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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조국 방문기 41. 계급이 없는 인민군대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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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6건 조회 18,273회 작성일 15-02-02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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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41


계급이 없는 인민군대와 사회



원산으로 달리는 차에서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산세가 좋다거나 기암절벽이 있어서가 아니라 풍요로운 들판에 누렇게 곡식이 익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석 달 동안 비 한방울 안왔다는데도 이렇게 농사가 잘 되어진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주로 논에서 익어가는 벼의 모습이 많지만 여기저기 옥수수 밭도 보이고 과수원도 있는데다 마을이 여기저기 나타나기에 사진기의 셔트를 계속 눌러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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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지 않은 평원이지만 제법 한참 동안 농촌의 풍경이 계속되었는데 차는 어느새 좀더 산이 높아지는 지역으로 들어선다.  한참 아까부터 길가에 코스모스들이 보여서 달리는 차안에서 그걸 찍다가 결국엔 코스모스들이 무더기로 피어난 곳에서 운전기사에게 차를 좀 세워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코스모스,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  부근의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 가장자리에 학교에서 단체로 코스모스 꽃씨를 심게 한 적이 있었다.  꽃씨만 부렸을뿐인데 신기하게도 그 코스모스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맨 먼저 우리들에게 계절이 바뀌어가는 것을 알려주는 꽃으로 다가와주었다.  우리들 모두 코스모스에 대한 추억 한 두가지 없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젊었던 그 시절의 첫사랑과의 추억 한 페이지에 남아있을 수도 있고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배우자와의 옛 추억 한 모퉁이에 코스모스가 자리하고 있을 수도 있으리라.  우리들 모두가 사랑하는 그 꽃이 이곳 북부조국의 길가에도 무수히 피어나 나그네의 눈길을 이끌더니만 결국엔 나를 차에서 내리게 만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온전히 사진으로 담는 모습을 보고는 안내원 김미향 동무가 날더러 그 곁에 서게 하여 사진을 찍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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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코스모스가 잘 가꿔져있다. 이 길을 지나며 바라본 나그네가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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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로 돌아와 출발하면서  노길남 박사님에게 왜 박사님은 코스모스 사진을 찍지 않는가고 물어보니 허허 웃으시며 이미 60여 차례 북부조국을 찾으면서 자신도 처음엔 나처럼 그렇게 수없이 코스모스를 사진에 담았었다고 말해준다.  하긴 나도 북부조국을 자주 찾게 된다면 이 코스모스도 점점 무덤덤해져서 사진으로 남기려 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이렇게 무더기로 꽃을 피워내는 것을 볼 때마다 지나간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대로이지 않을까?   이 길가에 코스모스 꽃씨를 뿌리고 이렇게 잘 가꾼 사람은 누구일까?  이곳 북부조국의 피어나는 소년소녀들일까  가까운 동네의 인민들일까 아니면 평생을 도로의 안전과 조경을 위해서 일하는 순박하고 고운 마음의 동포들일까?  북부조국 산하의 풀 포기 하나 꽃 송이 하나가 저 들판에서 익어가는 곡식과 마찬가지로 내게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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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는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싶은 곳에서 잠시 큰 길을 벗어나더니 휴게소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내가 25년 전에 금강산을 찾을 때 미주동포 일행들과 함께 들러 차 한 잔을 대접받았던  곳이라 옛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의 추억을 더듬으며 사진을 찍으면서 살펴보니 주변엔 대형 관광버스가 서있고 그 곁엔 우리가 타고온 차와 비슷한 모습의 승용차가 서 있는데 나이가 마흔 정도 되어보이는 인민군 장교 한 사람이 그 승용차에서 나와선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 일은 여기서 벌어졌다.  노길남 박사님이 어딘가 돌아보고 와서는 그 인민군 장교의 계급장을 보고는 대뜸 질문하기를  “ 계급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은 것이었다.  장교는 갑자기 낯선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아서였는지 아무 말도 않고 멍하니 노 박사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박사님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그 차의 뒷문을 열고는 들여다보더니만 “아니, 우리 차가 아니구나”라고 하신다.  그러니까 박사님은 그 차가 우리들이 타고 온 차인줄 알고는 차 곁에 서있던 그 장교에게 말을 걸었고 차 문을 열기까지 했는데 결국은 남의 차의 문을 열고 만 것이었다.  당황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박사님이 하는 동안에도 그 장교는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이 무덤덤해하더니만  바로 차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나와 함께 몇 미터 거리에서 지켜본 우리 운전기사 리영호 동무가 기어이 한마디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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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국이 지금까지 없애려고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계급사회였습니다.   계급은 해방투쟁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제 계급이란 단어는 책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라졌는데 박사님이  그 장교에게 계급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것은 엄청난 실례를 한 것입니다” 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 듯하다.  거기다 남의 차문을 열기까지 했으니 그 장교로서는 정말 황당한 일을 당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인민군대에선 계급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라고 내가 묻자 “우리 인민군대에선 ‘군사칭호’라고 부릅니다” 라고 대답해준다.   그러니까 인민군대에서의 계급장은 단순히 군사칭호일 뿐이란 것이다.  


군대라고 하면 누구나 당연히상관과 부하의 등급이 있는 곳이고 명령과 복종의 체계가 서 있는데 그것을 계급이란 말로 우린 오랫동안 사용하면서도 아무런 깊은 생각이 없이 지내왔다.  우리가 군대에서 계급을 별 생각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군대가 계급에 따라 어떤 신분제도처럼 상관이 하급자에게 함부로 굴면서 어느 정도 인권을 침해하는 것까지도 모두 은연중 수용하였고, 그것이 남한에서 오랜 세월 동안 군대라는 것이 하급병은 상관으로부터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는 것도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된 배경이 아닐까?   그래 군대에서 온갖 기합과 욕설이 난무하고, 구타로 인해 극도로 인권이 침해당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는 일까지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계급이 양반과 상놈 시절의 계급사회의 계급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런 계급 자체가 일제의 잔재가 아닌가?

 

그런데 이곳 북부조국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것이다.  계급이란 말 대신에 군사칭호란 말을 사용하는 군대가 인민군대인 것이다.  단어만 계급에서 군사칭호로 바꾼 것이 아니다.  인민군대는 처음부터 만주벌판에서 일제와 대항하던 김주석의 빨찌산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군인들이 한가족처럼 서로 보살펴주며 친혈육처럼 지낸다는 것이다.   


리영호 운전기사 동무가 스스로 10년 동안 복무하여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인민군대의 전통을 노 박사님의 계급에 대한 질문바람에 잘 털어놓게 되었는데 그런 인민군대의 전통은 그가 우리에게 받아적도록 한 '중대는 나의 집'이라는 노래를 통하여 확인해볼 수 있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보길 바란다.

 

<중대는 나의집>

[1절]

 "한 지붕 아래서 한가마밥 먹으며 

하나의 구령속에 너와 나 사는 집

떠나면 그립고 들어서면 정다운

중대는 나의집 정든 나의 집"

 

[2절]

 "맏 형도 있구요 맏누이도 있다네

막내도 있으니 모두가 친 형제

사랑은 넘쳐라 고향집에 사는 듯

중대는 나의집 정든 나의 집"


내가 노래가사 가운데 맏형과 맏누이에 대하여 물어보니 중대장은 맏형과 같은 존재라고 하며 모든 일을 솔선수범하여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보이며, 중대정치지도원은 맏누이라기에 여군이 맡는 것인가 했더니만 그것이 아니라 집안에서의 맏누이처럼 병사들을 알뜰하게 보살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갓 입대한 어린 병사는 막내로 여기며 모두가 잘 이끌어주니 그것은 바로 한가족처럼 서로를 위해주는 따스한 정이 흐르는 가정과 같은 곳이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볼수록 정말 아름다운 전통이다.  그렇게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 이끌어주는 군대이니 군인 상호간에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되고 그 사기가 갈수록 드높아질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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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대는 계급이 없고 군사칭호가 있을뿐이라는 리영호 운전기사 동무와 함께.  인민군대에선 인권을 모독하는 기합은 없지만 신병으로 훈련소에 들어가면 아주 세차게 훈련을 받는다고 말해주었다.




아까 만났던 그 장교는 군사칭호가 상좌로 일반적으로  ‘상좌동지’로 부르며, 보통 연대장을 맡는다고 하였다.   리영호 운전기사 동무로부터 들은 인민군대의 군사칭호에 대하여 노 박사님이 다음 문장과 같이 잘 정리를 하셨다.  우리들이 기본적으로 이 부분도 알아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인민군의 군사칭호는 병사들의 경우에는 처음병사, 초급병사, 중급병사, 상급병사로 올라가고 그 위에 하사, 중사, 상사, 특무상사가 있다. 군관의 군사칭호는 소위, 중위, 상위, 대위로 올라가고, 그 위에 남녘의 영관급인 소좌, 중좌, 상좌, 대좌가 있고, 장성급에 올라가서는 소장(큰별 하나), 중장(큰별 둘), 상장(큰별 셋), 대장(큰별 넷)이 있고, 그 위에 차수, 원수, 대원수로 구성되어 있다.”  (노길남 박사님의 민족통신 기사에서)



계급이 없는 사회가 곧 인민군대이고 북부조국의 사회제도다.  이만한 민주주의가 또 어디 있는가?  아무리 높은 자리의 군사칭호를 가진 사람도 동지로 부른다.  갓 입대한 처음병사도 동무로 부른다.  북부조국에 민주주의가 없고 인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기 이 한가지의 예만으로도 깊숙히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않는가?  이렇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군대에도 계급이 없는 사회인데 일반적인 직장에서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라해서 낮은 직위의 일꾼들에게 함부로 대하도록  방관하는 사회일 수 있겠는가?   사회에서 또한 높은 계층 낮은 계층이 따로 있겠는가?   이미 거론하였듯이 북부조국은 노동자들과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을 월급도 더 주면서 더욱 극진하게 대접하니 차별이 아니라 꼭 대접받아야 할 사람들을 바로 대접하는 사회가 아닌가?


바로 어젯밤에도 인터넷상으로 어떤 사람이 북은 상위 5%를 위하여 모든 인민이 노예로 산다는 발언을 함부로 하였던 것을 보고는 내가 그 사람에게 북은 계급도 계층도 없은 평등한 사회라는 것을 자신있게 말하였다.  어쩌면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 남부조국의 민초들이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세뇌당하여 북을 잘 모르고 무식한채로 살고 있다는 것을 이젠 함부로 드러내지 않기를 바란다.  북부조국이 인민의 사회적인 평등과 경제적인 평등을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애써 싸우며 이루었겠는가?  남부조국에서 그 반대의길로 달려왔고, 경제적인 불평등은 이제 극에 달하게 되었으니 바로된 민중이라면 허튼소리를 그치고 북부조국의 그 이룬 것에 대하여 이젠 존경을 표하고 경외심을 갖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아래 링크에서 방문기 40회와 그 이전의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seattle.com/main/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1725


페이스북 통일그룹 '우리는하나'로 통일을 꿈꾸는 민중을 초대합니다.

https://www.facebook.com/groups/Koreaisone/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2-11 16:43:02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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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우님의 댓글

황진우 작성일

강산님 늘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 자각을  위해 틈틈이 역사 공부도 합시다.
http://www.pressian.com/news/search_resul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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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님의 댓글

광개토왕 작성일

일본군대의 잔재로 알려져있는 군내부 구타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북한 사회의 문화가 어떤 수준인지를 왠만큼은
짐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군내부의 문화가 리영호 운전사의 설명처럼 한울타리 가족과 같은
분위기라면 그 사회의 분위기도 분명 그에 버금할 것이라 추측됩니다.

수령체제로 3대가 이어서 국가의 수반을 맡아갈 수 있는 여건도 결국
이런 분위기에서 연결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남한에서처럼 벌써 3-4차례의 구테타가 발생했거나
아주 큰 저항적 혼란이 있었을 것입니다.

글쓴이의 세밀한 묘사를 통하여 여러 정황을 엿볼 수 있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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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황진우 님의 응원 늘 감사하게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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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광개토왕 님, 군부대에서 한가족으로 지내듯이 북의 모든 인민들은 서로 한핏줄 한겨레 한가족이라는 정신으로 서로 협동하여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경쟁사회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사회이니 이웃이 서로 협력해야만 살아갈 수가 있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처럼 경쟁자는 철저하게 눌러버려야 자신이 살아남는 곳에서는 군대도 사회도 서로 협동하고 한가족으로 지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서로 총을 들과 싸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지요.  물론 전쟁으로 다른 나라를 침범하기도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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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북에서 인민들이 3대에 걸친 수령 가족의 영도를 원하는 이유가 바로 사회 자체가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돕는 유기적인 관계이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체제를 그대로 지켜나가고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일관성있는 리더가 필요하니까요.  자본주의 방식으로 돈 많고 인기를 갑자기 몰아서 엉뚱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거덜내는 일은 처음부터 피해온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요?  우리들이 배운 선거제도와 민주주의를 다시 잘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제대로 민주주의가 진행되어왔다면 상위 1%의 사람들이 전체의 90%의 재화를 독차지하는 일은 없었어야겠지요.  민주주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의 민주화, 경제의 평등화입니다.  그걸 독점하면서 무슨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까요?  막말로 나는 집 열 다섯채를 갖고 너는 셋방에서 사는 것이 민주주의다하고 우긴다면 그게 말이 되는 것일까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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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우님의 댓글

황진우 작성일

애국자 집안에서 애국자 나오고
매국노 집안에서 매국노 나오고
도둑놈 집안에서 도둑놈 나오는게 우주의 이치입니다.

그렇기에,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라면 3대 아니라 10대라도 이어져 나가는게 조국과 인민에게 이롭습니다.
조선에서 김정은보다 더 잘 조선을이끌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을 어느 누구도 못합니다.

바로 (혈통)이라는게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남을 보면 더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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