니까? 안 하죠. 그러니 그걸 조건으로 내거는 사람들은 얼마나 비현실적이냐는 겁니다.

계산 안 하는 정치 행위가 있나?

그러니까 바람직한 건 6자회담 전에 남북관계를 상당한 정도 풀어서 돌아가게 하는 겁니다. 6자회담 재개 등 국제정세의 흐름 때문에 남북관계를 지금처럼 밀고나갈 수 없을 때 마지못해 부응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보다, 6자회담 전에 남북관계를 어느 정도 진전시켜야 합니다. 장관급 회담으로 직행은 못해도 금강산 관광 재개의 실마리 정도는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우리 정부는 회담을 통해서, 즉 만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북한더러 약속부터 하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북한이 약속을 그렇게 쉽게 한다면 회담은 뭣 때문에 합니까.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려면 관광객 사망 사건 진상 규명, 재발방지, 신변 안전 보장 강화라는 3대 선행 조건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건 회담에서 풀어야 할 일들이에요. 회담부터 해야 하는 겁니다.

6자회담에 관해서도 이 정부는 북한더러 비핵화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라고 하고 있어요. 그 점에 관한 한 미국도 한국의 입장을 따라서 복창하다시피 하고 있어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북한의 행동을 끌어내기 위해 6자회담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그런 걸 보면서 이 사람들이 정말 문제를 풀 의지는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정부는, 중간선거가 끝난 후에도 6자회담이 안 열리고 북핵 문제가 계속 이 상태로 가면 핵 확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한국 정부의 선행 조건론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정부도 미국이 좀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못 이기는 척 끌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서로 '네가 먼저'라고 미루거나 특히 미국이 한국의 눈치를 보는 식으로 하면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에 핵실험이 또 한 번 있을 수밖에 없다는 엄중한 현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 정부도 북한이 저 정도 나왔을 때, 정부 밖 보수층에서 하는 말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 좋으라고 남북대화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결국 우리한테 득이 되는 일이니까 하는 게 남북대화고 6자회담입니다.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를 해야 수출이라도 제대로 하면서 경제력을 키워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남북대화를 하는 겁니다. 북한의 핵보유를 막기 위해서 6자회담을 하루라도 빨리 재개해야 하는 겁니다.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정치 문제입니다. 진정성만 가지고 하는 정치 행위가 어디 있어요? 다 자기 계산 가지고 하는 거잖아요. 전략적인 판단 없는 정치 행위는 또 어디 있습니까?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설사 진정성이 없어도, 진정성을 보여 달라고 장외에서 두드리지 말고, 대화를 통해서 그들이 표방하고 있는 얘기가 그들의 진심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게 협상이고 정책이고 정치 아닙니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이 정부 내내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리고 북한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 제발 환상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한미 국방장관들의 연례 안보회의(SCM)에서 북한의 급변사태를 협의했다고 하던데, 대통령이 통일세 거론하고 한 쪽에서는 급변사태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나는 14~16년 전 김영삼 정부 시절의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해요.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 주변 측근들이 북한 붕괴가 임박했다는 말을 하고 다니니까 학자들은 통일비용을 계산했어요. 그건 통일에 대비한 우국충정의 발로가 아니었습니다. 통일비용 계산은 붕괴론과 표리의 관계에 있었는데,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결과적으로 통일공포증만 키웠어요.

최근에 그런 얘기들이 또 나오는 걸 보아하니,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나빠서 후계 체제를 서두르고 있으니까 우리가 압박을 하고 외부 공급을 끊으면 무너진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런 초보적인 환상은 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14~16년 전에도 그렇게 북한 붕괴를 예측하고 대비한다고 북새통을 쳤지만, 아직까지 버티고 있지 않습니까?

[정세현의 정세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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