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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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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547회 작성일 23-12-1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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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 회)

제 2 장

왕관없는 녀왕

8


최익현의 탄핵상소로 하여 울화가 치받친 대원군은 끝내 심화병에 걸려 자리에 드러눕고말았다.

이마를 천오래기로 동인 그는 두툼한 깃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좌찬성을 비롯한 심복들이 어두운 안색으로 앉아있었고 머리맡에는 미음그릇을 든 민부대부인이 시름겨운 기색으로 앉아있었다.

《대감, 곡기를 좀 하셔야지 그렇게 식음을 전페하면 어찌실려구 그러시우.》

근심이 자오록한 민부대부인은 대원군의 입바투 미음그릇을 가져갔다.

시끄러!》

대원군이 신경질 부리며 한팔을 내젓는 바람에 그만 미음그릇이 방바닥에 떨어지고 미음이 쏟아졌다.

《에그, 쩌쩌…》

부대부인이 속이 상해 혀를 차는데 마당에서 청지기 정운봉이가 아뢰는 소리가 울렸다.

《대감마님, 좌의정대감과 우의정대감께서 오셨소이다.》

그 소리에 대원군은 앓던 사람같지 않게 상반신을 벌떡 일으키며 헌청하게 소리를 질렀다.

《어서, 어서 들라 해라!》

얼마전에 그는 어전회의가 열린다는 소리를 듣고 좌의정 강노와 우의정 한계원에게 자기를 탄핵하여 상소문을 낸 최익현이를 당장 절해고도에 류배를 보내도록 상주하라고 신칙하여 보냈던것이다. 최익현이, 그 죽일놈의 목을 치지 못한다 해도 사람 못살 고장으로 쫓아보낸다면 속에 맺힌 체증이 얼마간 내려갈것 같았다.

그러나 방에 들어와 우거지상이 되여 이실직고하는 강노와 한계원이의 말은 대원군으로 하여금 일락천장하는듯한감을 느끼게 했고 그가 지금껏 체험해보지 못한 억장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은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아니 아니, 다시 말해보게! 내가 잘못 들었거나 자네들이 잘못 말했거나 했을테지 아무렴…》

《백번 말해야 그 말이 그 말이지요》

강노가 시르죽은 상으로 이미 한 말을 다시 곱씹었다.

최익현이는 호조참판으로 제수받고 대감을 두둔한 소인들은 봉고파직되였다 그 말이웨다.》

허어, 앉은벼락이라더니…》

상기도 강노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듯 신푸녕스럽게 중얼거리던 대원군은 별안간 밖에 대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게, 누구 없느냐?》

《예, 소인 있소옵니다.》

청지기 정운봉의 대답소리가 울렸다.

《대궐로 가겠으니 가마를 대령시켜라!》

이렇게 호령한 대원군은 이마를 동인 헝겊오리를 풀어 내동댕이치더니 앓던 사람같지 않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니, 그 몸으로 어딜 가실려구? 더우기 이밤중에…》

민부대부인이 따라 일어서며 걱정어린 소리를 했다.

어둠에 묻힌 하늘에서 마가을의 찬비가 내리고있었다. 사린교에 앉은 대원군의 갓이며 옷이 화락하니 젖은지 오랬고 이제는 얼굴로 비물이 줄줄 흐르고있었다.

분김에 하는 처사가 매양 그렇듯이 대원군과 그를 옹위한 구종별배들은 창황중에 떠나다보니 일기를 가려보지 않았고 따라서 우비도 갖추지 못했다. 다행히 홰불을 들고있어 비내리는 밤길을 밝힐수 있었다.

궁성에 다달은 그들은 대원군의 전용출입구인 건춘문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여느때는 대원군의 사린교가 이르기 바쁘게 열리군 하던 건춘문이 오늘은 웬일인지 굳게 닫겨있었다.

홰불을 든 청지기 정운봉이 대문앞으로 다가가 소리쳤다.

《이놈들! 대원위대감 행차시다. 문 열어라!》

그러나 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주홍색건춘문은 죽은듯 아무 응답도 없었다.

정운봉은 주먹으로 대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쾅! 쾅! 쾅!…》

비내리는 어둠속으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메아리쳐갈뿐 사위는 물속처럼 고요하고 괴괴하였다.

《문 열어라, 이놈들아!…》

울음섞인 소리로 피타게 부르짖는 정운봉의 소리 아니, 그의 눈에서는 비물만이 아닌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운봉은 소리치고 두드리다못해 진창속에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대감마님!…》

비분과 울분으로 일그러진 노복의 얼굴을 바라보는 대원군의 얼굴에서도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비물로도 눈물로도 씻을수 없는 비감으로 하여 그의 가슴은 정녕 못견디게 쓰리고 아팠다. 어떻게 일떠세운 경복궁이기에 오늘은 자기앞에 문을 닫아맨단 말인가. 너무도 비통하고 너무도 원통하여 두볼로 뜨거운 눈물만이 하염없이 흘렀다.

10년간에 걸치는 대원군의 섭정은 이렇게 끝나고말았다.

그가 루대에 걸친 외척들의 부패한 세도정치를 숙청하고 봉건제도의 페단을 어느 정도 시정하였을뿐만아니라 인민들의 투쟁기세에 편승하여 여러차례에 걸친 유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물리친것은 찬양할만한 일이였다.

그러나 세계대세의 흐름에 암둔한 그는 나라를 근대적국가로 발전시킬 대신 고루한 쇄국정치를 고집하면서 주관적독단과 전횡을 일삼던 나머지 자체의 사회적지반도 경제적기초도 튼튼히 다질수 없게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하는 반대세력에 의해 정권의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수 없었다.

이 시각, 경복궁 근정전에서는 고종의 친정을 선포하는 의식이 엄숙하게 거행되고있었다.

옥좌에는 국왕 고종이 앉아있었고 주렴을 친 발뒤의 옥탑에는 명성황후가 안존하게 앉아있었다.

어전에는 중신들을 비롯한 문무백관들이 읍을 한 자세로 서있었다.

이윽고 고종이 친정을 선포했다.

《과인은 오늘부터 군국의 정무만단을 몸소 친재하겠노라. 그러므로 대소백관들은 과인을 협찬하여 렬성조의 나라를 중흥시키는데 한사람같이 힘쓸지어이다.》

문무백관들이 친정을 선포한 임금에게 숙배를 드렸다.

숙배가 끝나자 찬의가 자못 경건하게 소리쳤다.

《산호!》

그러자 만조백관들은 환호를 올렸다.

《천세!-》

찬의가 《재산호!》하고 웨치자 백관들이 다시 환호를 올렸다.

《천-천-세!-》

발뒤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보는 명성황후의 얼굴은 감출수 없는 기쁨으로 환히 빛났다.

고종이 친정을 선포한 이날은 고종10년(1873년) 11월 5일이였다.

이날은 또한 명성황후가 섭정의 자리에 올라앉은 날이였으며 정계에 등장한 날이기도 하였다. 목적을 달성한 명성황후가 이날 기쁨에 겨워 웃었는지 울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속담 그른데가 없는 법이다. 계집의 독한 마음 오뉴월에 서리치고 계집이 악을 먹으면 돌벽도 뚫고나간다고 하지 않는가.

대원군의 우매한 쇄국정책 10년으로 절박한 력사발전만을 저애당한 조선봉건사회가 왕관없는 녀왕인 명성황후의 마련없는 개국정사로 또 어떤 파란만장의 시련과 수난을 겪게 되는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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